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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이상순 베란다 프로젝트 (Verandah Project) - Day Off [재발매]

기타리스트 이상순과 싱어송라이터 김동률의 프로젝트 ‘베란다’의 첫 앨범 ‘day off’


2008년 가을. 김동률, 네덜란드로 향하다.

2008년 가을. 김동률은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여행의 행선지는 네덜란드 암스텔담. 그가 찾아간 ‘친구’는 바로 네덜란드에서 유학중인 롤러코스터의 기타리스트 이상순이었다.

스산해지는 가을, 그가 네덜란드로 향한 이유는 한국을 벗어나 오랜 친구의 집에서 머리를 비우고 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잔뜩 흐린 암스텔담의 가을 날씨에 질릴대로 질렸던 탓일까. 구체적인 욕심이나 계획 없이 ‘방구석에서’ 함께 곡을 쓰기 시작했고 본인의 표현대로라면 기타로는 ‘C 코드도 못잡는’ 김동률은 이상순의 기타에 맞춰 ‘같이’ 곡을 쓰고, 이상순은 김동률의 건반에 맞춰 ‘같이’ 노래를 해보기로 했다. 각각 만든 노래를 나눠서 부르기도 하고, 또 어떤 부분은 화음을 맞추기도 했다. 때론 김동률의 곡이 이상순의 손가락 끝에서 나오기도 하고, 이상순의 곡이 김동률의 목소리가 되기도 했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곡을 쓰고 또 썼다. 그리고 2009년 여름. 다시 암스텔담에서 만나 한 달여를 보낸 후 한국으로 돌아오는 김동률의 mp3플레이어엔 그렇게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곡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이제 가사를 붙이고 같이 편곡을 하고 녹음을 하는 일만이 남았다. 2009년 여름이 지나갈 무렵이었다.


2009년 여름. 이상순, 서울로 향하다.

홀연히 네덜란드로의 유학을 감행한지 2년 여의 시간이 지나던 어느 가을, 이상순은 오랜 친구 김동률에게서부터 연락을 받는다. 네덜란드로 놀러가고 싶다는 그의 짤막한 메시지.

방도 치우고, 정리도 좀 하고, 이불도 빨고, 이상순은 한국에서 올 김동률을 기다린다. 롤러코스터 활동을 잠시 쉬고 감행한 유학 기간 동안 바쁜 한국에서의 일상에서 벗어나 오롯이 홀로 기타 연주와 공부에만 열중할 수 있었던 시기이긴 했지만, 그만큼 무료하기도, 외롭기도 한 시간이었다. 그러던 차, 김동률이 한국에서 날아왔다. 같이 머무는 기간 동안 그는 김동률의 멜로디를 기타로 재현해보기도 하고 송라이터로서 지은 곡을 김동률의 목소리에 버무려보기도 했다. 그 위에 코러스를 얹어보기도, 소절을 나누어 같이 노래를 해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목표가 보였다.

2009년 여름. 다시 찾아온 김동률과 한 달 여의 작업에 매달린 끝에, 이상순의 작업용 컴퓨터 안엔 그렇게 두 사람이 만들어 낸 곡들이 가득 남아있었다. 이윽고 이상순은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한국행을 결심한다. 소중한 ‘날 것’들이 가득 담긴 하드디스크를 들고. 프로젝트 ‘베란다’의 첫 앨범 ‘day off’를 만들기 위해 서울로 향했다.


친구가 있어 우리의 삶은 노래가 된다.

그렇게 탄생한 김동률과 이상순의 프로젝트 ‘베란다’의 앨범 ‘day off’가 드디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이 앨범엔 10 곡의 노래가 빼곡히 자리잡고 있다. 친구의 연애, 나의 바람, 누구나 한 번쯤 단꿈에 빠져 꾸었을 법한 백일몽에 대한 얘기, 동네 화원을 지나치다 한 눈에 반해버린 여인에 대한 고백(도 사실 제대로 못하는 맥없는 청춘), 불안함, 두려움, 여행의 체험 등 두 사람의 소소한 삶의 이야기들이 노래가 되고 음악이 되어 우리 앞에 펼쳐진다. 같이 모여 ‘그래, 우리 이렇게 같이 모여 음악을 하게 되었구나’ 하며 어깨동무를 한 채 맥주 한 잔을 들이키는 두 내로라하는 음악가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앨범. 바로 ‘day off’이다.

