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hn Trio (안 트리오) - Lullaby for My Favorite Insomni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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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I를 떠나 자신들만의 레이블에서 첫 발매한 안 트리오의 새로운 앨범. 클래식 크로스오버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의 새로운 앨범으로 박진영, 임정희, 수지 서, DJ Spooky 등의 아티스트들이 함께 참여했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반가운 이를 만났을 때 “세상 참 좁네”라며 그 동안 소홀했던 안부를 묻고 우연한 만남을 환영한다. 남에게 감춰온 은밀한 비밀이 공공연하게 노출되었을 때 “세상 참 비밀 없다”라며 비좁은 세상을 야유한다. 여섯 다리만 거치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케빈(영화배우)의 법칙’은 세상의 작은 크기를 역설하고 있다. 그 작은 세상에서 우리는 수많은 만남을 경험한다. 대부분의 만남이 기억 너머 망각의 깊은 늪으로 사라지고 잊혀 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소중하고 분명하게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안 트리오 세 자매와의 만남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지금처럼 이들 트리오는 무언가 색다른 것을 모색하고 있었다. 뉴욕의 사진작가 아서 앨고트와 작업하였고 미국 유수의 패션 화보지 출연하였다. 앤 클라인 모델 활동 등으로 이미 패션계의 거물로 떠올랐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음악적 변화를 꾀하는 일이었다. EMI 레이블로 출시된 쇼스타코비치, 드보르작의 피아노 트리오 앨범이 그들과의 첫 만남이었다. 단호한 안젤라, 세심한 루시아, 사려 깊은 마리아. 그런 그들이 함께 어울리면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만들었다. 젊고 신선함이 묻어나는 세련된 감각과 창의적인 색채였다. 특별한 의상을 입거나 화려한 액세서리로 치장을 하지 않아도 그들은 돋보이고 두드러졌다. 그들 음악도 그랬다.
EMI에서 출시한 두 번째 앨범
새로운 모색은 다음 앨범
안 트리오에게 ‘L4MFI’는 새로운 시작이다. EMI를 떠나 자신들 이름의 이니셜을 빌어 LAMP (Lucia, Angela, Maria Production)라는 음반 레이블을 만들었다. ‘日新又日新’ 오늘 새롭고 또 내일 새로워야 한다. 새로워지기 위해, 구태를 벗어버리고 샘솟는 아이디어와 창조적인 야심을 이번 음반에 전이하였다. 주위에 많은 협력자와 지지자가 있다는 것은 이번 앨범의 수준을 보증한다.
이번 앨범의 주요 컨셉을 트리오는 “Hybrid”또는 “Alternative Classics”라고 말한다. 변화의 기본 골격이다. 아니 ‘변화’ 자체가 앨범의 골조를 이루고 있다. 대안의 클래식이라고 단정 짓기보다는 열린 음악을 하고픈 그들의 열망과 희망을 읽을 수 있다. 음반 말미, 보너스로 수록된 몇 곡에 그들의 배려가 숨어있다. 일렉트로니카 혹은 컨셉츄얼 아티스트(Conceptual Artist)라고 불리는 DJ Spooky가 리믹스한 독특하고 세련된 사운드가 대안의 길목을 열고 있다. 하지만 변화의 목표는 마이클 니만, 피아졸라, 데이빗 보위의 음악에서 속내를 드러낸다. 안플러그드 음반에서 선보였던 세 곡을 특별히 다시 불러낸 까닭을 상상해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의 서먹함과 조심스러움이 세 거장의 음악에 묻어있을 것이다. 아쉬움과 미련은 그리움으로 바뀌었다. 다시 만났을 때는 친구 같은 시선과 눈높이로 그려낼 수 있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작은 변화지만 새로운 만남이 좋은 이유다.
[글: 김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