영국 메탈 전문 스튜디오서 명 프로듀서 콜린과 함께 완성
콜린 리처드슨과의 작업은 사실 우연히 결정된 것이었다. 이번 음반의 공동 프로듀서를 찾기 위해 여러 사람들과 접촉하던 중 그와의 시간이 가장 잘 맞았기 때문이며 꼭 그와 또 한 번 하겠다고 작정해서 이뤄진 것은 아니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와의 작업은 이들에게 행운과도 같은 것이었다. 네이팜 데스, 카르카스, 피어 팩토리 등의 작업에 이어 최근 머신 헤드의 신보작업을 하던 그에게 데모를 들고 찾아가 들려준 것에 그의 반응 또한 매우 진지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역할은 프로듀스와 믹싱이었다.
모든 곡들의 아이템과 기본 뼈대는 안흥찬이 맡았고 리듬 파트는 정용욱이, 그리고 멤버들 각자 자신의 파트를 담당했다. 녹음 장소는 영국 런던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벌판 도시 링컨시 소재 채플 스튜디오이며 마스터링은 런던에 있는 노엘 서머빌 스튜디오. 채플은 메탈 음악 전문 스튜디오로 색슨스, 킬링 조크 등 유명 밴드들이 계속 이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단다. 무엇보다 프로듀서와 엔지니어의 손발이 잘 맞은 것이 앨범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큰 공헌을 했다고 한다.
콜린과 늘 함께 작업을 하고 있다는 엔지니어 이완 데이빗슨(Iwan Davidson)이 드러머 출신으로 악기 컨트롤에 능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당시 머신 헤드 2집을 작업하던 중이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머신 헤드 보다 크래쉬의 드러밍이 훨씬 낫다. 머신 헤드의 것이 기계적이라면 크래시는 어쿠스틱한 매력이 있으며 그 복잡한 드러밍을 다 어떻게 기억해서 치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이 때 녹음이 같이 걸린 영국의 하드코어 밴드 익스트림 노이즈 테러(Extreme Noize Terror) 역시 기타와 드럼 등 모두 너무나 잘한다며 자신들의 녹음에 참여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기까지 했다. 악기를 빌려주고 서로 정보 교환도 하면서 앞으로 서로 음악적인 교류를 할 것을 약속, 올해 내로 반드시 상호 방문 콘서트를 펼치기로 했다.
이번 음반에 대해 멤버들 스스로도 기대 이상의 사운드가 나왔다고 자평하고 있다.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나올 줄은 미처 몰랐다는데, 특히 드럼과 베이스가 최고였다고 한다. 안흥찬은 좀 더 타이트하고 심플하며 스트레이트한 리듬 위주의 음악 으로 요약한다. 실제로 이들의 1집과 2집이 기타 위주로 구성되었다면 이번은 드럼과 베이스 위주이며 보컬도 무작정 지르기보다는 다소 절제미를 강조하고 있다.
타이트하고 심플하며 베이스와 드럼 강조한 리듬 위주의 음악
특별한 타이틀 곡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곡은 Breathe/suffer. 리듬 파트를 강조한 대표적인 곡이다. 솔로가 없으며 전체적인 연주가 함께 돋보이며 매우 타이트한 구조를 띠고 있다. 콜린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 곡이며 멤버들 스스로도 최고로 손꼽는 앨범의 오프닝 트랙. 아홉번째 트랙 Bombcult는 원래 2집 앨범의 일본 발매 버전에만 보너스 트랙으로 들어 있는 노래이다. 한국 판에 넣지 못한 것이 아쉬워하던 중 이번에 새롭게 편곡하여 좀더 듣기 편하게 완성했다. 드러밍의 현란함과 마디마디 확실한 구분을 이루는 베이스, 보컬의 파워가 멋진 조화를 이룬다.
2번곡 Another weakness와 4번곡 Rats는 크래쉬가 그동안 거의 써보지 않았던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연주 마디마디가 끊길듯 끊기지 않는 스타일이 곡의 전반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완전히 예상을 뒤엎은 참신한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베이스의 능란한 연주가 주목할 만하다.
3번곡 Machinery 또한 뒤통수를 얻어 맞는 기분. 힙 합 비트를 샘플링한 것이 이채롭다. 5번곡 은 유일하게 한글 가사로 이뤄진 노래. 부드럽게 시작하는 기타 인트로가 다른 곡들에 비해 너무 큰 차이를 보여 오히려 충격적이다. 노래 전반부는 대부분 부드러운 멜로디 라인이 전개되며 후반부로 오면서 중간중간 거친 안흥찬의 목소리가 격하게 들리곤 한다.
6번곡 Season in red는 두 대의 기타와 드럼,보컬 및 베이스가 한꺼번에 맞물리는 패턴이 매우 독특하다. 멜로디는 그리 두드러지지 않지만 이 자체가 매우 신선하다. 이곡에서의 보컬은 예외라 할 정도로 거칠게 뿜어내고 있다.
7번 Gratitude는 2분 33초의 가장 짧은 곡으로 기타 애드 리브와 박진감 넘치는 드러밍이 일품이며 8번 Dissolution은 다소 무거운 연주 스타일을 지향하고 있으며 이펙터를 사용한 것이 약간 사이키델릭한 면도 풍기고 있다. 마지막곡 Status는 다소 긴 인트로에 이어진 보컬이 더욱 힘을 준 느낌이다. 여기에 베이스가 마지막 순간까지 리드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한 곡을 제외하고 모두 영문으로 만든 가사는 대체로 일상의 생활과 삶의 본질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예전 것들이 저항과 분노, 억압 등에 관한 내용이 많았던 반면, 이번엔 그동안 삶을 살아오며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 스래쉬 메탈이라고 해서 반드시 분노와 파워만을 표출하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역설한 셈이다. Another weakness의 의미를 곱씹어 보면 그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