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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ic Youth - Sonic Nurse
23년 경력의 베테랑 음향 치료사가 건네는 처방전 소닉 유스의 [Sonic Nurse]

20년이 넘는 경력은 자의건 타의건 시간의 흐름이라는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그에 걸맞는 세월의 흔적을 새겨가기 마련이다. 그 정도의 나이를 넘긴 거물급 밴드가 갖는 위상은 대개가 비슷할 듯 싶다. 쉬운 예로, U2처럼 활동기간을 시기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한 음악적 성향 변화를 보이며 변신하는 경우거나, 아니면 R.E.M 마냥 은근한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근간에서 벗어나지 않는 강직함을 고수하거나, 그 방향은 사뭇 다르다 할지라도 흔하게 들먹이게 되는 원숙한 노련미나 노장들의 여유로움은 거의 예외없이 적용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견지에 볼 때, 소닉 유스는 세월의 흐름이라는 자연적인 물리 현상마저 스치기를 주저하며 비껴가는 듯하다.
소닉 유스의 음악은 언제 들어도 항상 새롭고 신선하며, 어딘지 모를 세련된 이미지로 다가온다. 이는 비단 ‘유스’라는 밴드명에서 오는 착시현상이 아니다. 음악에 불로장생이 존재한다면 소닉 유스가 바로 그 은혜를 입은 밴드다. 아니 은혜를 얻었다기보다 스스로 불로장생의 영약을 찾아내는 천재성을 타고 났다는 표현이 더욱 적합하지 싶다.
1980년대 초반 등장해 음악을 구성하는 상식적인 요소들은 죄다 외면한 채 정체모를 소음들을 만들기에 열중했던 멤버들은 데뷔작인 [Sonic Youth]를 비롯한 일련의 앨범에 그들만의 실험 결과물을 얌전히 포장해 선보였다. 일반적인 상식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사운드를 선보였던 이들은 음악계에 충격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그간 존재했던 어떤 스타일과도 타협하지 않고 그 어느 흐름에도 속하지 않았던 소닉 유스는, 결과적으로 ‘노웨이브’라는 장르 아닌 장르를 탄생시켰고, 얼터너티브의 형성과 발전에 기름진 영양분으로 폭넓게 자리했다. 예술과 문화의 도시 뉴욕의 예술학교 출신답게 불협화음과 소음의 집합물을 예술로 승화시켜버리는 재능을 발휘한 것이다.

골수 팬들을 제외하고는, 너바나를 세상에 소개하는데 한몫했던, 카펜터스의 “Superstar”를 우울한 절망 속에 빠뜨린 장본인으로서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소닉 유스. 각종 음악지를 통해 당연스레 높은 별점을 얻으며 위세를 드높이지만, 정작 시험관 빽빽한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정체 모를 우연의 산물처럼, 이들의 난해하고 생소한 사운드를 끄덕이며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설령 그것이 듣는 이의 음악적인 수준을 가늠하는 절대적인 잣대가 된다할 지라도 상황은 그다지 바뀌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커버하기 어려운 밴드’라는 자랑스런 타이틀을 얻으면서, 이미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머리 자를 시간이 없어 긴 머리를 해야만 했던 인디 시절을 지낸 이들에게 7장의 앨범이 빌보드 20위 권에 드는 성공을 거둔 것은 전혀 예상치도 바라지도 않았던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업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소닉 유스는 존재 자체 만으로도 예술적이다. 인생 자체가 예술인 멤버 개개인의 면모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소닉 유스가 새롭게 선보이는 앨범 [Sonic Nurse]는 어머니의 품과 마찬가지인 뉴욕의 분위기와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 이는 2000년도 작인 [NYC Ghosts & Flowers]와 2002년 발표한 [Murray Street]에 이어 세 번째 시도이다. 이번 앨범에는 지난 두 앨범을 완성시킨 스탭이 그대로 작업에 참여했다. 뉴욕 출신의 펑크 개척자인 리차드 헬(Richard Hell)이 프로듀싱을 맡았고, 전작부터 소닉 유스의 새로운 연금술사로 합류한 짐 오루크가 믹싱을 담당했다. 2003년 8월부터 2004년 2월까지 6개월에 걸쳐 완성되었으며, 언제나 그렇듯이 23년이라는 경력이 무색하도록 참신한 사운드를 담아냈다.

