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아 - 그리움도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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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기타 한 대와 목소리로 담담하게 이야기하듯 노래를 시작한다. 노래의 말투는 옛사람 같고. 멜로디는 단순하고 빠르지도 않으며. 슬픔과 기쁨이 깊이 녹아나지만 넘치지 않는다. 목소리를 타고 옅은 바람이 불어오는 듯 하고. 이내 우리는 그리운 어딘가로. 애틋함 가득한 어느 순간으로 옮겨가고 있다. 미처 주워 담지 못한 채 지나버린 감정들이 환기되면서 아련함이 뭉실대며 피어 오른다.
정밀아는 대학졸업후 인디밴드에서 잠시 활동 후 오랜 기간 음악씬과 떨어져 있다가 2012년 여름 어느 날 홀연히 홍대로 돌아오면서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클럽공연과 컴필레이션 앨범 참여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고, 20~50대까지 다양한 관객층으로부터 빠르게 입소문을 타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직접 제작한 데모앨범이 상당량 판매되었으며 여러 공연장으로부터 추천음악가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만추에 들고 나온 정밀아의 정규1집 ‘그리움도 병’ 은 신선한 음색과 풍성한 노랫말을 담고 있다. 때로는 기타 한대만으로. 때로는 개구진 목소리로 이별과 그리움. 낭만. 상실. 사랑. 눈물. 기쁨 등을 차근차근 노래한다. 운율이 두드러지는 노랫말들은 낭만적인 서정시를 닮아있고, 예스러운 정서와 현재의 감각이 오묘하게 어우러진 곡들은 넓은 관객층에게 긍정적으로 어필되고 있다. 어쿠스틱 악기 위주의 편곡에, 최대한 자연스러울 것을 지향한 라이브에 가까운 사운드는 풋풋하면서도 청량한 공간감을 전해준다. 앨범 프로듀싱은 물론, 전곡을 직접 작사, 작곡, 편곡, 클래식기타와 어쿠스틱 피아노도 직접 연주하였다. 또한, 직접 디자인한 부클릿은 마치 짧은 이야기가 담긴 사진집 같다. 2007년부터 자신의 미니카메라로 일기 쓰듯 찍어둔 사진들을 한 곡당 한 작품씩 배치하였는데. 미술을 전공한 그녀답게 이 모든 과정을 창작의 연장으로 보는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녀는, 이제는 마냥 어리다 말 못하는 즈음을 살고 있음에. 그래서 가끔 내가 놓치고 외면한 것들에 대한 미칠듯한 그리움을. 그렇기에 찬란한 오늘이 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내일을 노래한다. 조금 초라하고 서글퍼도 괜찮다. 어느 날은 또 멋지고 명랑하며 기쁨이 차올라 웃어 젖힐 것이지 않는가. 이렇게 그녀의 노래는 우리를 다독이고 따스한 공기가 되어 우리를 감싸 안을 것이다. 시나브로 당신의 마음 안에 이 노래들은 스며들 것이고, 어느새 아무렇지 않게 그녀와 함께 입 맞추어 노래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더라도 놀라지는 말라. 그냥 같이 노래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천천히 함께 부를 수 있는 것이 정밀아의 노래들이다.
[곡소개]
01. 우리들의 이별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라며 누군가는 노래했었지. 어른이 된 척 이별 앞에 담담하고 싶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어떤 이별이든, 이별은 너무 힘들다.
02. 그리움도 병
마음에 큰 멍으로 남은 어떤 이에 대한 그리움이 마치 병든 것처럼 아프기만 했다. 차라리 지워버리겠노라 걷고 또 걸으며 다짐해도 그게 어디 뜻대로 쉽게 되는 일인가.
03. 겨울이 온다
늦가을 술을 마시고 낙엽이 잔뜩 떨어진 길을 걷다가 만든 곡이다. 문득 예전 누군가의 진실한 눈빛이 떠올랐고, 내편 아닌 듯 흔들리는 그림자가 참 야속했던 밤이었는데.
04. 다시
이별한 친구를 위로하며 밤새 술잔을 기울이고 돌아오니 헛헛한 마음이 가득했다. 심장을 도려내는 아픈 이별을 하고서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는 사랑을 노래하지. 그래. 다시 사랑. 사랑.
05. 낭만의 밤
팍팍한 도시 생활을 잠시 벗어나 사랑하는 이와 함께 바다에 갔었는데. 그 밤의 바닷가에는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이렇게 좋은 순간이 다시없을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지금이 영원하면 좋겠다 바라고 있더라. 이것이야말로 낭만이지 싶었다.
06. 내 방은 궁전
월세집을 구하러 갔던 일화를 소재로 5분 만에 만든 곡. 3포 세대를 살아가지만. 그래도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살아야 하고. 그러게 살다 보면 또 추억이 쌓이고 낭만이 깃들고. 웃고 있지만 동시에 울고 있는 청춘들의 절규처럼 목청 높여 불렀다. 연주파트는 원테이크로 녹음하였다.
07. 겨울끝
어느 해의 겨울이 참 모질고 시렸다. 내일이면 따뜻한 봄날이 올까 싶어 내일을 믿어보았지만. 끝날 듯 말 듯 한 겨울이 나중엔 너무 지겹고 짜증이 나서 만든 곡. 그러나 곡은 무척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로 완성되었다.
08. 방랑
헤르만 헤세의 책 ‘방랑’을 바탕으로 만든 곡. 아무리 찾아 헤매어도 찬란한 세계가 있지는 않다는 것을 우리는 사실 알고 있다. 생의 불안에 떨 때 나무는 그저 견디라 하지만. 또 미련하게 발길을 옮기고 또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그렇게 삶은 방랑 같다.
09. 바다
가끔 아무런 말도.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고. 그저 눈물만 나는 그런 날이 있단 말이다. 이렇게 무너지는 어느 날이면. 누군가에게 라도 그저 나를 저 넓은 바다로 좀 데려다 달라 조르고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