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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피폴라 - And Then There Was Us (미니앨범)


호피폴라를 좋아한다. 그들이 지향하는 구성의 음악에 대한 애정이 유독 크기 때문이다. 간략하게 정리해볼까. 서정적이면서도 에너지를 잃지 않는 음악이다. 멜로디로 감싸는 동시에 비트로 자극할 줄 아는 음악이다. 흔히 ‘모던 록’하면 떠오르는 음악을 추구하는데 그 와중에 제법 큰 스케일로 육박할 줄 안다. 평온하고 차분하다가도 곡의 전압을 쭉 끌어올리면서 찌릿하고 강렬한 청취 경험을 던져주는 음악이다. 


이런 수사는 신보에서도 유효하다. 다만, 모든 측면에서 한결 짙고, 깊은 사운드를 일궈냈다는 점을 강조해야 마땅하다. 진짜다. 나도 깜짝 놀랐다. 좋을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훌륭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몽환적이면서도 첼로 연주를 통해 슬그머니 장엄한 뉘앙스를 드러내는 첫 곡 ‘Where Is’부터 인상적이지 않은 지점이라고는 없다. 


‘The Love’는 그와는 반대로 슬픔을 머금고 있는 곡이다. 연주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잔잔하게, 강물처럼 쭉 흐른다. 멤버들이 직접 쓴 설명을 보니 “드디어 당신을 미워하기 위한 이유를 찾았다”고 적혀있다. 아마도 이것은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끝난 이후의 표정일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건, 우정이건, 그 무엇이건 이별을 마침내는 온전히 받아들인 자의 숙명일 것이다. 한데 이 곡은 (중간에 “Oh, Where Is The Love”라는 내레이션이 짧게 등장하듯) 앞서 언급한 ‘Where Is’와 함께 감상해야 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분위기는 ‘너의 바다’로 일관되게 이어진다. 가슴 저미는 희망가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이 곡은 비유하자면 치트키다. 호피폴라라는 밴드를 구성하는 유전자 정보가 이 곡 하나에 압축되어 들어있는 까닭이다. 설득력으로 넘치는 선율이 있고, 차곡차곡 감정을 쌓아가면서 곡의 뒤를 받치는 비트가 있다. 사운드 디자인도 언급해야 마땅하다. 소리의 공간감을 정말이지 탁월하게 그려낸 곡이다. 선명하게 뿌려진 소리는 아름다운 전조를 남기면서 스윽하고 사라진다. 심플한 멜로디임에도 여운이 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고는 ‘Unnatural’로 부드러운 곡선을 취하면서 전환된다. ‘Mom’의 경우, 가슴 저미는 발라드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인데 기실 이렇듯 본격적으로 폭발하는 구간도 없이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길어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후 어쿠스틱 기타가 모나지 않은 톤으로 툭하고 등장하는 연주곡 ‘유랑’까지 듣고 나면 (비록 7곡에 불과하지만) [And Then There Was Us]가 철저히 앨범의 관점에서 기획된 소산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예쁘고 영롱한 소품 ‘And Then There Was Us’로 음반은 마무리된다. 


뭐로 보나 기대 이상이다. 무엇보다 억지로 쥐어짜낸 듯한 멜로디나 구성이 없어서 마음에 쏙 든다. 사운드적인 성취 면에서도 그렇다.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소리를 욱여넣은 구석이라고는 없다. 요컨대, 정확하게 섬세하고, 촘촘하다. 아직 더 있다. 효과음을 적절히 사용했고, 편곡의 묘를 발휘해 스케일로 구현되는 이미지가 곡의 바탕이 되는 서사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했다. 간단하게, 그 어떤 곡에서든 멜로디가 본연의 힘을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 


과연, [And Then There Was Us]에는 현재 스코어 호피폴라 최고의 곡이 될 만한 후보가 가득하다. 나에게 꼽으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연작으로 기획된 (것으로 추측되는) ‘Where Is’와 ‘The Love’를 선택할 것 같다. 부디 이 두 곡만이라도 일단 들어보시라. 어느새 끝까지 쭉 감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 


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배순탁의 B사이드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