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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chel's - Systems/Lay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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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심포닉 락밴드 레이첼스가 5년만에 발표한 5번째 앨범.
현존하는 가장 순수하고 인간적인 보통 사람들의 일상의 표정들을 담아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뉴욕 출신의 하비 왕(Harvey Wang)의 사진들과 현대 도시 속의 냉혹함과 따뜻함을 함께 음악적으로 녹여낸 놀랍도록 사색적인 작품.
- 인간의 도시, 도시의 인간을 보듬는 날카롭고 사색적인 서정
태고적부터, 인간의 신체는 물과 공기가 순환하는 자연 속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연에) 연결되어왔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 내부에서 정보가 순환하는 전자 신체(electronic body)를 갖추었고, 그리하여 이 또 다른 신체에 의해 정보의 네트워크를 통한 세계에 연결된다...... 우리에게 가장 큰 도전은 어떻게 이 두 타입의 신체를 통합할 수 있는가이다. 이는 오늘날 건축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문제는 원시적인 공간과 가상 공간을 어떻게 통합하느냐는 것이다...
아마도 포스트 록(post rock)은 20세기말의 록 저널리즘이 가장 야심차게 만들어낸 용어일 것이다. 장르명이란 것은 많은 경우 음악 잡지의 편의에 따라 그때그때 급조된 것으로서, 이를테면 `뉴 웨이브(New Wave)`처럼 토킹 헤즈(Talking Heads)와 디페시 모드(Depeche Mode), 스펜다우 발레(Spandau Ballet)를 무차별적으로 한데 묶으면서도 낯빛 하나 바꾸지 않을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어떤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소리를 잡아낸 뮤지션들을 지칭할 수 있다는 편리함으로 인해 이런 장르명들을 기꺼이 사용하곤 하지만, 동시에 비판적 거리를 둠으로써 `진지한` 음악 감상자로서의 품위를 유지하고자 한다.
그러나 시카고를 중심으로 하는 일군의 밴드들 ― 슬린트(Slint), 토오터스(Tortoise), 트랜스 앰(Trans Am), 가스트르 델 솔(Gastr del Sol)과 훗날의 짐 오루크(Jim O`Rourke), 쿨 드 삭(Cul de Sac) 등 ― 의 활동은 애초부터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있었던 일종의 `운동(movement)`이었다. 이 사려깊고 지적인 뮤지션들은 (전기)기타 중심의 음악이라는 록의 `근본적` 전제를 허물지 않는 동시에 또한 그 이상의 것을 얻고자 함으로써 `결코 죽지 않을 수백만의 인간들(Millions Now Living Will Never Die)` 중 하나가 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그들은 재즈와 클래식은 물론이요 영미 록의 온갖 부산물들을 거쳐 각종의 전자음과 언더그라운드 비트에 이르는 광범위한 음악적 재료를 모아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포스트모던적 시대정신`을 음악으로 나타내고자 했다.
그래서 평자들이 이들에게 `포스트 록`이라는 장르명을 부여한 것은 일견 필연적인 귀결일 것이다. 하지만 `록 아닌 록`이라는 역설적 `이론`은 이들 또한 `해체`되고 `재구성` 될 것이라는 말에 다름아니었을 것이고, 포스트 록의 수혜를 입어 `해체되고 재구성된` 자잘한 가지를 쓰다듬을 때, 우리는 제법 굵은 가지 중 하나에 레이첼스(Rachel`s)라는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더불어 이 음악을 더 이상 `포스트-`라는 접두사에 얽매어둘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포스트-` 자체가 심각한 의문인, 즉 `영미권 여피 학자들의 탈속적 세계인식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건 아니었던가`라는 의문에 (이미 오래 전부터) 직면한 상황에서는 더욱 더. 이 점은 그들이 음반의 속지에 건축가 토요 이토의 글을 제사(題詞)로 삼은 것을 통해 좀 더 명확히 인식될 수 있지 않을까.바람의 탑(1986),야스시로 박물관(1991) 등의 건축물을 통해 가벼움, 투명성, 인간과 자연의 통합이라는 주제를 추구하고 있는 이 건축가의 사상은 아마도 레이첼스의 새 음반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으리라고 짐작되는 바, 이들의 신보는 이전의 음반들과는 ― 심지어는 외도에 가까웠던 [MusicFor Egon Schiele]보다도 더 ― 사뭇 다른 울림과 정서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 울림과 정서는, 요약하자면 `도시의 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