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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리액션 (CHAIN REACTION) - FEATURES/CREATURES
절망 속에서 다시 일어서 나가는 용기
: 체인리액션의 장편 같은 단편 모음, [Features/Creatures]

 날카로운 스크리밍 보컬이 가청공간을 찢으며 선연한 흔적을 귀에 남긴다. 끊어질 듯 애타게 쏟아내는 박세훈의 보컬은 그 존재만으로도 삶의 고독과 아스러진 희망에 대한 매서운 분노를 공감으로 이끈다. 
처절한 방황과 후회를 그려내는 스크리밍 보컬과 텅 빈 공간감을 만드는 아르페지오, 끈질기게 곡을 붙드는 코드 플레이 기타(임무혁과 문정배)의 세 가지 다른 울림 속에서 청자는 절망을 추스르는 희망의 조각을 발견하게 된다.
아니, 절망의 바닥을 치고 새로운 장을 만들고자 하는 미약하지만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결기를 앨범 뒤로 갈수록 바빠지는 윤기선의 베이스와 플로우탐의 저음을 더 자주 두드리는 양윤기의 드럼 연출로 뻐근하게 전달된다. 
2015년 결성된 5년차 밴드 체인리액션의 첫 번째 정규앨범 [Features/Creatures]를 처음 들으며 머릿속에 흘러간 감상이다. 고독한 삶에 대한 노래라고 하지만, 거창한 내러티브나 허장성세와는 거리가 멀다. 
아주 일상적인 고민, 평범한 우정, 작은 욕심의 어긋남이 쌓여 만들어낸 꿈의 이지러짐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국가와 민족의 존망과 같은 큰 얘기보다 함께 꿈을 꾸던 단짝 친구가 
어느새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깨닫는 경험에서 큰 실망과 상처를 입곤 한다. 삶의 비애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거다. 체인리액션은 이렇게 작지만 한 개인의 삶 구석구석에 흔적을 남기는 작은 절망을 노래한다.
 이 절망의 경험이 만든 거대한 심연을, 그리고 심연의 틈바구니 속에서 겪은 방황이 어둡게만 보이는 미래를 여는 희망의 단서가 될 것임을 다짐한다.

 밴드는 이번 정규앨범 작업에 대해 “사람의 삶은 희망이 가득한 하루를 보내다가도, 죽을 것 같이 힘든 날도 있고, 무미건조한 하루가 참기 힘들만큼 반복될 때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나의 픽션처럼 흐름을 만들고, 
그렇게 모인 테마가 소설처럼 전개되는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고 소개한다. 앨범은 일상과 그 일상에 눌려버린 꿈과 음악, 좌절 속에서 얻은 경험의 끈을 끝내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평범한 언어로 풀어낸다. 
노랫말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놀랍게도!) 밴드의 음악과 만나 정서의 롤러코스터를 오르락내리락케 하는 에너지가 된다. 가사가 전하는 내용과 달리 일관되게 스크리밍으로 찢어 눌러대는 보컬은 파국 속 희망을
 파내려는 흔적이다. 하나하나 삶의 벽과 부딪히며 쌓인 상처에도 포기하지 않는 꿈의 아픔을 처절하게 표현하는 보컬의 정서와 가장 크게 조우하는 것은 두 대의 기타와 드럼이다. 
동시에 희망의 언어를 캐내고자 하는 보컬의 시도에 차가운 벽을 치며 막아서는 것 또한 이 악기들이다. 공간계 이펙터를 사용하여 날카롭게 벼려진 울림을 차가운 톤으로 연출하고 있는 기타는 함부로 밝음을 그리지 않는다. 
그러나 앨범은 후반부로 갈수록 연주의 온도를 달리하며 굵직한 음악의 서사를 이끈다. 

