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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신드롬 (Black Syndrome) - 9th Gate
BLACK SYNDROME / 9TH GATE

한국의 헤비 메틀 역사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이름으로는 시나위, 백두산, 부활, 외인부대, 작은하늘 등을 들 수 있다. 그들을 80년대 한국 헤비 메틀의 아이콘이라 한다면 90년대를 대표하는 이름으로는 미스터리(Mystery), 사하라(Sahara), 크래쉬, 멍키헤드(Monkey Head), 사두(Sadhu) 등을 들 수 있겠다. 여기까지는 꽤나 잘 알려진 내용이지만 의외로 이 두 시기 사이의 공백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말하자면 80년대 후반부터 93-94년 정도까지의 시기를 이야기하는 것인데, 이 시기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앨범으로는 한국 헤비 메틀 음반 사상 초유의 컴필레이션이라 부를 만 한 [Friday Afternoon] 시리즈를 언급해야만 한다. 쇽 웨이브(Shock Wave), 에덴(Eden), 제로-G(Zero-G), K.L.K.B., 나티(Naty) 등의 귀중한 음원이 담겨 있는 이 앨범은 아직까지도 당시를 기억하는 많은 매니아들에게 재발매 희망 앨범 1호로 손꼽히고 있는데, 이 앨범과 당 시기의 중심에 위치한 이름이 바로 블랙 신드롬(Black Syndrome)이다.

지금까지 편의상 블랙 신드롬을 헤비 메틀 밴드로 설명하였는데, 실상 음악적인 면에서 블랙 신드롬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헤비 메틀 밴드로 보기 어려운 면이 다분하다 (사실 국내 정통 헤비 메틀의 적자는 전성기의 시나위와 백두산 정도라고 봐야 한다). 전성기의 블랙 신드롬 사운드는 스트레이트/슬리지 록큰롤과 하드 록이라고 봐야 하는데 (이는 당시를 풍미했던 소위 LA 메틀 밴드들의 음악에 대부분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이는 그들의 2집 앨범에 AC/DC의 곡 Girls Got Rhythm이 커버 되어 있는 사실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이는 아마도 김재만과 박영철의 음악적 취향에 기인할 법 한데, 실상 그들의 1집에서 4집까지의 사운드를 아울러 볼 때 많은 청자들은 마치 AC/DC와 신데렐라(Cinderella)가 결합한 듯한 독특한 사운드에 색다른 충격을 받게 된다. 사실 국내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오지 오스본(Ozzy Osbourne) 풍의 비교적 정통적인 헤비 메틀이나 메틀리카(Metallica)-메가데스(Megadeth)의 오소독스한 스래쉬 메틀, 혹은 헬로윈(Helloween) 풍의 멜로딕 스피드 메틀에 경도된 팬이 많은 편이었다. 국내의 밴드들 중 비교적 블랙 신드롬과 같은 스트레이트 하드 록 취향의 사운드를 구사했던 팀으로는 제로-G나 제이워커(Jay Walker), 잭팟(Jackpot) 정도를 그나마 언급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처럼 블랙 신드롬은 그 사운드의 특징상 국내 헤비메틀/록 씬의 계보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고 하겠는데, 이러한 시류에서 동떨어진 사운드를 지니고 있던 블랙 신드롬이 아직까지도 팬들의 기억 속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것은 그들의 사운드가 훌륭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었음과 더불어 무엇보다도 ‘송설 라이브 100일 연속 출연’으로 대표되는 그들의 왕성한 공연 활동 덕분이라 하겠다 (이는 블랙 신드롬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공연으로 팬들에게 다가가는’ 정공법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앨범은 어떤 내용물을 담고 있을까? 전체적으로 박영철의 탈퇴 이후 블랙 신드롬의 이름으로 발표된 다소 실망스러운 작품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전성기 사운드로 채워져 있다 (마치 빈스 닐의 복귀 후 발표된 머틀리 크루의 최근 앨범 [Hell On High Heels]에서 받았던 느낌과 비슷하다). 그러한 특징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트랙이 바로 Voodoo Child와 Man Under The Moon이라 하겠는데, 이 두 신곡 만으로도 이 앨범은 충분한 가치를 갖는다. Fly Away에서는 멤버들이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컬렉티브 소울 풍의 좋은 멜로디 라인을 확인할 수 있다. 앨범 전체를 통틀어 많은 새로운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다행히도 예전의 시행착오 덕분인지 이번 앨범에서는 그러한 새로운 시도들이 블랙 신드롬 고유의 사운드적 특질을 해치지 않으면서 잘 융화되어 있는 느낌이다 (이는 마치 그들이 4집 앨범에서 당시 대두하기 시작했던 얼터너티브적인 사운드를 전격적으로 시도하였음에도 완벽히 블랙 신드롬적인 사운드로 소화되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갑작스런 변화를 모색하기에는 좋은 시기라 아니라는 판단이었을까? 하나의 정규 앨범에 담기기에는 다소 많은 3개의 곡이 이전 곡의 리메이크인데(Goin’ Crazy, Feed The Power, Personal Loneliness), 어차피 거의 십년이 지난 시점에서 새로운 녹음과 새로운 분위기로 변모한 곡들인 관계로 신곡으로 받아들여도 무리가 없을 정도의 느낌이다 (Goin’ Crazy와 Feed The Power (Cable Into Me)의 재녹음도 훌륭하지만 개인적으로는 Secret Love를 선택했다면 더 좋았을텐데, 라는 느낌도 들고, Personal Loneliness의 테크노 리메이크는 약간 오버한 듯 한 느낌이긴 하지만 뭐 듣기에 나쁘지는 않다). 아마도 이번 앨범의 사운드는 일단 다시 ‘정통 블랙 신드롬’의 사운드를 통해 기존 팬들을 만족시키고 ‘이것이 블랙 신드롬이다’라는, 말하자면 ‘성명서’와도 같은 느낌을 주는데, 확실히 컴백 앨범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블랙 신드롬이 블랙 신드롬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김재만과 박영철의 콤비 플레이에 있다. 이번 앨범을 통해 그것은 다시 이루어졌고, 부디 그 환상의 결합이 다시는 깨어지지 않고 계속되기를 빈다. 그래야만 진정한 록큰롤을 구사하는 팀들이 거의 사라져 버린 한국의 록/메틀 씬에 새로운 조류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고 또한 그것이 블랙 신드롬이 ‘이 바닥’의 최고참 선배 중 하나로서 지닌 무거운 짐이기도 하다. 앨범의 발표 후 블랙 신드롬의 이름이 대중에게 다시 일어나기를 빈다. 나는 이 앨범이 또 한 장의 ‘비운의 앨범’이 되기를 원하지 않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 글을 읽고 있는 팬 여러분의 힘이 필요하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모습을 공연장에서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