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곰 (Panda Gomm) - 1집 sleeptal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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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음악 스펙트럼과 탄탄한 스토리텔링이 뒷받침된 판다곰의 첫 정규 앨범 [sleeptalking]
국내 힙합/알앤비 음악의 팬이라면 그 이름을 기억해야 할 프로듀서가 있다. 레이블 굿투미츄(goodtomeetyou)에 새롭게 입단한 프로듀서 판다곰(Panda Gomm)이 그 주인공이다.
판다곰은 개인 작품으로 따져보면 아직 “SKRRT”라는 한 장의 싱글만 발표한 터라 다소 낯선 이름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쇼미더머니 8> 파이널 무대에서 공개된 영비(Young B)의 “No Cap”을 프로듀싱했으며,
릴러말즈(Leellamarz)의 [MARZ 2 MOON]과 [Y], 그리고 영비의 솔로 앨범 [SOkoNYUN]과 [Stranger]에 참여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묵직하게 드러냈다. 여기에다 현 힙합 음악의 대세로 떠오른 이모 랩의 로우파이(Lo-Fi)한 사운드부터 세련된 트랩까지.
트렌디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본인만의 개성이 묻어나는 확고한 음악을 선보이며 씬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던 와중 판다곰은 멀리 돌아가지 않고 정공법을 택했으니. 바로 첫 정규 앨범 [sleeptalking]을 들고나왔다.
[sleeptalking]은 재미있는 서사를 가진 앨범이다. 판다곰은 작품에서 사람의 모순적인 모습과 이중성을 꼬집으며, 고상한 척하는 이들의 내면을 파헤친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앨범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앨범의 전반부는 세상에 미처 때 묻지 않은 소년의 순수한 시절을 뜻한다.
대표적으로 “딸기우유”는 딸기우유와 음악만 있어도 그저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담아낸 트랙이다. 판다곰은 영롱한 사운드 소스와 함께 베일(Veil)의 목소리를 빌려 이를 사운드로 표현한다.
창모와 릴러말즈가 힘을 보태고 현악기가 인상적인 곡 “Friends” 역시 마찬가지. 두 래퍼는 친구에 대한 애정과 전폭적인 지지를 트랙에 드러내고 아무런 조건 없이 우정을 나눌 수 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이처럼 앨범은 피처링진의 랩과 보컬을 통해 트랙의 확고한 컨셉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판다곰은 보사노바 트랙 “새침데기”에서 썸머 소울(Summer Soul)과 정기고를 끌어들여 이성에게 사랑을 빠지는 순간을 미묘하게 그리며,
조화로운 악기 구성이 돋보이는 “낭만”에서는 비젼(B JYUN)과 지바노프(jeebanoff)의 목소리를 통해 소년의 낭만을 그려낸다. 하지만 이런 순수함도 잠시. “바텐더 (SCRAMBLE)”란 트랙을 기점으로 소년은 세상에 대한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된다.
앨범의 후반부는 세속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소년의 세상에 해당하며, 가사 및 사운드적으로 180도로 틀어져 전반부와 대칭을 이룬다. 예시를 들자면 “아메리카노”는 “딸기우유”와 매치되는 트랙이다.
트랙 속 소년이 더 이상 단 딸기우유를 먹지 않고 쓴 아메리카노를 먹듯, 음악 역시 영롱함은 온데간데없으며 날카로운 악기 소스를 통해 시종일관 긴장감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여기에 릴러말즈, 애시 아일랜드(ASH ISLAND), 오왼 오바도즈(Owen Ovadoz), 그리고 스프레이(Spray)는 각각 둔탁한 랩과 스크래치 사운드를 통해 소년의 내면을 사운드로 드러낸다.
“합장이모지”는 이해관계에 따라 친구를 맺는 소년의 모습을 풀어 놓고 있어 “Friends”와 매치된다. 곡은 판다곰의 곡 빌드업 방식과 디테일한 악기 구성은 물론, 두 래퍼의 탄탄한 랩 스킬과 감정 묘사를 확인할 수 있는 트랙이다.
또한, “better man”은 “새침데기”와 “당신이 잃어버릴 수 밖에 없던 몇 가지”는 “낭만”과 매치된다.
전자에서 영비와 pH-1은 자신을 힘들게 하는 나쁜 이성과 이에 빠져드는 미련한 사랑을 묘사하고, 후자에서 비젼과 크루셜스타(Crucial Star)는 더 이상 낭만과 자기만족만을 위해 살 수 없는 소년의 마음을 풀어낸다.
그리고 “자장가”에서 소년은 혼란한 마음을 잊기 위해 애써 잠자리에 든 뒤 꿈속에서라도 자신의 속내를 분출하려 한다.
[sleeptalking]은 프로듀서 판다곰의 여러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는 트렌디한 트랩 사운드는 물론, 신시사이저 기반의 뉴웨이브 힙합, 올드스쿨,
더 나아가 보사노바, 알앤비, 전자음악 등을 앨범에 도입하며 자신의 넓은 음악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또한, 피처링진을 트랙에 알맞게 기용하며 프로덕션의 무드를 더욱 살렸다.
더불어 적절한 악기 소스 배치와 디테일한 곡 구성을 통해 개별 트랙의 완성도를 높인 건 물론, 확고한 컨셉과 스토리텔링을 통해 하나의 작품을 훌륭히 끝맺었다.
이처럼 판다곰은 첫 정규 앨범으로 음악 세계는 물론, 넓은 음악 스펙트럼 그리고 피처링진과 탄탄히 호흡을 맞추며 자신의 진가를 확실히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또 다른 스타 프로듀서의 등장을 기대하거나, 혹은 다음 세대의 한국 힙합을 이끌어 갈 새로운 자원을 기대했던 이라면 판다곰의 [sleeptalking]을 반드시 확인해보길 바란다. – 개다 (hiphop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