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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하트 (Julia Hart) - 7집 FARAWAY

JULIA HART의 7번째 정규 앨범 “FARAWAY”


(“FARAWAY”의 보도자료 및 소개 글은 정바비의 다음 에세이로 대체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읽었습니다. 원래는 "기생충" 속 세 가족의 구성원 수를 전부 4명으로 맞추고 싶었다고요. 하지만 영화를 날렵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이 설정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성공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저 깔끔한 4:4:4의 대칭 구조를 포기해야 했던 창작자의 심경은 꽤 뼈저린 것이 아니었을까 상상해보았습니다.


장편 영화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3분짜리 노래가 하나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많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템포는 어떻게 할지, 키(key)는 얼마나 높여서 부를지, 후렴은 몇 번 반복할지, 훼이드아웃을 칠지, 친다면 몇 분 몇초부터 칠지...

보다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가사에서 어떤 단어를 택할지(ex:'볼'과 '뺨'), 백 코러스는 얼마나 잘 들리게 할지, 기타 솔로는 얼마나 뾰족한 소리로 만들지…

창작자 입장에서는 이 선택들 하나하나가 노래가 들려줄 세계를 밑바닥부터 뒤집을 수 있는 커다란 변화의 기로입니다.


그런데 이번 앨범 작업을 통틀어 가장 골치 아픈 선택은 의외로 띄어쓰기였습니다. "FARAWAY"와 "FAR AWAY"의 차이를 아시는지요. 같은 철자와 발음으로 이루어졌지만 한 칸의 띄어쓰기로 말미암아,

"FARAWAY"는 '멀다'이란 뜻의 형용사가 되고 "FAR AWAY"는 "멀리"란 의미의 부사구가 되는 모양입니다. 작업 기간 중 이 앨범의 타이틀은 "FARAWAY"로 시작해서 "FAR AWAY"가 되었다가 최종적으로 다시 "FARAWAY"로 돌아왔습니다.

참으로 별스러울 것 없는, 하지만 별것입니다.


영어만 이런 것이 아닙니다. "밤산책"이란 수록곡 가사에 "밤새 함께할 순 없지만 오늘 안개는 기억할 수 있어"란 구절이 있습니다. 이를 '함께 할'이라고 띄어 쓸 경우 뜻이 미묘해집니다.

왜냐면 '경험이나 생활 따위를 얼마 동안 더불어 하다'의 뜻으로 쓰는 '함께하다'는 합성어로 보아 붙여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함께하다'는 ‘be together’, '함께 하다'는 ‘do (something) together’가 되는 것 같습니다.

부연하자면 제목 또한 맞춤법으로는 '밤 산책'이 맞습니다만, 단순히 '늦은 시간의 마실'이라는 의미가 아닌 특별한 행위라는 뉘앙스를 붙여쓰기를 통해 담고자 한 선택이었습니다.


이번 앨범에서는 시작부터 마지막 1초까지 오롯이 기쁨과 따뜻함에 관해서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미소지으면서 들을 수 있는 앨범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그런데 곡 작업을 하고, 노래와 연주를 녹음하고 계속해서 듣다 보니 결과물이 그렇게까지 밝은 앨범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처음에는 허탈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스스로가 삐딱하고 부정적인 인간이어서 그런가 자책하고 싶어지기도 했고요.


누구나 슬픔과 외로움으로부터 멀리멀리 가고 싶은 순간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목표했던 것만큼 밝지 못한 앨범을 만든 밴드의 구성원으로서 변명하자면,

사람이 삶의 한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리는 애초에 그렇게 넉넉하기 힘든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수 없는 밤을 발버둥 치고 허우적대고 돌아보면 앞으로 내디딘 것은 한 칸의 띄어쓰기만큼이 고작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음악이 그렇고 영화가 그렇듯,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그러하듯이 한 칸을 띄우고 붙이는 정도의 미세한 차이가 때로는 큰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그 차이를 느낄 수만 있다면요.


뭐 이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고, 2020년 줄리아 하트는 출범 20주년을 맞았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던 인디 밴드 선후배 중에 아직도 필드에 있는 분들이 얼마나 계신지 모르겠습니다(곽철용의 명대사를 인용하고 싶어지네요. ‘그때 있던 밴드가 백 팀이라 치면은…’). 적자생존의 모토처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일까요.

아니, 그렇다기엔 줄리아 하트는 근근이 적자(赤子) 생존하는 게 고작입니다. 그저 꾸준히 저희 음악을 찾아주시는 팬 여러분께 감사할 따름이죠.


이번 앨범 소개 글에서는, 그런 청자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담아 한 곡 한 곡 별도의 소개와 코멘트를 담았습니다. 감상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1. 슬픔으로부터 가능한 멀리

겨울의 표독스러운 냉기에 시달린 지 너무 오래라, 봄이 온 줄도 미처 모르고 지낼 때가 있죠. 그런 어느 날 화단의 봄꽃을 보거나 밥상에 올라온 나물 향을 맡거나 할 때 가슴 안쪽에서부터 온기가 피어나곤 합니다.

