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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비시스터스, 임아영 - 추억, 학부인 (180g Limited Transparent Purple Color Vinyl) (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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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비시스터스와 신중현 사단 임아영의 희귀 스플리트 앨범


허니비시스터스(HONEYBEESISTERS), 즉 ‘꿀벌 자매’라는 달콤한 이름의 걸 그룹을 기억하는 지금의 대중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번에 재발매된 그녀들이 재킷을 장식한 유일 음반도 실물을 보기가 어려운 희귀앨범이니 이상할 것은 없다. 

허니비시스터스는 60-70년대에 활동했던 섹시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걸 그룹이다. 1960년대의 대중음악인들은 미8군 무대와 일반무대라는 전혀 다른 질감의 무대가 공존했던 음악환경에서 활동했다. 

두 무대를 섭렵하기 위해서는 미군들이 좋아하는 서양의 음악장르인 팝과 소울은 물론이고 한국인이 좋아하는 트로트와 민요까지 소화해내는 재능이 필요했다. 

당시 두 무대에서 활동했던 가수들과 걸 그룹들처럼, 허니비시스터스도 폭 넓은 장르의 노래를 소화했던 걸 그룹이었다. 특히 춤에 재능에 있었던 그녀들은 소울 댄싱에서 고전무용의 부채춤까지 화려하게 펼쳐내 당대 젊은 남성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1965년 결성되어 미8군 클럽에서 활동을 시작했던 허니비시스터스는 언론들로부터 ‘꿈속에 움직이는 인형’, ‘한국의 움직이는 인형’이란 찬사를 받았다. 

그들은 자매 사이인 조성자, 조성희 그리고 조성혜로 구성된 트리오 걸 그룹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성장해 중앙여고를 졸업한 조성자와 조성희는 일곱 딸부자 집의 여섯째와 막내였고 덕성여고를 졸업한 조성혜는 그녀들의 사촌 자매였다. 

눈이 컸던 조성희는 ‘부엉이’, 조성자는 구두쇠 같아 ‘서울깍쟁이’, 조성혜는 ‘새침데기’라는 별명이 있었다. 

조성자와 조성희 자매는 초등학교 학예회에서 멋들어지게 노래해 학교친구들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가수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특히 이들은 교내 무용 콩쿨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을 정도로 춤에도 재능을 보였다. 

당시 많은 걸 그룹들에게 안무를 전수했던 무용가 한익평에게 본격적으로 춤을 배우기 시작한 그녀들은 사촌 조성혜와 트리오를 결성해 미8군 클럽의 팩키지 쇼와 베트남 장병위문공연에서 섹시한 춤과 노래로 활약했다. 

허니비시스터스는 1965년 서울 시민회관에서 열렸던 보칼클럽 경연대회에 출전해 이시스터스, 정시스터스, 은방울자매 등 당대의 인기 걸 그룹들과 자웅을 겨루기도 했지만 멤버들의 결혼으로 자연스럽게 팀을 해체했다. 


1970년 컴백한 2기 허니비시스터스도 미8군 무대와 더불어 TBC 동양방송 TV에 출연하면서 일반무대에 진출했다. 당시 서울 종로의 파고다극장 부근에 있던 라이브클럽 사파이어즈는 이들의 주 무대였다. 

작곡가 윤용남의 주선으로 뒤늦게 음반취입 기회가 찾아왔다. 1971년 유니버셜레코드에서 발매한 허니비시스터스의 앨범은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초 희귀 앨범으로 평가받는다. 

외래어 표기법이 없었던 시절이라 팀 이름이 앨범 재킷에는 ‘허니비 시스터스’, 라벨에는 ‘하니비 시스터스’로 각기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작곡가 윤용남이 창작한 총 10곡이 수록된 이 앨범은 허니비시스터스와 임아영의 스플릿 앨범이다. 앞면을 장식했고 총 6곡을 노래한 허니비시스터스는 앨범에서 자신들이 지닌 끼와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미8군 클럽과 극장 쇼 무대를 주름잡았던 자신들의 장기인 광란의 춤을 곁들인 노래를 보여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앨범이 남성 수집가들에게 인기가 높은 것은 수록곡 보다는 재킷을 장식한 그녀들의 섹시한 사진 때문인 것이 사실이다. 

전반적으로 브라스가 들어간 세션으로 그녀들은 <추억>,<건망증 환자>,<사랑이 무엇인데> 등을 통해 만만치 않은 화음과 리듬감을 들려준다. 강력 추천하고 싶은 노래는 마지막 트랙에 수록된 화음과 음색이 매력적인 <종이로 만든 여자>이다. 


당시로서는 한국 여성들의 표준 체격인 158-160cm의 몸매를 지닌 허니비시스터스 멤버들은 앨범 발매 후에 각종 주간지와 노래책에 소개되며 존재를 알렸다. 

특히 1971년 언론에 소개된 오토바이를 즐기는 야성적인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당시의 언론기사에는 그녀들의 무대가 ‘현기증을 느낄 만큼 소란스러웠다’고 전한다. 

실제로 1972년 서울 시민회관 극장 쇼 무대에서 허니비시스터스는 신나는 팝송 <헤이 두나잇>, <모리나> 등을 열정적인 고고 춤을 선보이며 열창해, 흥분한 남성 팬들이 무대 위로 난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1973년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친 허니비시스터스는 펄시스터즈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를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진일보 시키는데 일조한 걸 그룹 중 한 팀으로 기억된다. 

그룹의 완전 해체 후 리더였던 조성자는 혼성 듀엣 포크 라나에로스포에서 짧은 활동을 했으나 그녀도 결혼과 함께 음악계를 떠난다. 

최근 그녀는 현재 성인 가요계의 왕자로 인기를 얻고 있는 신유에게 그 끼와 스타성을 물려준 친모로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앨범의 가치는 뒷면에 함께 수록된 임아영(본명 최현경)의 노래들이 한 몫 거든다. 한양대 영문과에 재학 중이었던 그녀는 1971년에 MBC FM의 「골든 디스크」를 진행을 맡아 노래 잘하는 여대생 DJ로 대중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짧은 활동 후 결혼과 함께 은퇴해 그녀를 데뷔시켰던 신중현도 오랫동안 그녀의 짧은 활동을 아쉬워했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기대주였던 그녀의 드라마주제가 <학부인>와 <돌개바람>, <순아의 그림자> 등은 신중현 곡이 아닌 다른 작곡가의 노래에서도 낭랑한 음색의 매력이 여전하다. 

라벨에 <순아의 옛 그림자>로 표기된 노래 제목은 재킷 뒷면의 표기로 미뤄 <순아의 그림자>를 오기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