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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잉 넛 (Crying Nut) - Best Wild Wild Live [초판]
크라잉 넛 라이브

마법 땅콩들이 펼치는 서커스의 생생한 실황!

댄스와 발라드 천지를 헤치고 마침내 크라잉 넛하면 딱 떠오르는 노래 ‘말달리자’가 솟아올랐을 때 그 득의양양한 무리들이 음악계에 던지는 의미를 규정하기 위해 필요했던 용어는 말할 것도 없이 ‘펑크’였다. 70년대 중반 그토록 서구사회를 흔들었어도 국내에서는 금단 금기시 되었던 그 펑크 록이 크라잉 넛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는 점은 분명 대중음악사의 기록적 의의가 아닐 수 없었다.

쓰리코드, 기타 배킹, 그리고 DIY가 갖는 펑크 사운드와 애티튜드 일반은 수동적 음악소비자들의 귀를 쫑긋 세우게 하는 생소한 것들이었다. 펑크를 구사했다는 사실 그 자체로 그들은 젊은 음악대중들의 시선을 잡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크라잉 넛이 음악계에 미친 충격파는 그에 못지않게 인디와 언더의 동의어라 할 ‘라이브’라는데 있었다.

‘방송출연’으로 존재를 구축해야 하는 제도 가수와 달리 그들은 ‘드럭’이 말해주듯 신촌, 홍대의 클럽을 활동거점으로 했다. 시청자를 겨냥한 텔레비전에 나가는 게 아니라 언더그라운드 무대에서 관객들과 직접 만나는 행위가 먼저이자 기본임을 시범했다. 크라잉 넛을 시작으로, 우리는 뒤늦게나마 라이브의 중요성을 알았다.

이 라이브 베스트가 갖는 의의는 4집 [고물라디오]를 마지막으로 일제히 군에 입대한 크라잉 넛의 단순 공백을 메우는 것에 있지 않다. 물론 이미 그들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 공연에 참여한 팬들은 아마 앨범에 그대로 녹음된 멤버들의 멘트만 들어도 마치 지금도 한경록이, 박윤식이, 이상면이, 이상혁이 눈앞에서 닥치라고 하는 듯 가슴에 벅찰 것이다.

그러나 그런 추억보다는 그들과 동격이나 다름없는 키워드가 라이브이기 때문에 이 앨범은 독립적 가치를 띤다. 그래서 이 앨범은 딴 정규 작들보다 ‘더 크라잉 넛적’이며 나아가 ‘진짜 크라잉 넛’이다. 멤버들의 멘트들이 전하는 위트와 즐거움과 관객들의 함성은 고스란히 음반감상자들을 공연장으로 몰고 간다. 실감나는 현장성이 만점이다.

공연장에서의 획득한 녹음수준과 믹싱 덕분에 사운드도 아주 가지런하고 정돈된 느낌을 준다. 어느새 크라잉 넛 사운드의 중추가 된 김인수의 어코디언, 천지인 활동을 시작으로 강산에를 비롯한 뮤지션들의 세션을 담당해온 고경천의 키보드는 크라잉 넛의 록 악기 편성이 갖는 단순함을 풍요로움으로 바꿔놓았다. 특히 ‘말달리자’와 더불어 크라잉 넛의 시그니처 송이 된 ‘밤이 깊었네’는 폭발과 원숙함을 동시에 살리며 분위기를 절정으로 몰아넣는 후련한 종지로, 강한 여운을 남긴다.

라이브로 전하는 그들의 베스트 히트모음집!

특히 이 공연 레퍼토리들은 먼저 96년 옴니버스 앨범 [아우어 네이션 1]에 수록되었다가 다시 녹음한 ‘말달리자’ ‘펑크 걸’을 비롯한 ‘검은 새’ ‘갈매기’ ‘안 웃겨’ 등 98년 데뷔 독집의 곡들에서부터 99년 2집 [서커스 매직 유랑단]의 ‘서커스 매직 유랑단’ ‘다 죽자’‘게릴라성 집중호우’ ‘베짱이’, 걸작으로 평가받는 2001년 3집 [下水戀歌]의 ‘밤이 깊었네’ ‘지독한 노래’ ‘양귀비’ 등이 고루 실렸다.

입대하기 직전인 2002년 12월에 발표한 4집도 [고물라디오]의 ‘고물라디오’ ‘오마이 007’ ‘황금마차’ ‘필살 Offside’ ‘너구리’ ‘퀵서비스 맨’ 등 마지막 활동 앨범의 베스트를 망라했다. 결코 특정 앨범으로 메뉴가 쏠려있지 않다. 이 정도면 ‘라이브로 전하는 크라잉 넛 베스트앨범’이다.

왜 그들이 정규앨범의 베스트로 컴필레이션을 하지 않았는가를 전제한다면 이 앨범의 의미망은 쉽게 파악된다. 라이브를 그들의 1차 정리방식으로 채택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현명하다. 의외로 똑똑한 땅콩들이다.

음악은 그들의 터전인 펑크를 넘어 로큰롤, 레게, 메탈, 얼터너티브, 포크, 폴카 그리고 뽕짝 등 갖가지 스타일이 난무한다. 장르의 어지러운 열거가 아닌 묘한(유치한 그러나 유연한) 잡동사니의 전형이다. 크라잉 넛이란 그릇에 담겼기에 하이브리드의 미학이 발생한 셈이다.
그동안 그들을 따라다녔던 ‘과연 그들이 펑크 록 밴드인가?’ ‘그들을 인디로 이름 할 수 있을 것인가?’ 등의 의혹들이 부질없음을 이 앨범을 말한다. 그런 반론들은 음악이 재미없고 즐겁지 않을 때 나오는 지적들 아닐까? 게다가 1집에서부터 4집에 이르기까지의 메시지들을 살피면 흥미로울 뿐 아니라 놀라움을 선사한다.

하이브리드에 실린 변함없는 자유의 메시지

사운드는 진화과정에 따라 변모를 꾀하고 있는 반면 메시지는 크라잉 넛의 정체성에서 조금도 벗어나있지 않다. 여전히 그들은 정착된 권력이 아닌 내일 없는 ‘유랑자’이며, 개미보다 ‘베짱이’를 연모하고, 룰을 지키기보단 ‘오프사이드’가 끌리고, 잘 살자는 말 대신 ‘다 죽자’고 하며, 주룩주룩 내리는 낭만의 비 아닌 ‘게릴라성 집중호우’와 백조 아닌 ‘검은 새’가 눈에 잡히는 삐딱선의 낙오자들이다.

이 점에서 그들이 우릴 혼동시키지 않았다면, 그것을 인정한다면 그들 사운드의 탈(脫)펑크는 음악예술로의 도약을 위한 땀으로 해석되어야지, 배신이나 훼절로 단정해서는 곤란하다. 그러한 편협한 틀로 그들의 자유를 속박해선 안 된다.

그들은 우리에게 펑크를 98년의 청춘어법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펑크를 ‘조선펑크’로 개화했고, 삼류나 B급이라는 소리를 들었어도 자진 집단 퇴청해 군으로 들어가는 청춘의 의(義)를 행동했다. 앨범은 마치 ‘낙오자는 우리가 아니라 바로 너희야!!’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제대로 하는 것도 없이 즐겁지도 못한 우리와 달리 크라잉 넛은 제대로 하고 또 잘 논다. 이 앨범은 청년의 자유를 가두는 ‘가식에 대한 은근한 난도질’이다. 아름답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땅콩들의 합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