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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tia - Clan of the rock



데뷔 30주년을 기념하는 정규 3집 음반
CLAN OF THE ROCK


국내에 헤비메탈 밴드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건 1980년대 중반이다. 송설 라이브홀, 파고다 예술관 주변엔 긴 머리와 가죽 부츠로 무장한 로커들이 집결했고,
대학로의 차 없는 거리에서는 서문악기에서 주최한 헤비메탈 공연이 열렸다.
이들은 해외에서만 가능할 줄 알았던 본격 헤비메탈 사운드를 척박한 현실 가운데 펼쳐 보이며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크라티아는 앞서 언급한 활동 거점들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밴드 가운데 하나였다.
크라티아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건 1987년이다.
외모에서부터 음악성까지 당시 세계 록 시장의 지형도를 바꿔놨던 글램메탈의 영향권 아래 있던 이들은 기타리스트 이준일의 탁월한 플레이를 바탕으로
서서히 자신들의 영향권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연을 통한 휘발성 매체로만 존재했던 크라티아의 존재는 옴니버스 앨범 [Friday Afternoon](1988)과 이 옴니버스 음반에 함께 참여했던
아발란시와의 스플릿 음반 [Cratia & Avalanche Joint Album](1989)을 통해 비로소 실체가 되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며 국내 헤비메탈 신(scene)은 급격하게 쇠락한다.
로커들은 머리를 자르고 밴드에서 이탈해 솔로 ‘가수’가 되었으며, 밴드의 활동 거점은 하나 둘씩 사라졌다.
멤버를 잃어버린 밴드는 계속되는 이합집산 속에서 공중분해 되었으며, 플레이어들은 음악을 그만두거나 세션과 작곡으로 진로를 변경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은 크라티아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밴드의 리더 이준일은 몇몇 음반에 기타 세션으로 참여하기도 했지만 계속되는 멤버교체 속에서
 크라티아의 정규 1집 음반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결국 1995년, 밴드는 기약 없는 활동중단에 들어가게 된다.
크라티아의 소식이 다시 들려온 건 밴드가 결성된 지 20년이 되던 해인 2007년이었다.
상황은 밴드가 활동 중단에 들어가던 당시인 1990년대 초반에 비해 더욱 열악했지만 그때와는 또 다른 오기와 열정으로 밴드를 다시 꾸린 것이다.
물론 계속되는 멤버교체는 계속해서 크라티아 활동의 발목을 붙잡았다.
재결성 후 5년이 지난 2013년 정식 데뷔앨범 [Retro Punch!]를 발매했지만 녹음 당시 공석이었던 보컬 파트는 결국 여러 객원보컬의 목소리로 채웠다.
2015년 발표한 두 번째 음반 [Broken Culture]에서는 새로운 보컬리스트 김동찬을 영입해 2집 앨범에 따르는 후속 활동을 이어갔다.
후속 활동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행보는 후배 밴드를 규합해 진행한 ‘Clan Of The Rock’이라는 타이틀의 공연이다.
서울을 비롯해 지방의 중심도시까지 그 활동 영역을 넓히며 펼친 이 공연을 통해 크라티아가 하려고 했던 이야기는 바로 타이틀 그대로 ‘록의 종족’ 혹은
‘록의 자손’으로서의 끈기와 신념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데뷔 30년을 맞이하며 또 한 장의 정규앨범이 그들의 디스코그래피에 추가됐다.
크라티아가 순회공연을 통해 꾸준하게 주창했던 ‘Clan Of The Rock’이 이번엔 음반의 타이틀이 됐다.
또 공연을 통해 다져진 멤버간의 유기적인 조화는 위태했던 지금까지의 활동을 만회할 안정적인 라인업 구축으로 이어졌다.
이번 음반 역시도 글램메탈을 기반으로 한 클래식록의 레트로 사운드로 접근하는 크라티아의 표현 능력은 발군이다.
장쾌한 스케일의 리프를 필두로 이어지는 ‘Misery’이나 ‘Highlander’에서 들을 수 있는 보컬리스트 김동찬의 매력은 기존 크라티아의 이러한 성향에
딱 맞아떨어지는 힘과 기교를 겸비했다.
‘Struggle’에서 들을 수 있는 어금니 아래쪽이 욱신거릴 듯 힘에 넘친 피킹 하모닉스의 공격, 살아서 퍼덕거리는 육중한 그루브와는 대조적으로 유려한 코러스 라인과
물 흐르듯 매끄럽게 이어지는 이준일의 기타 솔로는 30년이라는 밴드의 역사가 그저 단순한 숫자의 나열만이 아님을 그대로 증명한다.
‘Clan Of The Rock’라는 타이틀의 공연에서 볼 수 있었던 후배 밴드와의 유대관계는 세 번째 정규음반으로도 이어졌다.
모비딕의 키보디스트 김선빈은 AOR 스타일의 ‘Keep On Running’에 가슴 뭉클한 신시사이저 인트로를 헌사 했으며,
지하드의 박영수는 숨 가쁘게 질주하는 ‘Insomnia’의 중반부 현란한 기타 솔로를 담당했다.
굳이 헤비메탈에 관심이 없더라도 깊은 감동을 공유할 수 있는 매력 넘치는 록 발라드 ‘Lost’로 크라티아는 자신들의 데뷔 30년을 조용히 자축하며 음반을 마무리한다.
데뷔 30주년이라고는 하지만, 크라티아의 활동은 꾸준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부분이 멤버들에게 더욱 절실함을 주었고, ‘안주’보다는 꾸준한 ‘도전’을 가능하게 만든 건 아닐까.
보통 ‘원로’ 밴드들의 수식어로 뒤 따르는 ‘노련함’이나 ‘원숙함’보다는 ‘발전’과 ‘투쟁’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만한 음반이다.
그렇게 본다면 김동찬(V), 김영훈(B), 오일정(D) 그리고 이준일(G)로 이루어진 현재의 라인업이 어쩌면 지금까지 이어온 크라티아의 역사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구성원이 될 것이다.
지나온 30년을 정리함과 동시에 앞으로의 활동에 다시금 도전장을 내밀 힘과 점성을 가진 라인업에 될 터이니 말이다.
그런 모습을 동시대에 함께 할 수 있어 참 다행이다.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