이 앨범엔 그들의 또 다른 ‘친구들’이 함께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영원한 ‘천재 소년’ 정재일의 편곡은 늘 그렇듯 이 앨범에서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떠오르는 최고의 프로듀싱 유닛, 페퍼톤스(peppertones)의 신재평이 ‘Goodbye’의 가사를 도왔고, 또래 친구이자 동료인 루시드폴이 ‘꽃 파는 처녀’의 스토리 보드를 맡았다. 그리고 하림의 아코디언 소리가 여백을 채우며 노래 속에 녹아든다. 이 뿐만이 아니다. 그들의 오랜 동료인 롤러코스터의 프론트우먼 조원선의 목소리는 자칫 단조로워질 수 있는 두 남자의 목소리 가운데서 윤기를 더해준다. 이처럼, 이 프로젝트를 위해 그들의 또 다른 많은 지기들이 연주로, 가사로, 그리고 노래로 그들의 음악을 축복해준다. 두 사람의 음악인생을 든든하게 응원해주듯이.


앨범 ‘day off’, 두 남자의 일상을 뛰쳐나온 아름다운 노래들

김동률, 그리고 이상순. 이 두 뮤지션의 행보는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1993년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가요계에 화려하게 데뷔한 김동률은 이적과의 프로젝트 ‘카니발’이후 줄곧 혼자 모든 음악작업을 다 해내야 했다. 그는 물론 많은 인기와 음악적 성취를 이룬 프로듀서/싱어송라이터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역설적이지만- 그는 늘 음악적인 외로움과 함께 살아야 했다. 혼자 곡을 쓰고, 혼자 편곡을 하고, 혼자 노래를 해야 하는 것은 물론, 모든 평가마저 오롯이 ‘혼자’의 몫이었으니까.

한 팀의 기타리스트로서가 아닌, 싱어송라이터가 되기 위해 먼 이국 땅에서 ‘홀로’ 담금질을 하고 있던 이상순 역시 파트너쉽에 대한 갈망을 느끼기엔 마찬가지였다. 10여 년 가까이 그룹 롤러코스터에서 동료들과 다같이 모여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잠시 ‘혼자’가 되어 또 다른 송라이터로서의 꿈을 키우고 있으니까.

그렇게 3 년여의 준비를 마치고 그들의 일상을 뛰쳐나온 프로젝트 ‘베란다’는 어쩌면 그런 두 사람의 공통된 음악적 외로움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10 곡의 노래들은 한 곡도 빠짐없이 우리의 하루 하루를 천천히 하나씩 되짚어 주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반복되는 하루하루의 무료함을 노래하거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노래할 때에도, 그들의 노래엔 어김없이 팽팽하게 나를 믿고 서로를 지지하는 자신감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베란다’의 음악은 아름답다. 쓸쓸하더라도 청승맞지 않다. 힘이 있다. 혼자임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에 익숙치 않은 30대의 두 남자가 펼쳐놓는 이야기가 있는 그대로 담긴 이 앨범은 솔직하고 담담함에도 불구하고 베테랑 뮤지션다운 날카로운 음악적 날은 곳곳에서 우리들의 귀를 잡아 끈다. 단지 요란하거나 과장되지 않은 부드러운 모습일 뿐이지만. 그들의 첫 앨범 ‘day off’를 만나게 된 올 봄 그리고 곧 찾아올 여름은, 그래서 그리 무덥지만은 않을 것 같다. 무더운 태양만이 아닌 시원한 바람이 부는 이 계절, 이들의 음악이 이렇게 우리를 찾아와주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