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희 (Jun Doohee) - This is N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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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몽환적인 흑백 느와르 영화를 보듯 음습하고 퇴폐적 분위기의 록 음악으로 돌아온
전두희 [This is NOT]
전두희의 정식 솔로 데뷔앨범이다. 전두희는 거츠(Gutz)를 이끌며 기타와 보컬을 담당했던 멤버다. 2016년 거츠의 활동이 잠정 중단된 후 곡 작업에 매진하던 전두희는 거츠의 새 앨범을 준비하다가 색깔이 뚜렷했던 거츠에 예속되기보다 자유롭게 음악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솔로 활동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리고 2020년 9월 ‘Desire’를 시작으로 10월에는 ‘We are NOTHING’, 11월에 ‘나쁜 꽃’을 차례로 공개했다. 얼마 전에는 이번 앨범의 출시를 공개적으로 예고하는 ‘잔상’을 발표했고, 이 모두를 아우르는 정식 데뷔앨범 [This is NOT]으로 음악 신에 본격적인 출사표를 던졌다. 신인 아닌 신인 싱어송라이터다.
전두희는 “단순히 밴드 프론트맨에서 싱어송라이터로의 변화가 아니다. 트렌트 레즈너의 원맨밴드 나인 인치 네일스, 데이비드 보위 등을 지향하며 이 앨범의 모든 사운드를 만들었다”며 “내가 지향하는 록의 정의가 담긴 앨범을 만들고자 했다”는 이야기로 이번 음반의 성격을 규정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록의 정의란 단순히 과거 영광의 재현과 계승에 기댄 향수가 아니라, 시대를 관통한 록이 품은 고민이었던 기존의 것을 전복시키고 파괴하는 에너지에서 오는 감동이라 말한다.
이러한 전두희의 의도는 이미 지난해 발표한 싱글 ‘We are NOTHING’을 통해 직접적으로 표현된 바 있다. 가사 내용은 현실에 안주하는 로커들의 현재 모습을 보며 음악 하는 사람이라면 그렇지 말아야한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담았고, 음악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나인 인치 네일스, 혹은 디페시 모드나 뉴 오더의 자양분을 한껏 흡수하며 거츠에서 시도했던 인더스트리얼 사운드에 대한 접근을 보다 일렉트로닉 스타일로 확장시켰다.
앨범의 타이틀곡 ‘This is NOT’은 여러모로 ‘We are NOTHING’의 연계작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적당히 댄서블한 리듬에 듣는 이를 하여금 흥분케 하고 들썩이게는 만드는 리프와 메시지, 다양한 인접 장르의 파편들이 혼재하는 실험적 시도가 돋보인다. 현실에 안주한 기성세대의 모습을 혐오했지만 어느새 스스로 닮아간 자신을 발견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부유하는 신시사이저의 고공비행과 잔뜩 일그러진 퍼즈 베이스가 청자의 몰입을 종용한다. 앞으로 이어질 전두희의 음악적인 지향점이 고스란히 녹아든 베스트 트랙이다.
이번 앨범은 크게 블루지하고 어쿠스틱한 파트와 강렬한 인더스트리얼 파트로 구분된다. 앞서 언급한 ‘This is NOT’과 ‘We are NOTHING’이 인더스트리얼 파트의 대표적인 트랙이라면 ‘Desire’나 ‘나쁜 꽃’은 어쿠스틱한 파트를 대표하는 곡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두 파트의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음반의 전체적 분위기는 일관됐다. 마이너 계열의 진행은 스스로 ‘느와르’라고 표현하듯 적당히 음습하고 퇴폐적이다.
‘Desire’는 솔로 전두희로 발표한 첫 싱글이다. 밴드의 리더에서 싱어송라이터라는 새로운 걸음을 내디디며 많은 부분에서 변모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발표 시기를 앞당겼던 곡이다. 이-보우(E-Bow)가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며, 불교에 대한 관심이 녹아있는 집착과 욕망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나쁜 꽃’은 ‘This is NOT’과 반대편에 서서 현재 전두희의 음악성을 대변하는 대표곡이다. 적당히 취한 듯 일정한 패턴으로 흐느적거리는 보컬, 빈티지한 김수열의 오르간 연주와 전두희의 매력적인 일렉트릭 기타 솔로를 들을 수 있으며 어쿠스틱과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절묘한 조화를 만든다. 지켜주지 못한 이에 대한 안타까움을 손에 닿기 전에 스스로 시든 꽃을 연상하며 가사를 착안했다.
