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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렬 - 우리가 서 있다

 

대구 로컬 펑크씬의 큰형님 극렬(前.극렬파괴기구)의 재조명!
일상과 내면,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다룬 펑크록!
무심한 듯 뜨겁게 내뱉는 멜로디와 뭉클하게 와 닿는 가사가 매력적인 극렬!

<이 밴드는 영원했으면 좋겠다>  - 크라잉넛의 김 인 수 앨범평

대한민국 인디음악도 20년을 넘었고 그동안 수많은 밴드들이 생겼고, 없어졌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밴드들이 활동하고 있다. 인디라는 말은 독립적인 제작과 자본으로 형성되는 씬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인디’는 주류 혹은 중심에서 벗어난 활동이 가능하고, 실제로 그렇게 지속되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의 문화와 경제의 중심은 서울이고 어느 정도 자본의 궤도에 올라오려면 공간적으로 서울이란 공간에, 특히 인디씬은 홍대라는 공간에 머물러야겠지만 태어난 지역이나 생활하는 지역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로컬씬 또한 인디문화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라 하겠다.
인디는 그 시작부터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많은 밴드들이 있었다. 서울로 상경하여 활동하는 밴드들도 많지만 아직도 자신의 지역에서 꿋꿋이 활동하는 밴드들이 있다. 대전의 버닝햅번, 광주의 베티애스, 부산의 언체인드, 스톤드 같은 밴드들이 그렇다. 이들은 서울에서 살지는 않지만 인기는 전국구 급이다. 서울에서 공연할 때도 언제나 팬들이 함께한다.

대구는 덥다. 뜨겁다. 여름마다 뉴스에 오르내린다. 치맥페스티벌이 있고 폭염페스티벌이 있다. 심지어 대구를 대표하는 밴드의 이름은 아프리카다. 그만큼 피가 뜨거운 이 도시에는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클럽 중 하나인 헤비가 있다. 물론 서울에 더 오래된 클럽이 있지만 헤비는 지역 씬의 희망이라 할 수 있어 그 의미가 각별하다. 올해 20주년을 맞이한 헤비에서 2CD의 컴필레이션 앨범이 나왔고 지금부터 소개를 하고자 하는 밴드는 헤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름도 무시무시한 '극렬'이다.

2006년 결성한 극렬은 도중에 휴식기를 갖기는 했지만 10년간 거의 한결같이 달려온 밴드다. 이번 EP는 전방위독립문화예술단체 인디053에서 제작하였으며 녹음은 대전의 락웨일컴퍼니에서 버닝햅번의 송원석 한상우가 녹음하고 스윗게릴라즈/그래비티의 한상주 프로듀서가 믹싱을 담당했다.

극렬, 원래의 이름은 극렬파괴기구 인데 그 이름만큼 무시무시하다기 보단 꽤나 정직한 멜로딕 펑크 사운드를 보여준다. 전작들에 비교해 봤을 때 이번 EP는 음악적으로 크게 변화를 보여 준다고 하기 보단 10년간 밴드 생활을 돌아보고 이전 작품들을 정리하는 느낌이 강하다. 제작노트에서 언급된 재조명이란 단어가 이 앨범의 성격을 규정지어준다 말할 수 있다.

앨범은 ‘그대의 등 뒤에 우리가 서있다.’ 라는 코러스 라인의 ‘우리가 서 있다’로 시작한다. 음악 외의 다른 직업을 갖는 다는 것이 음악을 함에 있어 꼭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없겠지만 ‘극렬’의 경우는 조금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생활인이자 노동자로 인식하는 그들의 삶이 음악에 잘 묻어난다. 이런 경우는 진솔함이 가장 큰 무기로 작용한다. 생활의 전선에서 너와 함께 있음을 음반의 시작부터 듣는 청자들에게 선언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정과 신의가 주는 힘이다. 노래의 멜로디 라인도 펑크 특유의 경쾌함과 메시지가 주는 진중함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주고 있다. 이런 능력은 배워서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활에서 그리고 마음속의 외침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번 앨범의 키워드라고 말할 수 있는 단어는 재조명인데 이를 확인시켜주는 트랙은 아무래도 2,4번 ‘광야에서’와 ‘소가 되어’라 말할 수 있다. 2014년 정식발매로 되지 않아 하마터면 놓칠 뻔 했던 그들의 EP 앨범 ‘Restart'에 실린 두 곡을 이번 EP에서 리메이크 하고 있다 ‘광야에서’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곡인데 주변에서 민중가요를 펑크로 편곡해서 부르는 경우는 잘 보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비슷한 성격의 음악인데 이상하게도 서로 어울리지 못했다. 항상 그 점이 의문이자 불만이었는데 극렬은 내 궁금증을 비웃기라도 하듯 시원하게 불러주고 있다. 진부해 보일지 모르지만 신선하다. 사실 이들만큼 어울리게 부를 수 있는 밴드들도 없잖아! 이 조합은 옳다고!

‘소가 되어’는 이번 EP의 타이틀곡이고 뮤직비디오도 나왔다. 사실 뮤직비디오 촬영 당시 대구에 있었지만 술 마시는데 정신 팔려서 참여 못한 점 아쉽고도 미안하다. 이 곡은 (물론 곡이 처음 나왔던 그때에도 그랬겠지만) 언제나 끊임없이 일해야만 하는 우리의 삶과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소처럼 일하는 우리의 상황은 달라지지도 나아지지도 않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래도 이런 처절한 상황을 내 자신이 소라는 상황에 대입시켰다는 점엔 이상하게도 웃음이 나온다. 우직하지만 왠지 귀엽기도 한 소의 이미지 때문일까, 대구의 인디씬을 10년 동안 꿋꿋하게 지켜왔다는 것으로 이들에게서 그런 우직한 소의 이미지가 보였기 때문일까.

두 가지 축이 있다. 이 음반이 갖고 있는 두 가지 축은 현장과 내면이다. ‘우리가 서 있다.’
‘광야에서’ ‘소가 되어’가 현장이라면 지금 소개할 3,5번 트랙은 이들의 내면이고 자신이고 그리고 10년 지기 친구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길을 걷다.’ ‘좋은 사람’은 자조적으로까지 들릴 정도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모습을 보여준다. 길고도 짧은 시간 동안 외롭고도 힘든 길을 걸어왔고 언제든 그만 두고 싶었다. 그러나 주변의 친구들과 동료들. 서로 좋은 사람이고 싶고 상처 주고 싶지 않지만 세상을 그렇게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우리에게 거창한 사명이 있을까. 우리에게 이상과 행복, 그런 게 있을까. 사실 다 X까라고 해라. 그냥 소처럼 일하고 친구들과 함께 마시는 소주한잔. 언제나 가는 길을 걸을 뿐이다. 그냥 조금만 더 나아지길 바랄 뿐이다. 그냥 조금만...
마지막 트랙 ‘좋은 사람’의 건반 인트로를 들으며 짧다면 짧은 이들의 10년을 내 나름대로 돌아본다. 공연 한번 같이 해보지 않은 자격으로 이들의 음악이 어떻고 앞으로 어땠으면 좋겠다 라고 말한다는 것이 우습다. 이들의 음악만큼 솔직하게 음반을 대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공연을 보고 함께하고 끝나고 소주한잔 기울일 수 있겠지. 이것이 이런 음반을 들을 때 얻을 수 있는 행복함이다. 단순히 노래가 좋네, 연주가 훌륭하네, 이런 감상이 아닌 함께하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그런 것....
이 밴드는 영원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