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Duke Jordan Trio - Eternal Travelers
|
|
[Flight To Denmark] 이후로, 가장 대중적인 선곡과 가장 대중적인 연주를 맛깔스럽게 담아낸 또 하나의 걸작!!
음악계를 보면 너무도 유명한 한 장의 앨범 덕에 그 아티스트의 다른 수많은 앨범이 빛을 못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유명한 만큼 대표작으로 소개되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최고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중들에게는 ‘아티스트 = 특정 앨범’이란 공식으로 뇌리에 각인되고 만다. 재즈 쪽에서 볼 때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듀크 조단 = Flight To Denmark’일 것이다.
설원에서 홀로 서있는 듀크 조단의 모습을 담은 앨범 자켓! 굳이 재즈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음악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어디선가 본적이 있을 것이다. 국내에 듀크 조단이란 뮤지션을 소개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작품인 동시에 오늘 날까지도 그를 구속하고 있는 바로 그 작품이 [Flight To Denmark]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1973년 듀크 조단이 덴마크의 스티플체이스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발표한 첫 작품으로 그 후 수 십장의 앨범이 이 곳에서 발매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독 [Flight To Denmark]만이 인기를 얻고 있다는 건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인터넷 최고의 음악 DB를 자랑하는 AMG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평자들은 듀크 조단의 최고작으로 블루노트 레이블에서 발표한 [Flight To Jordan]를 뽑는다.
이 앨범의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2004년 국내에서 라이선스로 출시됐던 [The Beauty Of Scandinavia]의 라이너를 맡았던 어느 일본 평론가의 지적대로 [Flight To Denmark] 앨범이 과연 듀크 조단의 음악세계를 온전하게 담아 냈을까라는 점에는 분명 많은 이견이 있을 것이다. 특히 그가 1940년대 비밥이 막 태동할 무렵, 찰리 파커와 함께 활동하며 비밥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다는 점, 그리고 50년대 SAVOY에서 발표한 그의 초창기 음반들을 기억하고 있다면 분명 [Flight To Denmark]는 보다 가볍고 단순화된, 상당히 대중적인 성향을 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듀크 조단이 [Flight To Denmark] 이후 발표한 스티플체이스의 작품들 [As Times Goes By] [Tivoli]와 비교해봐도 알 수 있다. 사실 [Flight To Denmark] 국내에 널리 알려지게 된 데에는 일본인들의 이 앨범에 대한 놀라운 사랑이 큰 역할을 하였다. 1973년 이 앨범이 발표된 후 일본 재즈 팬들에게서 커다란 사랑을 받았고 그런 인기를 바탕으로 일본에서의 공연이 자주 이루어졌으며 [Osaka Concert] [Live In Japan] 그리고 최근 국내에서 소개된 3361 블랙 레이블의 작품들 [Live Live Live] [Kiss Of Spain] 등은 모두 일본 공연 실황을 기록한 작품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만나는 듀크 조단의 연주 역시 [Flight To Denmark]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중후한 느낌은 아니지만 가볍다기 보다는 어느 정도의 무게감이 느껴지면서 다양한 즉흥연주가 가미된 보다 복합적인 구성의 연주를 만나게 된다.
사실 기존의 듀크 조단의 모든 앨범이, 하물며 [Flight To Denmark] 마져도 수입 음반으로만 소개되었기에 실질적으로 듀크 조단의 음반을 소장한 이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Flight To Denmark]와 [The Beauty Of Scandinavia] 비록 후자가 일본인 프로듀서 마코토 키마타에 의해 제작되었기에 일본인들이 특히 선호하는 피아노 트리오 형식으로 흐른 감이 없진 않지만 [Flight To Denmark]를 통해 각인되었던 말랑말랑한 연주를 들려주는 피아니스트 듀크 조단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었다. 결코 듀크 조단은 케니 드류와 같은 우아하고 빛나는 로맨티스트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근면성실하고 담백한 피아니스트에 가까웠다. [The Beauty Of Scandinavia]는 바로 듀크 조단의 이런 면을 친숙한 스탠다드를 통해 우리에게 보다 쉽게 전달해 주었다.
