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 (Sai) - 화전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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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펑크포크의 창시자 사이가 새 앨범 <화전민의 노래>를 들고 왔다.
2007년 12월 생태근본주의자로 자급자족을 꿈꾸며 산속에 살던 그는 시골집에서 1집 <아방가르드를> 혼자 만들어냈고,
4년 뒤 2011년에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주최하는 “거리의 악사 페스티벌”에 참가해 우승, (써니, 추격자, 타짜 등의) 영화음악 작곡자인 김준석 음악감독과 영화제가 공동 제작한 2집 <유기농펑크포크>를 발매했다. 그로부터 다시 4년이 지난 지금 그가 들고나온 음악은 뜬금없이 <화전민의 노래>다.
이 앨범은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비를 모금했는데, 사이는 펀딩사이트의 도움 없이, 혼자서, 달랑 페이스북으로만 알려서 펀딩을 진행해 천만 원이 넘는 돈을 모으는 기적을 일으켰다. 그 돈으로 좋은 녹음실에서 훌륭한 연주자들과 함께 녹음했는데, 그 면면은 이렇다.
1. 앨범 프로듀싱과 편곡: 한국 재즈씬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레이블 ‘일일사운드’를 만든 베이시스트 김성배. 그는 김성배 퀸텟과 퓨전국악밴드 세움, 아방트리오등 장르와 국경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연주와 프로듀싱에 경험 많은 사람이다.
2. 참여한 음악가들: 한국 재즈계에 대표적인 보컬리스트 가운데 한 사람인 말로가 ‘물안개따라’라는 곡을 함께 불렀다. 말로는 사이의 1집과 2집을 모두 ‘구매’해서 가지고 있으며, 늘 사이의 팬이라고 말하고 다녀서 사이를 불편하게 한다.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마초와 로맨스를 섞은 기묘한 스타일로 청중을 사로잡은 김일두는 ‘태평양을 등지고’라는 노래를 같이 불렀다. 사이와 김일두는 아주 오래전부터 가족처럼 (다투기도 하면서)지내던 사이다.
연주력으로 정평이 나 있는 퓨전재즈밴드 ‘더 버드’의 멤버들(베이스에 김정렬, 기타에 김준오, 드럼에 조규원)이 전체 세션을 맡았고, 그 밖에도 고경천이 건반을, 동양청년 김오키가 색소폰을, ‘컨트리공방’의 장현호가 벤조를, 그리고 ‘하찌와 애리’출신의 애리와 보이스코리아 출신의 우혜미, 싱어송라이터 도마와 크라잉넛의 이상면 등이 코러스로 참여했다.
3. 녹음은 가수 최백호 씨가 대표로 있는 ’뮤지스땅스’에서 했다. 엔지니어는 뮤지스땅스의 하우스 엔지니어이자 하나음악의 전속 엔지니어인 이소림 씨다. 믹싱과 마스터링은 ‘3호선 버터플라이’의 베이시스트이자 프로듀서인 김남윤이 했다.
이 앨범은 이전의 사이와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사이는 “골치 아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조금 더 자세하고 세밀하게 묘사한 친절한 앨범”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가사는 여전히 시적이고, 전체적인 편곡은 ‘단순함’이라는 단어 속에 있으면서도 꽤 멀리 나간다. 그리고 그는 이제 유기농펑크포크를 버렸다. 사이는 그 까닭을 “울타리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을 배신하기 위해서, 그래서 결국에는 나 자신을 배신하기 위해서” 라고 말했다고 한다.
<리뷰>
'사이의 입'에 바치는 뒤늦은 헌사
<화전민의 노래>에 붙여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이름을 붙이지 못한 일련의 싱어송라이터들이 있다. 그들은 각기 의미 있는 호응을 얻었고, 조그마한 문화를 만들었으며, 자칭, 타칭 여러 이름으로 불리웠다. 블루스, 포크, 그리고 여기 사이처럼 유기농펑크포크라는 이름으로.
문제는 그런 이름들이 친숙한 안내자 역할은 해주었지만 고유의 장점과 성과를 포착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아쉬운 대로 어수룩한 단어들을 쓰다 보니 표적의 가장자리만 잔뜩 맞춘 느낌이랄까?