소리로 치유하는 간호사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기라도 하듯 이번 앨범에서 특히 돋보이는 것은 킴 고든의 역할이다. [Murray Street]에서는 오래된 벽지처럼 배경으로만 희미하게 존재했던 그녀가 전면으로 부각되어 여러 차례 목소리를들려준다. 킴 고든은 이번 앨범에서 보컬 뿐 아니라 작곡에도 참여해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첫 트랙인 “Pattern Recognition”을 비롯해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인 곡들이 그녀의 손에 의해 탄생한 것인데, 그녀의 복귀를 환영하는 팬들의 환호가 벌써부터 들리는 듯하다.
소닉 유스의 신작은 그간 어느 앨범보다 멜로디가 부각되어 있고 템포도 확실히 느슨해졌다. 노이즈를 실어내며 도도히 혼자서 나아가던 도발적이던 사운드 역시 어느 정도 길들여진 듯하다. 수록곡 중 초기의 해체주의 경향을 보이는 것은 팝 아이콘에 대한 풍자를 담은 “Kim Gordon And The Arthur Doyle Hand Cream”이 유일하다 (원제 “Mariah Carey And The Arthur Doyle Hand Cream”). 이렇듯 앨범을 관통하고 있는 기본적이고 전반적인 특징들을 열거하자면, 서서히 총기를 잃어가는 예지인의 모습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닉 유스는 언제나 그랬듯이 여전히 그들만의 세련된 감각을 간직하고 있다.
[Sonic Nurse]가 예전에 비해 많은 멜로디를 들려주는 앨범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음악에서 노이즈는 빠질 수 없다. 노이즈 자체가 바로 밴드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앨범에서 들려주는 노이즈는 멜로디와 공존하며,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사이좋게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고 있다. 고집 피우지 않고 한발 물러선 상태에서 한 울타리 안에 살아 있는 것이다. 이렇듯 멜로디와 노이즈가 사이좋은 교류를 이루는 가운데 소닉 유스는 ‘음향 치료사’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여섯 번째 트랙인 “Dude Ranch Nurse”는 소닉 유스 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음향과 소리의 조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곡으로, 듣고 있으면 몽환적인 멜로디와 오묘한 사운드를 혼합한 최면요법 속에 빠져드는 자신을 느낄 것이다.
이미 [Murray Street]를 통해서 멜로디를 대폭(?)적으로 수용하려는 시도를 했던 이들이지만, 천하의 소닉 유스라 하더라도 전작에서는 그 타협점을 찾는데 적지 않은 혼란을 겪는 듯 했다. 하지만, 이제 이들은 ‘전위적인 실험주의자’라는 그들에게 부여된 사명(?)에서 벗어나 심리적으로 보다 자유로운 상태에서 음향을 동반한 멜로디의 바다를 떠돌고 있다. 지금껏 형식을 파괴하고 소리를 해체하는 대명사로 군림했던 소닉 유스가 이제 나름대로의 형식 안에 무언가를 담아내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조심스러운 예측도 해본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이 또한 그들만의 또 다른 시도로 인정하고, 스스로에게 부끄러움 없는 그들만의 솔직함을 왜곡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할 따름이다.

“[Jealous Again] 발매 당시의 블랙플랙(Blackflag)과 함께 잼연주를 즐기는 [Bare Trees] 시절의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을 상상해 주길 바란다.” 신작을 소개하는 소닉유스가 팬들에게 보내는 조언이다. 앨범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두 앨범을 구해 착실하게 혼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예술과 문화의 도시 뉴욕에서 태어나 거대한 사과 속에 녹아 든 풍부한 예술적 기반을 바탕으로 시대의 조류 그 가장자리에서 흔들림 없었던 소닉 유스, 노이즈의 향연을 이어가며 얼터너티브 록이라는 90년대를 관통하는 거목에 깊은 뿌리로 존재하는 소닉 유스, 그들이 향유하는 영원한 젊음이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