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보사노바의 전설 조왕 질베르토가 들려주는 순연한 음악적 정화
보사노바는 브라질의 축제 음악인 삼바 리듬에 쿨 재즈의 서정성과 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고급스런 선율이 한데 어울린 복합적인 음악이다. '새로운'의 의미의 'Nova'와 '접촉'이란 뜻의 'Bossa'가 합성되어 '새로운 물결(New Wave)', '새로운 천성'이란 의미로 1960년대 재즈 씬에 제안되었다. 라틴 아메리카, 그 중에서도 특별히 브라질의 민속 음악에 뿌리를 둔 삼바 리듬은 아프리카 리듬에서 전이된 것이므로, 혈연적으로 재즈와 가까이 닿아 있는 음악이었다. 음악의 구조적인 면에 있어서도 보사노바의 유려한 하모니는 절제된 즉흥 연주와 자연스러운 스윙감을 유발하고 있다. 삼바 리듬과 백인들의 감성적인 재즈의 매력이 결합된 보사노바는 1950년대 말 브라질에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과 조왕 질베르토라는 두 명의 거인의 작업을 통해 미국으로 전파되었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최초의 보사노바 레코딩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이 작곡한 'Chega de Saudade'를 조왕 질베르토가 노래한 브라질 오데온 레코드의 앨범이라 전해진다. 이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은 재즈 기타리스트 찰리 버드의 마음을 사로 잡았으며, 찰리 버드는 재즈의 전투에서 낙오된 테너 색소포니스트 스탄 게츠에게 이 감미로운 음악을 설명해 주었다. 찰리 버드와 스탄 게츠는 1962년 'Jazz Samba'라는 앨범을 통해 보사노바 광풍(Bossa Nova Craze)'에 불을 지폈다. 뜻하지 않은 미국 재즈 팬들의 환영에 고무받은 스탄 게츠는 이내 보사노바를 자신의 스타일에 접착시키고, 이듬해 보사노바의 원조격인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과 조왕 질베르토, 그리고 조왕의 아내 아스투러드 질베르토를 미국으로 초대하여, 보사노바의 바이블이라 일컬어지는 'Getz/Gilberto'를 발표한다. 이 앨범은 설 곳을 잃고 방황하던 스탄 게츠에게 굳건한 입지를 마련해 주고, 브라질의 보사노바 스타들에게는 세계의 무대를 제공하였다. 더불어 앨범에 수록된 'The Girl from Ipanema'는 비틀즈의 팝 넘버들이 빌보드를 잠식할 당시, 빌보드 팝 차트 2위를 차지하고, 그래미 4개 부문 수상 등의 영예를 안겨 주며, 팝의 공세에 밀려 존립 자체가 위협받던 재즈의 대중적인 기반을 새롭게 건설해 주었다. 이후 보사노바는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을 축으로 재즈에 발딛고 있는 모든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음악적 소재로 가장 빈번하게 바라보는 대상으로 자리하며, 대중과 재즈의 관계를 돈독하게 연결해 주는 고리로서 변함없는 위상을 확보하여 왔다.
그런 의미에서 보사노바라는 흥겹고 싱그러운 음악이 처음 우리에게 소개된 지 40여년이 지난 오늘. 더 이상 보사노바는 새로운 음악적 감흥을 안겨 주지 못한다. 보사노바의 교주였던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은 1994년 세상을 떠났고, 보사노바를 재즈에 안착시킨 상징적인 존재 스탄 게츠도 그 이전인 1991년 고인이 되었다. 더구나 미국에 보사노바를 처음 소개한 또 한 명의 보사노바교의 장로 찰리 버드 조차 지난 1999년 세상을 떠났다. 이들이 남겨 놓은 'The Girl from Ipanema', 'Corcovado', 'Desafinado' 등의 보사노바 명곡들은 세대와 국경을 초월한 후배 뮤지션들에 의해 끊임없이 애창되는, 20세기 음악의 클래식이었다. 재즈계의 노병사들은 대중들의 관심속에 멀어질 때 마다 보사노바라는 친근한 소재를 선택하였고, 팝 아티스트들도 자신의 재즈에 대한 관심을 피력하기 위한 손쉬운 접근으로 어김없이 보사노바의 친화력을 빌었다. 더 이상 보사노바를 통해 새로움을, 신선한 감동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 소개하는 이 앨범은 잊고 있었던 보사노바의 음악적 힘을 다시 한번 우리들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다. 새로운 세기에 요구되는 복합적인 음악적 실험이 제시되는 것도 아니고, 어찌보면 이질적인 경험도, 낯선 충격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역설적으로 그 신선함과 충격은 보사노바가 처음 태어날 당시의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소박하게 드러냄으로써 거두어지는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이 조용하지만 가슴 깊숙이 맺히는 감동의 주역은 최초의 보사노바 아티스트라는 명예로 살아 있는 조왕 질베르토이다. 이제 세월의 뒤안길에 묻혀 어느덧 칠 순의 나이에 접어든 보사노바의 노 대가는 오랜 침묵을 깨고 조용히 우리 곁으로 찾아 왔다.
그가 무대에 섰다. 그러나 거장의 무대는 초라하게 느껴진다. 아니 초라하다는 오해를 살만한 요소들이 있을 분이다. 그가 뿌려 놓은 음악을 추종하던 동료, 후배들의 축복도, 그의 기타를 감싸줄 인위적인 오케스트레이션도 없다. 백발의 노인이 되어버린 조왕 질베르토는 늘 자신과 함게 있던 기타 한대만을 무대에 올라갔다. 그리고는 리허설 없이 거침없이 자신의 감정을 마이크를 통해 실어 냈다. 지난 날 전 세계를 물들였던 특유의 나른하고 포근한 보컬의 음색은 변함이 없다. 마치 세상살이는 유명무실, 무상하다는 듯 관조적인 톤으로, 그러나 음악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따스한 온기가 스며 있는 그의 노래는 삶의, 사람의 냄새가 배어난다.
보사노바의 살아있는 전설 조왕 질베르토의 앨범 'Live in Tokyo'는 지루한 작품이다. 심심하고, 나른하다. 몇 곡 듣다가 한껏 늘어진 분위기에 스르르 잠들지도 모른다. 첨단의 과학과 신문명의 구호가 난무하는 21세기에 이렇게 일체의 이펙트, 특수 효과, 믹싱을 거부한 채 원음 그대로를 담는 것은, 더구나 새로운 볼거리, 들을거리를 열망하는 세대를 향해 스스로의 기타 반주에 의지한 채, 노래하는 것은 무모한 모험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음악은 인간이 창조한 산물이다. 그리고 그 음악의 주체는 청중 이전에 음악을 행하는 아티스트 자신이다. 음악은 자신과의 대화이다. 자신의 삶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 보사노바를 칠 순의 나이에 다시 만지며, 조왕 질베르토의 머리 속에는 상업적 성공, 지난 날의 명예는 자리할 틈이 없었나 보다. 그는 자신의 체취가 담겨있는 자신의 음악을 소박한 문체로 서술한다. 그것은 삶을 돌이키며 써 놓은 솔직한 자기 고백이다. 덕분에 그가 선택한 초라하고, 지루한 음악은 일상에 쫓기며 문명의 노예가 되어 가고 있는 우리네 가슴속에 포근한 휴식으로 자리한다. 나는 우연히 내게 찾아온 이 담백의 여백 많은 음악을 들으며, 사람들의 냄새를 그리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