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과
원의 중심으로.
나는 마음에 드는 새로운 음악가를 알게되면 무조건 첫 앨범을 제일 처음으로 들어본다.
아무래도 첫 앨범이다보니 때때로 완성도 면에서 조금 떨어지기도 하지만 그 음악가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같은 것을 제일 잘 느낄 수 있는 앨범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러 음악가들의 앨범을 듣다보니 이런저런 케이스를 많이 발견하게 되었다.
첫 앨범은 갈팡질팡한데 점점 뚜렷해지는 경우, 처음부터 단단했던 앨범, 용두사미, 처음부터 지금까지도 갈피를 못잡는 경우 등. 나는 아무래도 처음부터 단단했던 음악가들이 좋았다. 때문에 나의 첫 앨범에 대한 욕심이 컸었다.
나의 첫 앨범은 내가 좋아했던 음악가들만큼 단단하진 못 할 지라도 앨범에서 나의 태도나 주제가 뚜렷하게 느껴지길 바랐다. 그리고 반드시 나의 음악으로 담아두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그렇게 만들기 시작했던 나의 첫 앨범은 제작 과정에서 어느 순간 그 색을 잃고 서 있었다. 이 앨범을 만드는 것은 나를 지탱하던 중심축이나 다름 없었고, 그것을 놓치고나니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고서는 다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주저앉아 지내던 1년 동안 나를 돌이켜 보며 그리고 내 주변 동료들을 보며 여러가지 사실을 상기하게 되었다.
그 중 하나는 나는 지금 막 시작한 새내기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내가 정말로 되고자 하는 모습에 대해서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내가 처음부터 너무 큰 욕심을 부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천히 내가 그리는 모습으로 나아가며 그때그때의 내 모습을 과장없이 담아내고자 다짐했다. 그리고하여 나오게 된 첫 ep앨범의 이름은 내가 그리는 나의 모습으로 가는 첫 발걸음이라 생각하며 ‘원의 중심으로’ 라고 지었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지가 궁금해지는, 언젠가 다른 앨범으로 나를 알게되어 후에 이 앨범을 듣게 되었을 때 또 다른 모습의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앨범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내가 만든 음악의 주인공이 나이길 바라지 않는다. 들어주시는 분들 한분 한분이 오롯이 이 음악들의 주인공이었으면 한다.
그리고 내가 그랬던 것 처럼 이 음악들로 인해 떠오른 옛 기억과 생각들이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으면 한다. 조금 더 욕심을 내어서 그 기억이 바로 여러분들의 구심력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까지 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 앨범이 내 원의 중심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