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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유 (Where The Story Ends) - 2집 / Where The Story 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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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결코 끝나지 않을 이야기' 그룹 W
2001년, 'Where The Story End', 줄여서 'WTSE'라는 조금은 길고도 낯선 이름의 그룹이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그 뜻 “이야기가 끝나는 곳” 은 대부분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화의 끝부분에 자주 쓰이는 어구라고 한다. 이들의, 두 눈을 감으면 눈 속에 보이는 정체 불명의 섬광, 살바도르 달리가 무인도에서 마지막으로 작업하고 싶은 소재로 꼽았다는 [안내섬광(眼內閃光)]이라는 제목을 단 이 앨범은, 모하비, 달파란, 트렌지스터 헤드 등 실력 있는 테크노 뮤지션들의 본격 테크노 앨범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던 90년대 말, 소위 '한국 테크노 태동기'가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에 발표된 앨범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데뷔작인 [안내섬광]은 이전에 우리가 만났던 정통 테크노 사운드들과는 그 방향성을 조금 달리 했다. 오히려 그들이 선보이는 사운드는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소프트하고 멜로디에 중점을 둔 'POP'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매니아가 아니라면 조금은 버거울 수 있는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에 팝의 감성을 적절히 녹여내며 '따뜻한 디지털'이라는 색다른 사운드를 만들어낸 세 남자, 그들이 바로 배영준, 김상훈, 한재원이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은 모두 그룹 '코나'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팀의 리더인 배영준은 '그녀의 아침',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마녀 여행을 떠나다' 등 아름다운 멜로디와 세련된 라틴리듬의 '여름 노래'들로 90년대에 큰 사랑을 받았던 그룹 코나의 리더, 한 마디로 '멜로디 메이커'다. 그룹 W의 막내이자 메인 보컬을 담당하고 있는 김상훈 역시 2000년 코나 5집에 실린 를 통해 작곡가로 데뷔한 이후, 박완규, 한경일, 박기영, 박혜경 등 많은 가수들에게 곡을 주며 그 이름을 알려왔다. 팀의 '둘째'인 한재원은 팀 내에서 가장 스타일리쉬하며, 동시에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에 특출한 실력을 보여 현재 DJ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99년에 그룹 TGS로 데뷔, 2000년에 코나 5집을 통해 그 실력을 검증 받았다.
이처럼 메인스트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던 세 남자는 매번 대중들의 기호에만 맞추는 가요보다는 자신들이 정말 원하는 음악을 하겠다는 신념아래, 소규모 인디 레이블로서 좋은 뮤지션들을 다수 배출해낸 '문라이즈 레코드'를 통해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당시 그들은 '오버에서 언더로의 회귀'라는 점에서 이한철의 그룹 '불독맨션'과 자주 비교되기도 했다. 그러나, 소규모 레이블이라는 영업/홍보의 한계, 게다가 일반인들은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의 개념조차 모호해하던 시절이었기에, 다시 말해 시대를 너무 앞서간 바람에 비평가들의 열렬한 지지와 찬사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 큰 반향을 얻지는 못했다. 그리고 2005년, 그들은 러브홀릭, 이승열, 클레지콰이 프로젝트 등 음악적 깊이와 대중성을 고루 겸비한 감각 있는 뮤지션들을 배출해낸 플럭서스(Fluxus) 레코드와 전격적으로 계약하고, 그룹명 역시 'W'로 개명하여 새 앨범을 발표하게 되었다. 결코 끝나지 않을 그들만의 이야기가 또 다시 시작되려 하는 것이다.
한국 퓨전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의 결론.
‘W'로 이름을 바꾼 그들의 새 앨범은 그야말로 한층 세련되어지고, 더욱 멜로딕해졌다. 그간 그들이 펼쳐온 기존의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의 강점들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멜로디와 가사를 통해 대중적인 설득력까지 겸비했다. 그런 면에서 그들의 새 앨범은 '퓨전 하우스'라는 새로운 대안으로서 한국 댄스뮤직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클래지콰이 프로젝트'의 음악과도 많은 부분에서 비교할 만하다. 클래지콰이 프로젝트의 음악에 비해 좀 더 남성적이면서도 스트레이트하며, 오히려 좀 더 '한국적'이다. 그들은 '일렉트로니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록, 블루스, 소프트 팝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혼합, 새로운 'W'사운드를 직조해낸다. 그들의 노래는 때로 석양이 지는 도시의 도로를 가로지를 때의 BGM 같기도 하고, 빛나는 토요일 밤의 클럽에서 울려퍼지는 나만의 주제가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럼 이쯤에서 그들의 노래를 한곡 한곡 간단히 짚어보기로 하자.