어느새 다가온 봄을 맞이하기 위해 겨우내 닫혀 있던 창을 처음으로 활짝 열 때의, 그 가슴 벅참을 표현해보고 싶었던 노래입니다. (정바비)


2. 난 네가 우리 집에서 제일 좋아

제목에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싶었습니다(저보다 섬세한 분들이라면 그 이상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먼저 우리 집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 중 네가 제일 좋다, 라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 의미는 ‘너는 딴 곳이 아닌 우리 집에 있을 때 최고’라는 뜻이고요. 여기에서 ‘너’는 가족이나 반려자일 수도 있고 애완동물이나 보물 1호여도 좋습니다. 꼭 사람이 아니어도 되도록 가사를 구성하였으니까요.

“너의 미소를 지켜줄 게 그 미소로 날 지켜줘"는 이번 앨범을 통틀어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이자, 오랜 기간 줄리아 하트를 지켜온 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기도 합니다. 늘 감사드립니다.(정바비)


3. 밤산책

‘밤산책’이라는 단어를 말하거나 들으면 왠지 모를 설렘이 느껴집니다. 그 기분을 노래로 만들어보고 싶었고 줄리아 하트 7집 작업의 시작과 함께 혼자 만들어놓았던 데모를 멤버들과 공유했습니다. 

몇가지 버젼을 거친 후 김나은의 편곡과 정바비가 다듬어준 가사로 인해 완성된 ‘밤산책’은 ‘코모레비’(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 라는 부제를 갖고 있습니다.  역설적인 부제가 ‘밤산책’의 기분을 한층 더 끌어올려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유병덕)


4. 본명 같은 별명

이번 앨범 안에서 장난스러움과 흐뭇함을 담당하고 있는 곡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중기 비틀스의 몇몇 곡들처럼, 유머러스하고 약간 이상하면서도 전체적으로 물 흐르듯 흘러가는 노래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정바비)


5. LUA

먼저 제목은 포르투갈어로 ‘달(moon)’이란 뜻입니다. 이 노래의 주인공은 어느 날 꿈을 꿨는데, 그 꿈속에서 자신이 한때 무척 좋아했던 사람을 마침내 잊었음을 알게 됩니다. 더는 가슴 시릴 일이 없어서 그 꿈은 행복한 꿈이었겠죠.

그런데 깨고 나니, 그 사람을 잊은 꿈 역시 그 사람에 대한 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새벽에 다시금 한없이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이번 앨범에 몇 가지 중요한 흐름이 있는데,

역시 꿈에 관해 얘기하는 다음 곡 “PHO”로 이어지는 구성에는 특히 신경을 많이 썼으니 꼭 연달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정바비)


6. PHO

오래전부터 줄리아 하트를 위한 곡을 쓰고 싶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곡이 잘 나오질 않았어요. 그때는 욕심이 너무 많아서 ‘Teenage Fanclub 같은 곡이 아니면 안 돼!’라고 생각했던 거죠.

하지만 가장 나 답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마음을 고쳐먹자 곡이 나오게 되었어요. 물론 가사는 좀 바뀌었지만 그래도 줄리아 하트와 어울리면서 동시에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을 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김나은)


7. 잘못된 게 아냐

이 곡과 다음 곡 “딸린 섬”은 모두 실제 여행 경험을 토대로 쓴 노래입니다. “잘못된 게 아냐”는 후쿠오카의 해상공원 ‘우미노나카미치(직역하면 ‘바닷속 길’이란 뜻입니다)’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느낀 것들을 가사로 풀었습니다.

비현실적으로 사람이 없는 섬의 호젓한 자전거길 위로 몇 시간이고 혼자 페달을 밟으며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기억은 대개 잦은 음주로 흐릿해져 가곤 하지만, 이 감정만큼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남아서 노래가 되었습니다.(정바비)


8. 딸린 섬

영화 “안경”으로 알려진 요론 섬에서 머무는 동안 만든 곡입니다. 보통 여행길에 기타를 가져가도 실제로 곡을 쓰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어서 돌아올 때 자괴감에 빠지곤 하는데, 요론 섬에서는 정말이지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노래가 나왔던 것 같습니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까지 30분 동안 소구경 하면서 시골길을 걸어야 하는 곳이었으니까요. 이 외딴 섬에서 깨달은 사실인데, 사실 모든 섬은 어딘가에 딸려 있습니다.

작은 섬은 근처 다른 큰 섬에, 큰 섬은 가까운 대륙에 결국 이어집니다. 침하한 틈을 바닷물이 메워서 섬이 되었을 뿐 이들은 지질학적으로 한 덩어리인 것이죠. 사람들의 외로움도 비슷한 과정으로 생긴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만든 곡입니다.(정바비)


9. 소꿉

사실 이 앨범은 줄리아 하트의 모든 정규 앨범 중 곡 수가 가장 적습니다. 처음에 작업을 시작할 때는 더 많은 곡이 있었지만, 음반으로서의 구성에 대해 고민한 결과 이렇게 컴팩트하게 9곡만 담기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곡인 이 노래의 막바지에는 저희 음악치고는 흔치 않게 여럿이 함께 부르는 소위 ‘떼창’ 파트가 들어있습니다. 공연장에서 관객분들과 함께 부르는 생각을 하면 행복해집니다.(정바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