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chel's - Music For Egon Schie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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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초의 우울과 긍정의 회화적 풍경
이 앨범은 1996년 발표된 그들의 두 번째 작품으로 천재적인 화가 Egon Schiele를 위해서 헌정된 발레에 그들은 극음악을 담당하게 되어 이 작품을 발매하게 된 것입니다. 작품이 그려내고 있는 순간들은 너무도 천재적이었지만 불운하기 이를 데 없었던 그의 삶을 여과없이 어둡고 우울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이 음반의 뛰어난 면은 다름이 아닙니다. 전형성을 띄고 있는 대중음악에 식상한 대중들에게 이 음반은 신선한 자극이 되었고 육체성의 그 끝을 추구하는 현대발레에 맞추어 작곡된 음악답게 이 트리오는 대담한 역동성을 실내악적인 정치한 앙상블로 표현해 내는 데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현대음악의 가장 큰 아이러니 중 하나는 비 대중성에 대한 가장 큰 요소인 이성주의의 산물이라는 비판과 반감에도 불구하고, 그 음악적 이미지가 매우 불안정하고 심지어 괴기스럽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감상은 로고스중심의 이성주의에 빠진 사람들의 보수적 성향에서 나온 학습부족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만, 이 음악은 현대에 작곡된 Score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음악의 특성적인 감성의 메마름과 비대중적 성향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성적으로 매우 촉촉하게 젖어들어 갈 수 있는 이입의 요소가 그 어떤 음악보다도 큰 곡인 것입니다. 게다가 이성에 직접적으로 이입되는 현대음악적 요소를 배제하였지만 악곡의 구조상에서 낭비와 소모가 없는 말끔한 작곡의 방법은 현대음악을 이끌어 가는 작지 않은 유행인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모습도 보여지고 있습니다. 작품의 불투명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이끌어 내는 데에 이 작법은 더없이 효과적으로 보입니다.
작품의 핵이 하나하나가 성겨있고 분쇄되어 있는 듯하게 보이는 이 13개의 편린으로 이루어진 에곤 실레를 위한 음악에는 맹목적인 우세를 주장했던 고전주의의 숨결에서 멀리 벗어나 있습니다. 이 작품에는 전자악기와 타악기가 첨가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듣는 이를 격동시키는 데에는 조금의 부족함도 없어보입니다. 자극적이지 않고 고풍스러운 음색의 앙상블이 그려내는 순간순간은 오히려 많은 생각의 이입을 이끌어 냅니다. 그리하여 대중음악의 요염하고 자극적인 순간이 가하는 감정의 강도 높은 명암대비와는 또 다른 식의 강렬한 인상을 주는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어느 곳 하나 분명한 곳 없이 청자의 많은 상상력을 이끌어 내는 이 작품은 대중음악의 요염함보다도 오히려 관능적인 쾌감을 맛보게 해줍니다. 만약에 이 작품과 함께 한다면 아마도 듣는 이의 방은 언제나 불변하는 감동을 맛 볼 수 있는 콘서트 장이 될 것입니다.
『Music for Egon Schiele』는 전형성을 거부한 참신함 속에서 예부터 꿈꿔 왔던 미적인 감수성을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순간입니다.
“레이첼스의 음악을 두고 우리는, 음의 선형적 진행을 내파하고 소리에 공간감, 또는 색채를 부여하고 싶어하는 욕망이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특히 이들의 Music for Egon Schiele는 그들의 그런 시도가 가장 아름답게 세공된 결과물이다. 소리의 팔레트에서 물감을 짜내 황홀하게 채색해 나가는 현과 피아노의 수줍은 동거는, 실레 그림 속의 몸뚱이들보다 에로틱하게 느껴진다.”