1. 소년세계
오랜 세월 음악활동을 하며 어느덧 어엿한 '어른'이 된 세 남자이지만, 아직도 풋풋한 소년같은 감성을 지니고 있는 그들을 대변하듯, 그들의 첫 곡은 <소년세계>다. 세련된 비트 위로 흘러나오는 김상훈의 담백한 목소리가 오히려 귓속에 따뜻하게 감싸온다. 별 볼일 없는 시시한 어른이 된 후에라도 잊고싶지 않은 소년 시절에 대한 찬가. 드라이빙 뮤직으로 딱 알맞은 곡이다.
2. Shocking Pink Rose
‘일렉트로니카’로 대변됐던 이전의 'WTSE'가 'W'로 바뀌면서 음악적인 부분에서 시도된 대변신이 가장 강력하게 느껴지는 곡. 더 이상 그들은 한 가지 장르를 고집하지 않는다. 이 곡만 들어보면 70년대의 로큰롤, 혹은 80년대 중반의 뉴웨이브 사운드가 떠오르기까지 한다. 펑크정신을 대변하는 빛깔이 곡의 제목에 니오게 된 배경에는 일본의 대표적인 만화작가중의 하나인 야자와 아이의 “나나”라는 만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간 코나, 혹은 여러 뮤지션들의 곡작업을 해오며 쌓아온 장르를 가리지 않는 프로듀서로서 그들의 공력이 느껴지는 곡이다. 참고로 그들의 새로운 그룹명이 바로 이 '쇼킹 핑크 로즈'가 될 뻔하기도 했다고 한다. 러브홀릭, 이승열, 클래지콰이, 김한집, 그리고 플럭서스의 모든 스텦들이 코러스로 참여했다.
3. Highway Star
아무리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혼재한다해도 그들의 정체성이 '퓨전 일렉트로니카'에 있음을 대변하는 듯한 트랙으로서, W의 음악을 대표할 만한 곡이다. 강렬한 비트 위로 펼쳐지는 화려한 일렉트로니카 사운드, 깊이 있는 가사와 멜로디까지 눈부시도록 세련된 노래다.
4. Everybody wants you
그룹 W, 혹은 의 '그룹송'이다. “Stayin' Alive, 빛나는 토요일 밤, 마음껏, 네 기운껏, High Enough, 널 위한 Disco Guide, 두려워할 것 없어. 들려와 너의 마음이, 너무 쉬운 이 노래에 놀랐다고? 천만에! 이게 바로 Where the story Ends~! Boy meets girl, and Girl meets boy, 끝없는 이야기들.” 그 가사만으로도 그들의 음악적 지향점을 알 수 있다. 모두 함께 어깨동무를 한 채 춤추며 합창하고 싶은 노래다.
5. Bubble Shower
“끝도 없는 사막 같은 밤, 굵은 소금 절인 너의 꿈, 어지러운 잠의 비린내, 이젠 너를 흔들어줄게.” 강렬하게 뇌리에 박히는 가사, 어쿠스틱 기타의 깔끔한 스트록 위로 펼쳐지는 일렉트로니카 사운드 특유의 몽환적인 느낌, 그리고 그들의 '서정적 감성'이 적절하게 배합된 곡이다. 기본적으로 일본 시부야케를 대표하는 뮤지션 코넬리우스(Cornelius)의 이라는 곡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결국 그 곡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양심적(?)으로 밝히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6. 만화가의 사려 깊은 고양이
밤새 펜촉을 긁어대며 원고 작업을 하는 만화가의 애완 고양이, 라는 특이한 설정아래 고양이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W표 발라드'. 어떤날, 토이 등으로 대표되는 90년대 언더그라운드 가요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낸 곡으로, 2분 17초 부분에서 더해지는 강렬한 Drum & Bass 사운드가 퓨젼 일렉트로니카의 정수를 보여준다. 멜로디 메이커 배영준의 감각이 돋보이는 이 곡은 듣는 이에 따라서 본 앨범의 Best로 손꼽을 만큼 후렴구의 멜로디가 아름답고 인상적이다.
