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월 - 수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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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불안한 경험들의 기록, 김사월 1집 <수잔>
김사월은 포크 음악의 전통을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내 2015년 한국대중음악상 2개 부문(신인상, 최우수 포크 음반상)을 수상한 듀오 '김사월X김해원'의 멤버이다. 그녀의 솔로앨범이자 첫 정규앨범인 <수잔>은 그녀 개인이 삶에서 맞서온 시간을 수잔이라는 하나의 인물로 형상화하는 작업으로 기획되었다. 앨범에는 수잔이 겪어온 이야기들의 시작을 알리는 ‘수잔’ 을 시작으로 <먼데이서울:퍼스트임팩트>에 수록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접속’, 부드러우면서도 어둡고 깊은 보컬이 인상적인 ‘악취’와 앨범을 닫는 타이틀곡 ‘머리맡’ 등 총 11곡으로 수록되어 있다. 전곡을 김사월이 작사, 작곡한 앨범 <수잔>은 그녀의 지난 시간들을 관통하는 기록이다.
김사월과 함께 앨범을 공동 프로듀싱한 김해원은 ‘김사월X김해원’의 멤버이자 독립영화 흥행기록을 경신한 <소셜포비아>의 음악감독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이다. 김해원의 공동 프로듀싱의 주안점은 '김사월'이라는 음악가의 독창적이고 완성도 있는 사운드를 형성하는데 집중되어 있다. 또한 실내악 구성을 기반으로 탱고, 월드뮤직, 재즈 등을 연주하는 ‘살롱 드 오수경’의 바이올리니스트 장수현과 첼리스트 지박이 세션으로 참여하여 탄탄한 현악편성에 함께 했고, ‘노선택과 소울소스’의 베이시스트 노선택, ‘필로멜라’의 플룻 연주자 이기현, ’김오키 동양청년’의 색소폰 연주자 김오키 등 한국 인디씬 최정상 음악가들이 함께해 앨범의 풍성함과 날카로움을 더했다.
앨범의 사운드는 싱어송라이터가 가장 돋보일 수 있는 목소리와 클래식기타, 포크 기타 연주에 촛점을 맞추어 김사월의 개성적인 목소리의 색채가 더 폭넓게 표현될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감을 표현하는데 방점을 두었다. 특별히 언급이 필요할 정도로 과감하고 세련된 현악편성, 사이키델릭한 톤의 일렉기타의 플레이 사이로 흘러나오는 <수잔>의 스토리텔링에서 우리는 포크 음악의 가장 현대적인 접근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라이너 노트 – 김학선(대중음악평론가)
많은 일들이 있었다. 김사월X김해원이 [비밀]이란 음반을 발표하고 난 뒤. 낯설게 들렸던 김사월과 김해원이란 이름은 금세 많은 이들에게 회자됐고, [비밀]은 2014년의 가장 중요한 음반 가운데 한 장으로 이야기됐다. 올해 초 열린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비밀]은 신설된 '최우수 포크' 음반 상의 첫 주인공이 됐고, 김사월과 김해원은 현재뿐 아니라 앞으로의 기대까지도 염두에 두고 상을 주는 '올해의 신인' 자리에 올랐다. 말하자면 그동안의 성취 뿐 아니라 미래까지도 기대할 수 있는 걸출한 신인이 탄생한 것이다. 레코드페어 행사에선 [비밀]이 8장의 바이닐 한정반으로 선정돼 발매되는 영광도 누렸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김사월X김해원의 공연을 찾았고, 점점 더 많은 음악가들이 이들의 음악에 호감을 표하며 함께 무대에 서기를 제안하기도 했다. 두 멤버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알았다면 초판 300장만을 찍고 이걸 다 팔 수 있을까 생각하진 않았을 테니까. 1년여가 지난 지금, 김사월X김해원이란 이름의 무게는 무척이나 달라져 있었다.
'수잔'이란 익숙한 듯 낯선 여자아이의 이름이 들려왔다. 김사월이 발표하는 첫 앨범의 제목이었고, 앨범 안에서 김사월의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했다. 김사월의 개인 앨범이기도 하지만 김사월X김해원이 함께한 다음 행보이기도 하다. 김해원은 김사월의 뒤에서 공동 프로듀서로 전체적인 진행과 편곡을 함께해나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건 김해원이 처음 김사월의 목소리를 듣고 바랐던 작업이었다. 처음 김사월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김사월의 음악과 목소리를 갖고 자신이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것을 상상했던 것이 둘이 처음 함께할 수 있던 시발점이었다. 김사월X김해원으로 활동하기 이전부터 이미 김사월은 많은 노래를 써놓았고, 김해원은 그 노래들에 어울리는 편곡과 무드를 찾았다.