[The Beauty Of Scandinavia]는 1995년 8월 25일과 26일 양일에 거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녹음되었다. 그리고 1년 뒤 마코토 키마타는 동일한 라인업으로 또 한 장의 앨범을 제작하였는데 바로 그 앨범이 국내에 두 번째로 라이선스로 발매되는 본 앨범 [Eternal Travelers]이다.
이 앨범은 90년대 중반 일본 재즈계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멜닥 레이블에서 발매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멜닥 레이블이 쇄락함에 따라 최근에는 앨범 자체를 구하기가 힘들 정도로 희귀반이 되었다. 여기서 듀크 조단은 여행을 테마로 자작곡과 스탠다드를 연주하고 있는데 전작에 이어 다시 한번 그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수작으로 손색이 없을 듯하다. 특히 [Eternal Travelers]는 선곡에 있어 전작보다 훨씬 대중적이며 근면성실한 그의 이미지에 더욱 부합되는 작품이라고 자부한다. 더군다나 예스퍼 룬가르(b), 에드 씨그펜(ds)으로 이루어진 트리오 라인업은 70년대 스티플체이스 시절부터 듀크 조단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던 멤버들로 베이스와 드럼 연주 역시 주목해야 할 것이다.
10곡이 수록된 이번 앨범에 듀크 조단의 자작곡은 ‘No Problem’ ‘The Fazz’ ‘Lullaby Of The Orient’ 세곡이며 ‘How Deep Is The Ocean?’ ‘I Better Watched Out~It Had To Be You’ ‘September Song’ ‘Time After Time’ ‘From Russia With Love’ ‘St. Thomas’ ‘Sentimental Journey’ 등 7곡의 스탠다드가 담겨있다.
‘No Problem’이야 듀크 조단의 18번과 같은 곡이며 ‘Lullaby Of The Orient’는 일본 공연을 계기로 그가 작곡한 특별한 곡으로 유명하다. ‘St. Thomas’ ‘Time After Time’ ‘September Song’ 등은 국내 재즈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스탠다드인데 영화 007의 주제가였던 ‘From Russia With Love’가 수록된 점이 특이하다. 오프닝 ‘How Deep Is The Ocean’은 마치 피아노 소나타를 연상시키듯 클래시컬한 플레이로 시작하는 듀크 조단의 화려한 연주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지나치게 탐미적이지도 않으면서도 건실한 서정성을 담은 듀크 조단표 연주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런 그의 모습은 친숙한 멜로디의 ‘September Song’이나 ‘Time After Time’ 그리고 ‘Sentimental Journey’에서도 계속된다. 성실하게 한 음 한 음 연주하되 결코 현란함에 빠지지 않는 담백한 피아노의 울림은 좀처럼 귓가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특히 영화 [카사블랑카]의 연주 장면을 연상시키는 ‘Time After Time’의 경우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근면성실한 담백한 피아니스트 듀크 조단의 모습을 확연히 만날 수 있다.
듀크 조단의 연주 외에도 예스퍼 룬가르와 에드 씨그펜의 리듬섹션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들은 리듬이 돋보이는 작품 ‘No Problem’ ‘From Russia With Love’ ‘St. Thomas’ 등에서 빼어난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데 특히 듀크 조단 – 예스퍼 룬가르 – 에드 씨그펜 트리오의 놀라운 앙상블이 돋보이는 ‘St. Thomas’에 주목하기 바란다.
[Eternal Travelers]는 [The Beauty Of Scandinavia]와 동일선상에 있는 작품이면서도 선곡 면에서 보다 대중적인 요소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하기에 [Flight To Denmark]를 통해 듀크 조단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에게 꼭 들어보라고 강력 추천하고 싶다. 듣기 편한 말랑말랑한 연주를 하는 피아니스트라는 그에 대한 선입관을 이제는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 앨범을 통해 많은 이들이 듀크 조단의 음악세계와 조우할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