– 박찬욱 (영화감독)
“<에곤 실레를 위한 음악>은 데카당트한 바이마르 시대의 그만큼 퇴폐적이고 또한 관능적인 에곤 실레를 위해 그들은 사운드로 조직된 직물을 만들어내고 있고, 그것은 아름다운 풍경을 듣는 이에게 촉발한다. 레이첼스의 다른 앨범들에서 한결같이 반복되듯이 이들에게 있어 음악은 풍경이다……
피아노와 바이올린과 첼로, 비올라는 에곤 실레를 향한 사운드의 이미지, 그를 다시 환영 속에서 불러내는 사운드스케이프를 창조한다. 따라서 이 앨범을 듣기 위해서는 반드시 앨범의 재킷이 필요하다. 그것은 영화의 자막처럼 각 곡들이 불러내는 환영의 촉매가 될 것이다. 이 앨범은 아름답고 소중하게 마련된 그림과 글을 담고 있다.”
– 서동진 (문화평론가)
“무용극 ‘에곤 실레’를 위해 만들어진 이 앨범은 록음악을 기반으로 실내악적인 요소를 결합한 레이첼스의 대표작으로 요절한 천재화가의 삶에 대하여 임박한 죽음의 냄새와 관능적 쾌락을 비극적이고도 염세적인 사운드로 표현한 걸작!”
- 조영욱 (영화음악가)
“이 열두개의 단편들은 1995년 시카고의 일리노이 대학 내 아이티너런트 시어터 길드에서 슈테판 마주레크가 ‘에곤 실레’라는 제목으로 공연한 무용 공연을 위한 사운드트랙이다. 베르크의 탐미적이고 열정에 솟구치는 음악과는 달리 레이첼스가 연주하는 곡들은 미니멀리즘을 연상케 하듯 반복적이고 큰 변화 없다. 곡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연민과 동정이지만 그렇다고 감정을 고스란히 이입하지는 않는다. 뭔가 동떨어진 채 훔쳐보고, 머뭇거리며, 실레의 세계에 동참하기를 꺼리는 듯한 느낌이다. 디아길레프가 라벨의 '라 발스 La Valse'를 듣고 이 곡은 왈츠가 아니라 왈츠에 대한 초상이다”라고 말했듯이 레이첼의 음악은 실레와 혼연일체 되었던 베르크와는 달리 그의 회화를 아름답게 관조하고 있다.”
– 정준호 (클래식 음악평론가, 전 '그라마폰' 편집장)
“레이첼스는 소리를 강조하기보다는 침묵을 강조한다. 그렇게 해서 그 어떤 색채보다도 선연한 공허와 여백이 묵직한 톤으로 번진다. 눈을 감아야 더 잘 보이는 어떤 그림들이 그 순간 떠오른다. 현실보다 더 명징한 꿈의 언저리, 소리가 농밀한 반점처럼 번지면서 비로소 나타나는 유령들의 육체. 에곤 실레의 육체를 꿰뚫고 탄생한 그것들은 다른 세계의 초입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곳엔 뒤틀리고 깡마른 육체들이 느릿느릿 춤추고 있다. 그건 다름 아닌 레이첼스를 듣고 있는 나의 그림자가 아닐까? 우리는 레이첼스를 통해 또 다른 에곤 실레가 된다.”
– 강정 (시인)
“히스테릭한 윤곽선 속에 채워진 여동생 게르티, 모델이자 연인이었던 발리, 아내 에디트, 그리고 수많은 자화상들 속의 실레 자신. 이 모두를 빠뜨리지 않고 담아가는 Rachel's의 음반 『Music For Egon Schiele』는 원래 발레극 용 음악으로 만들어진 것이란 사실이 무색할 만큼 완전히 독자적인 방식으로 요절한 천재 화가 에곤 실레의 짧고도 기이한 인생을 하나의 추보식 동선 안에 성공적으로 압축해내고 있다. 이것은 실레의 작품과 인생을 한번에 변주하는, 영화 없는 한 편의 사운드트랙이다.”
– 성문영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