가장 공을 들인 건 물론 김사월의 목소리였다. [비밀]에서 그랬던 것처럼 김사월의 목소리는 [수잔] 역시도 특별하게 만들었다. 김해원은 처음 김사월의 목소리를 듣고 "밝음 가운데 어두움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처음 그의 목소리를 듣고 비밀을 아는 소녀와 관능적인 여인의 목소리를 함께 느꼈다. 그의 목소리에는 해맑음과 어두움, 순진함과 농염함, 신비로움이 공존하고 있었다. [수잔]은 그 목소리가 가진 매력을 고스란히 담아내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첫 곡 '수잔'에서 "수잔, 소녀 같은 건, 소년스러운 건, 어울리지 않아"라고 나지막이 노래할 때, 김사월이 갖고 있는 목소리의 모든 매력이 함께 들리는 마법 같은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마법은 마지막 곡 '머리맡'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지속된다.
목소리를 돋보이게 하고 앨범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게, 그리고 이 노래들이 오랜 시간 동안 아름답게 들릴 수 있게 둘은 공동 프로듀서로 함께 고민했다. 사운드를 만드는데 있어서는 처음 노래가 만들어졌을 때의 '처음'에 집중했다. 처음 어떻게 노래가 만들어졌고, 어떤 악기로 곡을 썼고, 어떤 정서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집중하고 그것을 기본으로 살을 붙여 나갔다. 김해원은 단출한 악기 구성과 편곡으로도 최대한의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해내는데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는 프로듀서이고, [수잔]에서도 그 재능은 여실히 빛을 발한다. '수잔'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그 안에서 우울하게도, 신비롭게도, 처연하게도 들린다. [비밀]과는 다르게 현악기가 많이 쓰이고, 플루트나 색소폰 같은 악기들까지도 포함됐다. 이 색다를 수 있는 악기들은 아무런 이질감 없이 앨범 안에 한데 녹아들어있다. 한 곡씩 집중해 들을 땐 새로움을 찾아 듣는 즐거움이 있고, 앨범 전체로 들을 때는 하나의 작품으로 유려하게 흘러간다. 지금까지 우리가 들어온 훌륭한 '앨범'들이 그랬던 것처럼 [수잔] 역시도 '앨범'만이 담아낼 수 있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김사월은 앨범 안의 모든 노래들을 직접 만들었다. 오랜 시간 써온 곡들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현대의 서울에서 20대의 여성으로 살아갔던 날들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제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존재는 흔한 것이 돼버렸지만, 이처럼 앨범의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의 일관된 주제를 갖고 풀어가는 싱어-송라이터는 드물고 귀하다. 그가 20대 초반에 경험했던 아름답고 불안한 경험들을 포함한 모든 감정들이 수잔이라는 화자를 통해 흘러나온다. 수잔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김사월이 만든 곡과 하나가 돼 각 이야기마다 다른 분위기와 정서를 만들어낸다. 단순히 정서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 그 자체로서의 매혹이 함께한다. 이를테면 개인적으로 들을 때마다 따라 흥얼거리곤 하던 '존' 같은 노래는 노랫말을 모르고 들어도 자연스레 전해지는 안타까움과 한 번 들어도 잊기 어려운 빼어난 멜로디가 더해진 정말 좋은 노래다. 이제 김사월은 곡과 보컬의 음색만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분위기를 만들 줄 아는 아티스트가 된 것이다. 사운드를 만드는데 있어서 '처음'에 집중하려 했던 것도 김사월이 쓴 이런 좋은 곡들이 기본적으로 가장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글을 읽으며 짐작했겠지만 [수잔]은 '수잔'이 겪은 일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콘셉트 앨범이다. 수잔은 김사월의 페르소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김사월은 해석은 듣는 이의 몫이라며 노래를 들은 이들이 각기 다른 상황을 상상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했다. 지난 일주일간 [수잔]을 반복해서 들었다. 듣고 또 듣고를 반복하다 보니 김사월의 수잔이 아닌 나의 수잔이 새롭게 생겨났다. 김사월이 생각했던 수잔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수잔의 이야기일 수 있을 것이다. 앨범이 발표되고 나면 또 수많은 자신만의 수잔이 새롭게 생겨날 것이다. 듣는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수잔의 모습이 달라질 수도 있다. 지금 한밤에 듣는 수잔의 이야기는 또 다르게 들린다. 하지만, 그 수많은 각자의 '수잔' 모두가 아름답고 신비로운 것만은 분명하다. 이 앨범 [수잔]이 그런 것처럼. - 김학선(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