7. 은하철도의 밤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은하철도 999의 원작이자 일본의 문호 미야자와 겐지의 소설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이 곡은 <소년세계>, 와 마찬가지로 'W표 드라이빙 뮤직'으로 딱 알맞은 곡이다. 단, 이번 드라이빙은 낯선 도시의 네온이나 외로운 고속도로의 석양 아래가 아니라 검푸른 은빛 별들의 바다다. 마치 한 편의 동화처럼 소프트하면서도 테크니컬한 사운드의 트랙이다.
8. 거문고 자리
아무래도 W의 세 남자는 뮤지션을 때려치우고 천문학자라도 될 모양이다. <은하철도의 밤>을 노래하더니 이번에는 <거문고 자리>란다…. 매일 밤, 별 보고 스튜디오에 와서 온종일 연습과 녹음만을 반복하다가 별 보고 집에 들어가기에 이런 곡들이 나오는 걸까? ^^;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그들이 무대에 설 때면 결코 빼놓지 않고 연주하는 곡일 만큼 퓨전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의 강점들이 모두 녹아있는 곡이다.
9. 푸른 비늘
그룹 W에서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주로 담당하고 있는 한재원의 솜씨가 120% 발휘된 곡. 의 속편이라 생각해도 좋을 만큼 몽환적인 사운드가 전체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곡이다. “뛰는 너의 심장은 강철 아가미, 여린 너의 솜털은 푸른 비늘로…” 배영준이 아니면 만들어내기 힘든 독특한 가사를 주시하자.
10. LEMON
처음 듣자마자 W의 신곡이 아닌 '코나'의 신곡이라고 착각했을 만큼 '코나的' 트랙이다. 상쾌한 바닷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모래밭에서 우쿨렐레 기타를 연주하는 한 남자와 그 멜로디에 맞춰 파란 치마를 휘날리며 노래를 부르는 소녀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상큼함과 “투명한 꿈의 유리알 유희, 서글픈 Digital의 편지들” 같은 현학적인 가사가 어우러질 때 우리는 이미 W가 한국 가요가 쉽게 닿을 수 없는 어떤 경지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린 소녀의 목소리의 주인공은 한재원의 제자인 '민경나'라고 한다.
11. 만화가의 사려 깊은 고양이 -Stormy Monday mix
기타와 드럼 등 단촐한 밴드 스타일로 연주되었던 6번 트랙의 '만화가의 사려 깊은 고양이'가 단 한 대의 피아노, 그리고 창밖으로 내리는 빗소리만을 반주로 남긴 채, 러브홀릭의 보컬 '지선'의 목소리를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 지선을 통해 재탄생된 <만화가의 사려 깊은 고양이>는 좀 더 서글프고도 가슴 깊은 속에 파동을 일으킬 만큼 깊은 맛을 자아낸다. 이 곡을 들을 땐 짙은 에스프레소 한잔을 곁들여야 할 것 같다.
12. Let's Groove
2003년 MBC에서 방영된 드라마 <좋은 사람>의 O.S.T.에 참여하며 발표했던 곡. 이후 W가 나아갈 사운드의 지향점을 보여줬던 곡으로서, 핸드폰 컬러링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으로 널리 퍼졌을 정도로 엄청난 매력을 품고 있다. 매니아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그들의 차기 앨범을 더욱 기다리게 만들었던 곡이다. 한 번 듣는 것만으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멜로디, 특히 중반부의 '이 날카로운 밤, 어지러운 잠, 끝을 알 수 없는 이야기…'라는 부분은 가히 압권이라 할 만큼 매력적이다.
13. 경계인 (featuring mechury)
항상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눈, 때론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고 나의 진심이 택한 곳을 향해 노래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싶다는, W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곡이자, 본 앨범을 마무리하는 짧고도 깊은 여운을 가진 대단원의 트랙이다. 작자인 배영준이 말하길 재독 학자 송두율교수가 이 가사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탈 이념의 동시대성을 지향하는W의 진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