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계의 센세이션, 지휘의 마왕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그만의 스타일
테오도르 쿠렌치스 Teodor Currentzis
장 필리프 라모 《빛의 소리》
Rameau: The Sound of Light
"내게 10년의 시간을 준다면 클래식 음악을 살려내겠다”
- 2005년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오늘날 클래식 음악계는 젊은 지휘자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젊은 지휘자들 중에서도 테오도르 쿠렌치스(Teodor Currentzis)는 유독 눈에 띄는 존재다.
우선은 쿠렌치스의 외모가 그렇다. 특유의 올 블랙 패션과 치렁치렁한 긴 머리, 화려한 장신구는 그를 지휘자라기보다는 밴드나 디제잉을 하는 음악가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스네이프 교수가 연상될 정도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클래식 음악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의 음악적인 행보 역시 매우 독특하다. 일반적으로 지휘자들은 거장을 보조하는 역할로부터 시작해 점차 이름을 알리고 베를린필, 빈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밀라노 스칼라극장처럼 유명한 오케스트라나 오페라극장에 초대받아 명성을 쌓아간다.
하지만 쿠렌치스의 활동은 이러한 방식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우리에게 이름조차 생소한 러시아 페름(Perm)이라는 도시를 근거지 삼아 자신이 창단한 ‘무지카 에테르나(MusicAeterna)’라는 연주 단체 위주의 활동을 할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방’에서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쿠렌치스만의 독특한 색채와 파격적인 음악은 클래식계 관계자들과 애호가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결과 오늘날 그는 때로는 격찬의 대상이 되고, 때로는 논쟁의 한 복판에 서며 클래식계의 판도 전체를 뒤흔드는 지휘자로 자신만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
2005년 영국 텔레그라프지와 가졌던 인터뷰에서 “나에게 10년 정도의 시간만 준다면 클래식계를 살려 놓겠다.”며 패기 넘치게 장담했던 그의 예언이 정말로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는 프랑스 출신 바로크 작곡가 장 필립 라모(Jean-Philippe Rameau, 1683-1764)의 서거 250주년을 맞아 발매한 일종의 컴필레이션 음반으로
그의 다양한 오페라와 발레음악들이 총 18개 트랙으로 나누어 수록되어 있다. 사실 라모는 음악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인물이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작곡가들보다는 선호도나 대중성이 떨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봤을 때 오늘날 가장 주목 받는 지휘자인 쿠렌치스가 라모의 음악만으로 구성된 음반을 발매한 것은 매우 흥미롭다.
‘The Sound of Light’라는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음반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은 ‘빛’이다. 쿠렌치스는 라모의 음악을 원초적인 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음반에는 첫 번째 트랙 ‘에베의 축제(Les Fêtes d'Hébé)’부터 마지막 트랙인 ‘카스토르와 폴룩스Castor et Pollux)’에 이르기까지 라모의 여러 작품 속 아리아와 춤곡들을 감상할 수 있는데,
쿠렌치스는 라모 특유의 색채감으로 가득 찬 이 음악들에 자신의 감성을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
또한 무지카 에테르나 오케스트라, 합창단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2004년부터 지금까지 쿠렌치스와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해오고 있으며 이러한 유대관계는 음반에서 고스란히 녹아 나오고 있다.
특히 라모의 음악과 쿠렌치스의 지휘 둘 중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는 무지카 에테르나의 연주를 감상하는 것은 상당한 즐거움이다. 물론 무지카 에테르나가 ‘세계적인’ 연주 단체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 음반에 한해서 만큼은 아무리 유서 깊고 높은 명성을 지닌 악단이라도 이들만큼 쿠렌치스의 숨겨진 의도를 잘 파악하고 실제의 소리로 표현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