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시작과 그 종말은 어떠한 풍경일까.
영웅은 어떻게 태양처럼 떠오르고, 그 위대함은 어떻게 하강하는가.
지배에 굴복하지 않는 광인은 한 줌 달빛 아래에서 나고,
그의 예술은 선택을 기다리지 않는 마음으로 조용히 피고 진다.
이제 시간의 절벽 앞에
한 소년의 사랑이 마감하고, 그 침묵이 모여 한 시대의 행진이 멈출 때.
이윽고 무심히 내리는 빗살이 추억을 시선 밖으로 밀어내지만,
그는 이것이 끝이 아님을 본다.
이 작품은 지리한 우리네 하루의 반복부터
역사의 순환까지, 그 정밀하고도 거대한 질서를 관장하는
수레바퀴에 대한 찬가.
그리고, 세상 앞에 발가벗고 서 있는 운명적인 인간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고백이 담긴 편지.
비정하지만 아름답고 장엄한 우리 세상을 정면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는
사실 영원히 실패할지도 모르는 시지프의 과학이지만,
이그니토(Ignito)의 가이아(Gaia)는 바로 이러한 위험한 실험이 줄기마다 서려있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