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호 - Preparation For a Journey (1st Mini Alb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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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만으로 만들 수 있는 감동
명품 보컬 가호의 첫 번째 미니 앨범
목소리는 신이 선사한 최고의 악기라 이야기한다. 모름지기 ‘가수’라면 목소리만으로도 감동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목소리가 악기를 흉내 내는 아카펠라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잘 짜인 사운드에 들어가 주어진 멜로디로 노래하는 가수의 가치는 낮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대중가요는 보컬의 역량보다 멜로디와 가사가 감동의 크기를 좌지우지한다.
고로 히트에 대한 대가는 작곡과 작사를 맡은 이들에게 더 많이 돌아간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중요하다. 보컬만으로 곡을 지배하고 히트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가수들은 오랜 시간동안 레전드로 사랑받을 수 있다.
그만큼 가수의 역량만으로 대중의 감성을 뒤흔들기 어렵다는 얘기다.
젊은 신인 싱어송라이터 가호의 곡을 들으며 계속해서 보컬리스트의 역할과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근래 이런 완성된 보컬리스트를 만나본 적이 없다. 트렌디한 R&B를 주요 장르로 선택하고 있지만 한 장르에 한정시키기도 아깝다.
첫 번째로 목소리가 곱고 안정적이다. 이런 목소리의 장점은 곡을 깨끗하고 품격 있게 만든다. 발라드도, R&B도, 비트가 얹어져도 깨끗한 곡의 품격은 그대로 유지된다. 물론 이런 안정적인 보컬은 곡의 개성을 떨어뜨리는 단점이 될 수 있다.
두 번째는 강약 조절과 가성의 활용이다. 개성이 떨어질 수 있는 안정된 보컬의 단점은 이 두 번째 능력을 통해 완벽하게 커버된다.
감정 표현이 과하지 않지만 예상치 못한 강약 조절은 순간순간 드라마틱한 자극을 전하며, 매끄럽고 시의 적절하게 넘나드는 가성과 진성은 매 곡마다 감정을 쥐락펴락한다.
싱코페이션과 애드리브가 원곡의 가치를 높이듯 가호의 보컬 또한 원 멜로디와 가사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뛰어난 장점을 갖고 있다.
플라네타리움 레코드(이하 PLT)의 동료들과 함께하며 보여주었던 역량, 싱글에서 선보였던 스타일은 그대로 첫 번째 미니앨범에 이어졌다. 앨범 타이틀은 “Preparation For a Journey”.
타이틀곡으로 낙점된 ‘떠날 준비’를 영어로 풀어 적은 나름의 ‘동명타이틀’ 앨범이다. 인트로를 포함한 다섯 곡이 수록된 말 그대로 미니 앨범이라는 점이 아쉽지만 퀄리티에는 아쉬움이 없다.
인트로곡인 ‘Intro : Stay Here’는 첫 번째 싱글 ‘있어 줘’의 연장선에 자리한 곡으로 기다림의 감정을 더욱 클래시컬한 느낌으로 표현했다.
타이틀곡 ‘떠날 준비’는 현재의 삶을 탓하며 떠날 준비를 하지만 모든 원인은 자신에게서 시작된다는 깊이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슬로우 템포의 트렌디 R&B로 차분한 전개 속에서도 자신의 장점인 드라마틱한 보컬 역량을 쏟아낸다.
격하게 소리를 토해낸 뒤 다시 삼키는 감성의 조절 능력이 돋보인다. 센티멘탈 코드가 아닌 클래시컬한 용도로 활용하는 현악 스트링도 돋보이는 대목. 가수, 송라이터, 프로듀서로서의 역할을 모두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Going on’은 리드미컬한 전개가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상대방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곡이지만 쿨한 이별의 감성을 흥겨운 기타 사운드에 얹었다. 흥겹고 중독성 강한 훅에 이별의 메시지를 담은 발상이 재미있다.
‘그때 (Then)’은 항상 함께하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서툴렀던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함께 지낸 시간과 대상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았다. PLT 친구들 중 가장 깨끗한 보컬을 선보이는 가호와 가장 자유분방하고 개성 넘치는 보컬 빌런이 절묘한 감성의 합을 찾아냈다.
마지막 곡 ‘Heaven’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독특한 곡. 노부부가 함께 걸어온 삶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지막 이별의 순간을 담담하게 표현했다. 대상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경건하고 담백한 슬픔의 감성이 인상적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명품 보컬리스트라면 가사가 아닌 목소리만으로도 감성의 흐름을 만들고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글 / 대중음악평론가 이용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