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훈 밥 컬렉티브 (Park Ji Hoon & The Bop Coll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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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실한 오리지널리티와 따뜻한 퍼스널리티로, 모던재즈로의 묵묵한 구도(求道)의 길을 걷고 있는 재즈기타리스트 박지훈의 데뷔작, [Time's Up]
"기타리스트 박지훈은 재즈에 있어 전통의 가치는 아무리 첨단의 어법이 새롭게 등장하더라도 결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는 뮤지션이다. 유행과 트랜드에 함몰되지 않은 채 건실함으로 일구어 낸 그의 첫 데뷔작은 듣는 이에게 강렬하거나 도발적인 시선 대신, 안정되고도 온화한 사운드로 은근한 공감대를 이끌어 낸다." - MMJAZZ 편집장 김희준
"전통적인 재즈의 어법과 형식을 아우르는 오리지널리티에 충실하면서도, 따뜻한 감성의 피킹과 프레이즈로 다른 연주자들과 호흡하는 박지훈의 퍼스널리티는 재즈 본연에 충실함과 더불어 자신만의 감성을 발현해내는 두가지 미덕을 구가해낸다." ?기타리스트 신해원-
대중음악, 특히 록이나 블루스에서 기타라는 악기가 갖는 위상이 거의 절대적이었던 반면에 재즈씬에서는 그렇지 못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재즈 히스토리를 살펴보아도 엄청난 파급효과로 동시대 뮤지션들과 감상자들에게 영향력을 끼쳐왔던 이들의 대부분은 트럼펫, 색소폰 또는 피아노 연주자들이었다. 하지만 재즈록, 퓨젼재즈 등을 거쳐오면서 보다 폭넓은 스타일을 보유하고 있는 오늘날의 현대 재즈에서, 기타는 다양한 연주법과 여러가지 이펙터 등을 활용한 독특하고 실험적인 사운드로 점차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고, 그 가능성 또한 무한해 보인다. 기타리스트 박지훈의 데뷔작 [Time' Up]은 이러한 흐름에 완전히 편승하지 않고, 재즈가 가진 전통적이고 본질적인 가치에 더욱 비중을 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여러 대중 가수들의 방송 및 라이브 세션과 퓨전재즈 밴드활동 등으로 이름을 알려온 기타리스트 박지훈은, 2003년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나며 비로소 메인스트림 재즈 연주에 매진하게 되었다. 학업과 동시에 네덜란드 북부지역에서 ‘프린스 클라우스 재즈 오케스트라’의 멤버로 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트리오 및 쿼텟 등으로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쳐왔다. 귀국후에는 국내 여러 재즈뮤지션들과 교류하며, 프로듀서이자 연주자로 참여한 재즈 보컬리스트 박현선의 음반 [Naive]를 통해 특유의 치밀하고 구조적인 작편곡과 탁월한 연주력을 인정받았고, 보컬리스트 해랑의 데뷔 음반에서는 정통 브라질리안 스타일의 기타연주를 선보여 호평받았다. 그밖에도 젊은 재즈 밴드 ‘아웃포스트’의 음반에 게스트로 참여하는 등 활발한 레코딩 활동 중에도 자신의 오리지널과 그만의 스타일로 편곡된 스탠다드들로 꾸준히 무대에 오르던 박지훈은, 마침내 자신의 퀸텟인 ‘박지훈 밥 컬렉티브’를 결성, 일곱개의 주옥같은 오리지널 넘버들을 수록한 첫 정규 리더작 [Time’s Up]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박지훈의 연주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부분은 바로 섬세하고 따뜻한 그의 기타톤이다. 할로우바디 기타와 작은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정성스러운 터치는, 밥(Bop)에 근거한 어법을 사용하면서도 한결 멜로디컬하고 논리적인 그의 라인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즉흥연주시 무엇보다 곡의 테마와 체인지에 충실하고, 의미없는 노트들을 열거하거나 낭비하지 않는다. 때에 따라서는 도발적인 아웃라인과 폴리리듬을 적절히 사용해 긴장감을 주기도 하지만 대체로 느긋하면서 여유로운 연주를 들려준다. 또한 그는 리더로서 각 곡들을 치밀하고 엄격한 편곡으로 디렉팅하고 있지만, 녹음중 발생하는 자연스럽고 즉흥적인 요소들을 수용하며 곡 전체의 흐름을 조화롭게 이끌고 있다.
이미 수많은 공연과 음반을 통해 독보적인 스윙감을 널리 선보인 바 있는 드러머 이창훈은 곡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재즈드러머로서의 기본에 충실, 다른 연주자들을 충분히 듣고 반응하며 때로는 앙상블의 다이나믹을 극대화시켜 각 트랙에 활기를 불어 넣고있다. 초특급 영라이언이라 불리는 베이스의 김인영은 특유의 자신감으로 흔들리지않고 밴드의 중심을 이끌고, 명쾌하고 도드라지는 솔로주자로서의 역량까지 발휘하고 있으며, 여성 피아니스트라고는 믿기 힘들정도의 타이트하고 강한 터치와 스윙감을 지닌 피아니스트 곽정민은 동료 연주자들에 반응하며 수려한 코드보이싱과 멜로디를 들려주고 있다. 또 현재 국내에서 누구보다 활발한 활동을 하고있는 색소폰의 신현필은 넓은 음역과 깊고 풍부한 음색으로 곡에 화려함과 깊이를 더해주고 있어서, 이 음반에서 함께한 단 세 곡만으로도 확실한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모달리티적인 요소와 복잡한 코드체인지가 공존하고 스트레이트한 라틴 필 리듬과 하드 드라이빙한 스윙이 교차되며 쉴 새없이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포스트밥 스타일의 동명 타이틀 “Time’s Up”을 필두로, 솔로기타의 따뜻한 코드멜로디로 시작되는 발라드 “Mary-Anne”, 동양적인 다섯음계를 메인테마로 사용하여 인트로와 테마를 거쳐 각 악기들의 솔로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연주되는 이 앨범의 백미 “East Wind”, 소울풀한 블루스느낌의 재즈훵크 “Molar”, 단 한번만 들어도 귀에 쏙 들어올 재미있는 멜로디에 폴리리듬을 활용하여 곡의 흐름에 급작스러운 변화를 주는 브릿지가 인상적인 하드밥 스타일의 리듬체인지 “Traffic Jam”, 나른한 오후에 어슬렁거리는 어느 게으른 고양이 한 마리를 연상시키는 슬로우 스웡넘버 “Cat’s Boots”, 그리고 끝으로, 컴컴한 바다를 비추는 등대의 불빛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가는 작은 배 한척을 잔잔한 아쉬움으로 바라보는 듯한 “Lighthouse”의 아웃트로로 이 음반의 모든 연주가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