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영 - 그날, 문을 열다
|
여운으로 그윽해지는 음악
- 유태영 [그날, 문을 열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유태영의 음반 [그날, 문을 열다]는 짧다. 8곡을 담은 음반의 길이는 30여분. 곡의 길이는 대개 3분 남짓이다. 그러나 이 음반을 듣고 또 들어도 짧다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오히려 짧은 길이임에도 음반이 끝날 때마다 묵직한 울림이 남는다. 그 울림의 자장 안에서 서성거리며 중얼거린다. 이 무게감은 어디에서 밀려오느냐고.
문학으로 치면 잘 쓴 하이쿠 같고, 짧은 서정시 같은 음악의 비밀은 무엇이냐고.
유태영은 많은 악기를 동원하지 않고, 곡을 늘리지 않는다. 데시벨을 올리지 않으며, BPM을 조이지도 않는다. 정교하고 현란한 악기 플레이나 화음을 연출하지도 않는다.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중심에 두고 피아노와 기타, 그리고 국악기와 현악기를 조심스럽게 배치했을 뿐이다. 사실 유태영의 음악에는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다.
그러나 유태영은 그 없음으로 있음을 대신할 뿐 아니라 있음을 능가한다. 최소한의 언어로 수행하는 멜로디와 리듬, 사운드는 제각각 자신의 자리에서 부드럽게 출렁인다.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 소리들은 홀로 침묵하다 이따금 서로에게 스며든다.
소리와 소리 사이의 우묵한 거리는 유태영의 마음과 시선이 움직이는 속도를 재현하면서 그 사이 무수한 흔들림과 흐름을 고요하게 복원한다.
그 울림이 ‘보름달에서 내린 빛이 바다 위에서 아주 고요하게 일렁이는 것’에서 시작했든, ‘수많은 삶의 조각들을, 기억의 조각들을, 시간의 조각들을 표현한’ 것이든 마찬가지이다.
묵언에 가까운 속도로 밀려오는 마음과 생각의 파장을 옮기는 유태영의 손길은 차분하고 정성스럽다. 그래서 유태영이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고, 문학을 전공하다 음악으로 건너왔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유태영의 음악은 음악이라는 방법론으로 문학을 서술했다고 해도 좋을만큼 소리의 매듭이 단정하고 여운 깊어 시적이다. 시적이어 서정적이고, 서정적이어서 더욱 시적이다.
노래 없이 연주만으로 이어지는 음악에서 음과 음, 소리와 소리가 이어지며 만드는 관계는 멜로디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만큼 선명하다.
<달, 빛, 바다>에서 피아노 음이 떨어지는 소리는 바다에 비치는 달빛의 속도와 파장을 재현할 뿐 아니라, 그 순간을 아름다움이라 인식한 유태영의 미감까지 복원한다.
그리고 듣는 이들도 그 아름다움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만큼 아득하게 밀려든다. 분절되는 시간의 조각들을 아련하게 돌아보는 행위와 그 순간 깃드는 감정을 피아노와 첼로 등으로 표현한 <시간의 조각들> 역시
섬세한 선율을 다른 악기의 교차와 연속으로 변화시키며 구현해 곡의 완성도와 감동을 배가시킨다.
한편 <노을진 하늘에 해와 달이 높더라>에서 유태영은 조심스럽게 이어가는 피아노 연주에 징과 꽹과리, 대금, 북 연주를 연결한다.
‘잠에서 깬 허난설헌이 꿈에서 본 하늘, 해와 달이 함께 높이 떠 있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환상적인 하늘을 시로 짓는 그 모습’을 상상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선 음악은 꿈결처럼 은근하고 매끄럽다. 도드라지지 않는 전통음악의 밀도와 절제가 돋보이는 곡이다. 현재의 여성 예술가가 옛 여성 예술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고 음악으로 되살릴 때,
그 음악은 둘만의 음악이 아니다. <스물일곱 송이 연꽃은 붉게 떨어지고>로 이어지는 유태영의 허난설헌 연작은 제 뜻을 펼칠 수 없었던 시대와 예술가에 대한 공감과 이해 없이는 불가능한 여성 음악 서사이다.
당연히 옛 여성 예술가의 이야기는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 예술가 자신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날, 문을 열다>는 ‘문학의 길을 걷다가 음악이라는 새로운 길을 걷게 된,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인 곡’이다.
이 곡을 주도하는 소리는 내면의 불안과 갈등을 표현하는 피아노 연주이다.
더 낮아지는 피아노 음률로 표현하는 고뇌의 빛깔에 이어 바이올린, 첼로, 콘트라베이스,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교차시켜 직조한 따스한 드라마는 스스로 고민하며 길을 찾아가는 내면의 성장을 들려준다.
이어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죽음을 이야기 하는 곡 <카뮈의 발걸음>은 기타의 선율과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울림으로 대작가의 마지막을 그리듯 보여준다.
역시 기타와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죽음에 이른 카뮈의 마지막을 위로하는 곡 <다시 루르마랭으로>와 마지막 트랙 <달, 빛, 바다 Ⅱ>도 슬픔을 토닥이는 멜로디의 여운이 길다.
이렇게 자신과 자신이 포착한 세상의 풍경과 자신이 존중하는 예술가들을 음악으로 옮긴 유태영의 첫 음반은 여운의 음악이다. 여운으로 다가오고 여운으로 머무는 음악이다.
움직이지 않는 듯 움직이는 음악의 여운으로 그윽해질 때, 음악의 주인공을 경배하지 않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