이름 같은 게 뭐 중요하냐고 할 지 모르겠지만 이름은 뭔가를 보게 하고, 뭔가를 보지 않게 한다. 또 뭔가를 기억나게 하고, 기억나지 않게 한다. 예를 들어 사이의 음악을 지칭했던 많은 이름들은 그가 사는 곳, 행보, 사회적 태도, 그가 다룬 소재, 사용하는 악기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물론 그게 뭐 문제는 아니지만, 예를 들어 1, 2, 3집의 소개가 모두 '몇 년 전 귀농한 음악가가 있었는데……'로 시작되지 않도록 고심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 이름들의 중심에서 적절한 이름으로 포착되지 않고 항상 빠져있던 것, 그것은 실질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유독 사이의 음악으로 이끌었던 숨은 공로자, 바로 사이의 '입'이다. 이빨과 혀가 있는 입 말고, 바로 그가 의자에 앉아 우크렐레를 가슴께로 끌어안고 '에헴'하면 완성되는 커다란 입 말이다. 그건 사이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던 입이기도 하지만, 그가 음악을 통해 뭔가를 전달하기 좋게 다시 창조해낸 제 2의 입이다.
난 싱어송라이터 음악은 그 입이 하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즉, 싱어송라이터 음악은 사운드로 듣는 음악이기도 하지만, 그 커다란 입이 어디를 돌아다니고 어디에 칩거해 있었으며, 무엇을 보았고, 어떻게 소화해 말할 건지 기대하고 귀 기울이는 음악이라 생각한다. 거기에 그 입과 그 주인을 혼동해서 생겨나는 매력(혹은 혼란)까지 더해진다. 그러나 이런 특징 때문에 싱어송라이터 음악에 대한 평가는 항상 너무 감상적이거나 에피소드에 치우치거나 뒤늦은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이 음악이, 음악을 요소별로 나누어 판단하고 재조립하기에 너무 '클린'하지 않은 대상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전체가 좋아도 각 요소는 평범할 때도 많고, 주류시장에서의 가능성을 따져보려 해도 정작 음악은 관심이 없어 보이며, 음악만 보려 해도 항상 사람이 딸려오는 음악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건 이런 종류의 음악이 매우 유기체적인 음악이기에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너는 피부 좋은 게 장점이니 다음 앨범부터 뼈는 빼고 오라고 말하기 힘든 음악인 것이다.
그렇다 해도 난 사이가 다듬어낸 이 유기체로서의 입이 진작 더 충분한 평가를 더 받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 입은 동시대의 다채로움을 표현하기에 충분히 왁자지껄했으며, 속 시원히 막 얘기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익살스러웠다. 덕분에 이전까지 노래에서 잘 표현되지 않았던 것들이 그의 입을 통해 노래 안으로 흘러들어왔고(마치 물꼬를 트듯), 잘 조합되지 않던 것들이 노래 안에서 연결되었다. 나로 하여금 '솔직히 존 레넌도 욜 라 텡고도 좋아하는데, 뭐 문제가 있나?' 라는 생각과 함께 '그런데 그게 냉동만두랑 뭔 상관이지?' 라는 생각을 동시에 하게 만든 다채로운 어법들이 그의 노래에는 존재했다. 게다가 그 입은 변화무쌍해 넓은 벌판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책 한 권 들고 마루에 배를 깔고 있는 한량의 풍경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때로는 자기 모순적일 수 있는 아슬아슬함이나 투박함도 있었지만 난 그런 것들이 좋았다. 공연장에서 앞뒤 팀으로 멍하니 앉아 보고 있으면 내 노래를 돌아보게 했다. 또,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 노래는 더욱 정제되기보다 더 왁자지껄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의 음악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사이의 <화전민의 노래>를 듣는다. 이번 음반에는 여전히 '와르르르'하는 신나고 직관적인 곡들도 있지만, 뿌옇고 불확실한 앞을 응시하는 무척 개인적이고 사색적인 곡들도 있다. 또 왠지 그 후자에 이번 음반의 무게 중심이 가 있는 느낌이다. 사이의 입은 이전에도 진지하고 서정적인 것을 섞어서 얘기해 왔지만, 이번에는 그 입의 주인이 정말 뭔가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느낌이다.