 3분을 넘지 않는 13개의 노래는 일견 각기 다른 이야기처럼 들린다. 반복 구절을 최소화하고, 정말 강조하고 싶은 장면에만 불규칙한 반복을 시도하는 각각의 이야기가 더해지며 놀랍게도 하나의 씬(scene)처럼 
유기적으로 변한다. 서로 다른 측면을 그린 노래들은 몇 곡씩 묶여 하나의 완결성을 가진 시퀀스(sequence)를 만든다. 각각의 시퀀스는 음악적으로도 이전의 씬들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결국 이렇게 네 개의 시퀀스가 모여 하나의 장편 영화(feature)같은 흐름을 만들어냈다. 특히 앨범 후반부의 고조되는 감정은 어설픈 희망 따위를 날려버리면서 깨달음과 새로운 삶의 의지를 확인하는 방향으로 폭발한다. 
처음 절규하는 보컬과 같은 기조의 톤과 연주를 들려주던 악기들은 시퀀스마다 새로운 표정과 색깔을 더해가며 점차 새로운 이야기를 쌓아간다. 30분여의 처절한 러닝타임 동안 개별 곡의 매력보다 점진하는 이야기와 
그를 따라 바빠지는 악기와 톤이 더해져, 결국 한 덩어리의 흐름을 만든다. 삶을 돌파하는 스크리모 포스트 록 컨셉 앨범. 반드시 앨범 단위로 들어야 한다. 시퀀스 1은 ‘In the Beginning’부터 ‘Day’까지 네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상은 반복되기에 일상이다. 동시에 그 일상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지친 마음은 현실을 일그러뜨리고, 위선과 헛된 욕망이 나를, 너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아스러질 듯 날카로운 보컬의 울림에도 불구하고 
가사의 전달력이 놀랍다. 반복되는 아르페지오 기타가 멈춰진, 어느새 잊힌 꿈의 기억을 표현하면, 코드 플레이의 기타는 스크리밍 보컬과 짝패가 되어 절망을 표현한다. 
베이스와 드럼은 단단하지만 무심하게 쇳소리를 찢는 심벌 워크과 단단히 조여진 탐탐을 차갑게 롤링하며 현실의 벽을 표현한다.      
 “달라지고 싶지만 보여주고 싶진 않은” “나를 잃어버린 나”, 결국 욕망만 남은 것은 아닌지 두려운 나를 그리는 ‘Vanish’로 시작된 두 번째 시퀀스는 이 같은 두려움의 정서로 가득한 절규에도 불구하고 
슬쩍 기타부터 화려해지기 시작한다. 기타 신디사이저 계열의 이펙터가 만드는 낯선, 그러나 익숙하고 두툼해진 울림이 첫 시퀀스와 달라진 방황을 표현하고 있다. 트레몰로 연주로 상처만 남은 고독을 표현한 ‘Vertigo’는 
앨범의 중심에서 가장 폭발적인 기타 연주를 들려준다. 동시에 이 집요한 트레몰로는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고픈 욕망을 지우고 꾸역꾸역 삶을 이어가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 집요함이 다음 시퀀스에서 폭발한다. 
  ‘Noir Society’에 이르러 이제 체인리액션의 연주는 하드코어의 격한 버둥거림에 가까워진다. 중반부의 미드 템포로 속도를 늦춘 이후에는 두 대의 기타가 격돌한다. 혼란의 절정에 이른 ‘Blind’는 헤비니스 계열의 밴드가 
두렵지 않은 고출력의 아르페지오와 플로우탐과 탐탐의 둔탁하고 단단한 필인이 “멈춰버린 대화는 또 다시 반복될 뿐, 같은 실수만이...”를 내뱉는 보컬을 받아친다. 꽤나 정통적인 구성의 ‘Exist Here’는 기타 하나가 
앞서와 비교할 수 없는 날카로운 톤의 트레몰로로 향하고, 다른 하나는 두툼한 질감의 리프 형태로 변신한다. 두툼한 기타 리프에 베이스 유니즌이 힘을 더하고, 묵직한 필인과 클로즈 하이햇의 단발마적 타격까지 
가청공간 모두를 움켜쥔다. 격정의 시퀀스 3가 이렇게 마무리되기 무섭게 새로운 시퀀스가 탄력 넘치는 드러밍으로 바로 시작한다. 
  ‘We Wander’는 지켜나갈 수 없던 약속, “함께”라는 말이 퇴색해진 지금을 관조하며 새로이 길을 나서는 밴드를 그린다. 흐린 기억 속 꿈이 바닥에서부터 움트며 솟아난다. 
그래서 앨범 전체에서 가장 크게 울리는 베이스 라인이 곡을 지배한다. 마치 한 곡처럼 연결되는 ‘Hier’와 ‘Please Remind’는 앨범 전체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기타 구성을 들려준다. 위축되고 굽어버린 현실을
 더 이상 부정하지 않겠다는 밴드의 다짐처럼.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또 걸어가”라는 마지막 외침과 함께. 어떤 음악적 수식도 없이 이야기는, 앨범은 끝난다. 우직한 마무리다.    

 지난 5년간 수많은 국내외 무대에 오르며 관객과 호흡을 해왔지만, 포스트-하드코어 밴드 체인리액션의 디스코그래피는 한 장의 EP와 한 장의 싱글이 전부다. 다시 말해 [Features/Creatures]는 
지난 5년의 시간 동안 밴드가 경험한 음악과 삶, 한계와 희망, 절망과 가능성을 꾹꾹 담아낸 진정한 음악적 승부수다. 체인리액션이 띄운 승부수는 강렬하면서도 진정성이 짙게 묻어난다. 
체인리액션이 전하는 뜨겁고도 서늘해지는 경험은 분명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음악을 통해 밴드의 고민과 긴 사색의 시간을 청자와 공유하는데 성공했다. 그것도 아주 격정적으로.                                    

- 조일동 (음악취향Y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