그런가하면 ‘Joker’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영화 ‘조커’에서 영감을 얻은 곡이다. 마치 일렉트릭 기타의 피치시프트 이펙트처럼 평행선을 그리는 보컬의 하모니 라인은 절분되고 강력한 기타 리프와 함께 청자의 중심을 무너트리며 몽환적 사이키델리아의 세계로 인도한다. 변화를 원치 않는 세상과 익숙하고 쉬운 것만 찾는 사람들 속에서 로커는 착해졌고 록음악은 향수로 전락해버린 현실, 차라리 자신은 악인이 되어 인식과 세상을 전복시키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담았다.
곡에서 풍기는 꿈결 같은 몽환적 이미지는 반복되는 신시사이저 멜로디가 주도하는 ‘Just A Dream’이나 ‘잔상’과 같이 다소 팝퓰러한 록 넘버나 사형수의 무거운 마지막 발걸음을 끈끈하지만 덤덤히 풀어낸 소품 ‘Last Walk’에도 어김없이 적용되는 이번 음반의, 아니 전두희 음악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눈을 감고 듣고 있으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듯 시각적으로 구체화된다. 물론 앞서 ‘느와르’라는 표현을 했던 것처럼 그 영화는 모노크롬 필름 속의 습기 가득 품은 흑백영화다.
‘Remember Me I’은 원래 거츠의 2012년 EP [Push]에 수록됐던 곡이다. 리듬파트 사운드의 공명이 부각된 것 외에 전반적으로 유사한 진행은 이번 음반에 처음 수록된 ‘Remember Me II’의 또 다른 꿈으로 이어지며 밴드 거츠와 싱어송라이터 전두희 사이의 확실한 가교 역할을 한다. 당연하겠지만 이렇게 전두희의 첫 독집은 기존 거츠가 해 왔던 음악을 더욱 발전시키며 횡적인 영역 확장을 이룬 음반이라고 할 수 있다. 거츠 멤버였던 김선미가 담당한 드럼 파트를 제외한다면 음반 전체 수록곡의 보컬과 악기 파트는 모두 전두희가 맡았지만, 거츠를 거친 베이시스트 한두수와 한병문이 각각 ‘Just A Dream’과 ‘잔상’, 역시 거츠의 멤버였던 키보디스트 김나하비가 ‘Remember Me II’의 연주를 맡은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전과의 단절이 아닌 발전을 위한 합종연횡이라고 할까. 멤버 뿐 아니라 음악에서도 역시.
전두희는 이전 인터뷰를 통해 이번 음반이 “기존에 소비되는 일반적인 록의 이미지를 벗어나 록이라는 장르를 새로 정의하는 데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앨범에 담긴 결과물 역시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가 감동받았던 록 음악들이 가지고 있던 치열한 고민과 창의적 아이디어로 충만하다. 어느 악기파트 하나 멋에 취해 놀아나는 법이 없지만 한 곡 한 곡 허투루 넘기기 힘들 정도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실력에 충만한 의욕과 넘치는 아이디어, 그리고 그 모두를 어울러 표현할 능력을 가진 중고참 신인의 등장이다.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CREDIT]
Executive Producer : Jun Doohee (GUTZ Company)
Producer : Jun Doohee
All songs Written and Composed by Jun Doohee
Arranged by Jun Doohee, Kim Sunmi
Vocals : Jun Doohee
Acoustic, Electric Guitar : Jun Doohee
Bass : Jun Doohee, Han Doosoo (01. Just a dream), Han Byungmoon (08. 잔상 Afterimage)
Synthesizer : Jun Doohee
Organ : Kim Sooyeol (03. 나쁜꽃 Bad Flower)
Piano : Kim Nahabby (10. Remember me (II))
Drums : Kim Sunmi
Recorded by Jun Doohee (GUTZ Studio)
Mixed and Masterd by Seo Junho (Linklab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