이건 내가 왔다 갔다 하며 사이를 자주 보았고, 1, 2집의 기억에 뒤이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블라인드 테스트라도 하면 뭔가 더 객관적인 걸 건질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건진 장점들이 대체 우리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는 걸까. 다른 음반에도 수두룩한 장점들. 내가 오히려 이 음반에서 주목하고 싶은 건 이 음반과 떼어낼 수 없는 것 - 즉, 내 동시대의 입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으며, 무엇을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무엇을 새로 말하려고 하는가이다.
사이의 이번 3집은 우리가 그에게 기대하기 쉬운 것(예를 들어 좀 더 강력한 유기농?)이 아닌 어떤 용기있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 행보는 적어도 맥이 풀리거나 헛다리짚은 행보가 아니다. 이 노래들을 들으며 청자들은 뻔한 생각을 강화하기 보다는 좀 더 새로운 생각을 해볼 것이며, 기대했던 것과 이건 뭐지 싶은 것들을 조합해보게 될 것이다. '화전민의 노래'라는 제목부터가 그렇다. 난 그가 몽땅 태우고 그 영양분에다 뭘 키우겠다는 건지, 정처 없이 다니며 불을 질러 음악을 하겠다는 건지, 우리 사는 게 솔직히 화전민이 아니겠냐는 건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 다층적인 화두야말로 건강하고, 여전하며, 왕성한 입만이 던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피곤한 시대에 지치지 않고 그런 화두를 던져주고 있는 사이와 그의 입에게 뒤늦은 감사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음반이란 것은 그 입 하나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난 이 음반의 제작진이 균형을 잘 잡은 연주와 녹음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거의 대부분이 훨씬 화려하게 연주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랬더라면 이 앨범의 핵심(입)은 죽었거나 앨범 한 귀퉁이에 어색하게 떠 있었을 것이다(한창 녹음 중이었을 때 가끔 사이도 걱정했듯이). 제작진은 사이의 입이 새로운 고민과 모험을 앞두고 잘 얘기할 수 있도록 편안하면서도 그의 입과 꽤 닮은 연주, 노련한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연주를 해주었다.
김목인(음악가, 싱어송라이터)
<앨범에 대한 짧은 리뷰>
말로(재즈 보컬리스트): 나는 사이의 노래가 참 좋다. 그가 살아가는 모습은 그대로 노래다. 야생으로 뛰어들어 태평양을 등지고 선 그의 포크는 아방가르드인 채 아름답고, 불혹에 블루스를 부르는 그는 악동이며 선비다. 거기엔 어떤 작위도 없고, 슬픈 후회나 자기 연민도 없다. 사이는 삶의 부조리마저 놀이로 만든다. 다만 사람을 깨워 일으키는 엄청난 긍정의 노래. 그러니 나는 그가 참 좋다.
김경주(시인): 사이의 노래는 완전 소중하다. 자신이 살고 싶은 세상을 노래와 시로 조금씩 넓혀가는 가인은 흔하지 않다. 게다가 그에겐 멋진 수염이 있고, 멋진 가락이 있다. 무엇보다 가장 부러운 것은 그가 목젖이 아름다운 사내라는 것이다.
그는 노래할 때 목젖을 최대한 사용하는 귀농유격대 출신이다. 도시에서 고적할 때마다 가끔 나는 그가 시골에서 가꾸는 텃밭과 그의 작은 밥상머리와 그가 쓴 가사와 글들을 떠올려보곤 한다. 그의 삶은 시인 김수영처럼 조용한 혁명가의 기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앨범은 노래하는 화전민이 삶을 개량하는 방식이 이떻게 그대로 시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절절하고 까끌까끌한 시가 된 노래!
김규항(고래가 그랬어 편집장): “각자의 자리에서 파업을 하자. 노래하고 춤을 추고 사랑을 나누자.(총파업지지가)” 사이는 노래한다. 파업은 지배계급과 나의 경제적 차이를 줄이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노래하고 춤을 추고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 먹고 사는 일에 힘이 부쳐 노래할 수도 춤 출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 더 이상 어떤 말이 필요한가. 사이는 혁명을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