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사진관의 정규 3집 「Dreamography」
옥수동 달동네의 추억
1990년대 중반 평균 40%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서울의 달」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서울의 달동네를 배경으로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그려내 큰 인기를 얻었던 이 드라마의 촬영지가 바로 옥수동 달동네였다. 여주인공 채시라가 성실 그 자체인 청년 최민식의 구애를 끝내 거부하고 제비 한석규를 사랑하는 것이 스토리의 핵심 중 하나였는데, 당시로서는 드라마가 선택하기 힘든 구도였던 기억이 난다. 서울의 많은 곳이 그러하듯 옥수동의 달동네도 이제는 대규모 재개발을 통해 거대한 아파트 단지로 변모했다. 그런데 이름만으로 옥수동의 달동네를 떠올리게 하는 밴드가 있으니 바로 옥수사진관이다. 연습실이 옥수동에 있었고 멤버들이 모두 사진을 좋아해서 지었다는 이름부터가 정감 가는 밴드 옥수사진관이 정규 3집 「Dreamography」를 발표했다.
2년 만에 발표하는 정규 3집
옥수사진관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밴드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무명인 것도 아니다. 옥수사진관은 그 동안 여러 드라마 삽입곡을 통해 잔잔한 사랑을 받아왔다. 서영은이 피처링한 <쉬운 얘기>가 화제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삽입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고, <안녕>은 「아홉수 소년」에 녹아 들어 짙은 향기를 남겼다. 이 밖에도 <해질 무렵>이 「천국보다 낯선」에 삽입되었고, 가장 최근에는 이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의 시즌 14 O.S.T에 실렸다. 상대적으로 정규앨범의 숫자는 많지 않은데, [Dreamography]는 옥수사진관의 세 번째 정규앨범이다. 2007년 데뷔앨범을 내고 2014년 2집 [Candid]를 낸 후 2년만의 정규작이다.
앨범에는 앨범 동명 트랙인 를 시작으로 마지막 곡인 까지 총 12곡이 담겼다. 타이틀곡은 앨범의 두 번째 곡이면서 마지막에 리프라이즈 버전으로 한 번 더 수록된 이다. 과한 악기 편성과 편곡을 배제하고 최대한 단출하고 꾸밈없는 사운드로 깔끔하게 뽑아낸 은 누가 듣더라도 ‘이게 타이틀곡이겠구나’ 알 수 있을 만큼 대중적인 어필이 돋보이는 곡이다. 이어지는 <두근두근>과 <수퍼맨 아저씨>는 같은 정서적 맥락 속에서 앨범의 일관성을 잡아주고 있으며, <남겨진>은 그 동안 옥수사진관이 발라드에서 보여준 강점을 다시 한 번 재현하고 있다. 이밖에 이웃 남자의 고민 상담을 하다 자신의 첫사랑과 조우하게 된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은 <이웃집 강씨>처럼 유머러스한 곡이 있는가 하면, <달려간다>에는 곡의 중간에 이들의 예전 히트곡 <하늘>이 깜짝 선물처럼 삽입되었다. <숲으로의 여행>은 여성 듀오 옥상달빛의 목소리를 만나는 반가움이 있는 곡인데, 앨범 전체적으로는 옥상달빛을 비롯해 을 포함 3곡의 녹음에 참여한 건반 연주자 고경천과 이채언 루트의 강이채, 해금 주자 최민지와 바버렛츠의 안신애 등 여러 개성 넘치는 뮤지션들이 참여해 힘을 보탰다. 전체적으로 평이하고 무난한 흐름을 가진 앨범이지만 바이올린을 앞세운 현악 스트링이 몽환적인 느낌을 만드는 <몽중몽>과 해금 연주가 등장하는 <달의 노래>처럼 약간은 실험적인 시도를 가미한 곡도 있다. 마지막으로 옥수사진관의 음악에서는 종종 80년대의 전설적인 듀오 어떤날의 영향이 감지되기도 하는데 이 앨범에서도 <몽중몽>의 베이스기타 소리가 그렇고, <12월>을 들으면 1986년에 나온 어떤날의 1집 수록곡 <비오는 날이면>이 절로 떠오른다.
변하지 않는 것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앨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 가고, 오래된 것들을 좀처럼 그대로 남겨두지 않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변해서 사라져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데, 옥수사진관의 노래는 바로 그 순간에 떠올리고 곁에 두기에 제격이다. 반복해서 들으며 곱씹을수록 정이 가는 앨범이다. 옥수사진관이 지닌 최대의 미덕은 그들이 언제나 그 자리에서 꼭 그만큼의 음악을 들려준다는 항상성이다. 그들은 오랜 시간 그 믿음을 지켜왔으며 이번 정규 3집 「Dreamography」에서도 노선을 바꾸지 않고 기꺼이 같은 길을 택했다. 행여 그들의 음악이 정체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냐는 식의 오해는 하지 말기를 바란다. 나는 오히려 그래서 반갑고 감사하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이 앨범을 듣게 될 많은 이들이 이러한 내 생각에 동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보증수표’라는 말이 꼭 엄청난 성공이 수반될 때에만 쓸 수 있는 표현은 아닐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옥수사진관의 음악이야말로 보증수표 같은 것이라고 쓰고 싶다. 지금도 옥수동에 가면 낡은 사진관이 있고, 그 곳에 들어가면 옥수사진관의 노래가 흐르고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