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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 정규 9집 / Quiet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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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9집 <콰이어트 나이트>(Quiet Night)
서태지라는 장르의 정의
5년 만에 발매되는 서태지의 정규 9집 <콰이어트 나이트>(Quiet Night)는 1년에 걸친 온전한 휴식, 1년에 걸친 앨범 및 곡 구상, 꼬박 2년 반의 치열한 스튜디오 작업을 통해 완성됐다. 서태지는 이번 앨범에 타이틀곡 ‘크리스말로윈’(Christmalo.win)과 선공개곡 ‘소격동’을 포함해 총 9트랙을 담았다. 서태지는 각각의 노래를 선명한 멜로디와 장르를 규정할 수 없는 독특한 스타일의 노래들로 채워 ‘서태지’라는 장르를 다시 한 번 정의한다.
서태지를 ‘90년대 아이콘’으로 정의하는 것은 그에 대한 가장 야박한 평가다. 90년대 우리 대중 음악사를 특징하는
음악적 도전과 실험, 시대를 향한 깨어있는 의식, 두 가지 키워드를 모두 쥐고 있던 서태지는 ‘딴따라’로 치부됐던
대한민국 뮤지션의 위상을 한 차원 끌어올린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서태지에 대한 논의와 평가가
순수하게 음악뿐 아니라 인문학 전반까지 확장 될 수 있던 것은 그가 20년간 활동하면서 보여준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에 기인한다.
치열한 사운드 실험을 통해 전혀 새로운 스타일에 도전하는 ‘서태지’라는 아이덴티티는 이번 9집 앨범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시대를 향한 깨어있는 의식과 날카로운 시선이 담긴 노랫말 역시 변함없다. 서태지는 특히 이번 9집에서 타이틀곡 ‘크리스말로윈’(Christmalo.win)과 수록곡들에 자신만의 동화적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또 우리 시대에 던지는 따뜻한 위로와 용기의 메시지도 잊지 않는다.
<콰이어트 나이트>는 어른과 아이가 함께 들을 수 있는 한 권의 동화책이라는 콘셉트로 구상됐다. 앨범 커버에 등장하는 소녀가 세상을 여행하며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와, 그 소녀에게 들려주고 싶은 서태지의 이야기가 이번 앨범을 관통하는 커다란 주제다. 앨범 전면에 배치된 아날로그 신디사이저 사운드의 몽환적인 분위기는 현실이 고스란히 투영된 판타지 세계를 표현한다.
이번 앨범에서 서태지는 거의 대부분 곡을 기타가 아닌 건반을 사용해 작곡했다. 건반을 통한 곡 작업은 신디사이저 사운드의 전면적인 등장이라는 음악적 변화, 앨범 주제의 표현뿐 아니라 80년대와 90년대를 관통하는 20대 초반 서태지의 감성 흐름을 재현하는 성과를 거둔다.
아이유와 콜라보레이션 선공개곡으로 선택된 ‘소격동’의 짙은 향수와 ‘90s 아이콘’에서 드러나는 내면의 진솔한 투영은 음악적인 완성도를 차치하고, 동시대 가장 빼어난 멜로디를 주조해내던 20대 초반의 서태지를 연상케 하기 충분하다. 복잡한 곡 구성과 현기증이 날 것 같은 비트, 하우스(House)와 그로울(Growl), 트랩(Trap) 등 다양한 장르적 특징을 압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선명한 멜로디 훅이 돋보이는 타이틀곡 ‘크리스말로윈’ 역시 마찬가지다.
‘크리스말로윈’을 비롯해 수록곡 전체에서 일렉트로닉의 장르적 개성과 특징을 리얼 악기로 구현하고자 하는 서태지의 실험은 국내외를 통틀어 비교할 만한 뮤지션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 녹음에 참여한 서태지 밴드의 연주 테크닉도 놀랍지만, 손수 전곡의 믹싱을 맡은 서태지의 사운드 디자인 능력도 절정에 달했다.
서태지는 이번 앨범을 통해 자신의 음악을 스스로 해체함으로써 ‘서태지라는 장르’를 다시 한번 정의한다. 대중의 기호와 취향을 무작정 좇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창작의 희열을 통해 대중들에게 새로운 음악을 제시한다는 것, 이는 서태지라는 장르의 유일한 정의다.
수록곡
Into
서태지의 9집 <콰이어트 나이트>의 서막을 열며 이번 앨범의 주제와 사운드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곡이다. 몽환적인 신스 사운드와 날카로운 건반 소리를 통해 ‘모든 이들을 위한 동화’라는 판타지한 콘셉트를 잘 표현하고 있다.
소격동
서태지가 유년기를 보냈던 실제 장소인 종로구 소격동을 배경으로 하는 노래다.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예쁜 마을에 대한 향수와 상실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담았다. 서태지는 메이저에서 마이너로 화성 전환이나 곡 전체에 사이드 체인(Side Chain) 효과를 주는 등의 구성으로 추억이라는 감정을 단순히 아름다운 것이 아닌 울렁이는 입체적인 감정들의 다발로 표현한다. 서태지는 80년대 감성의 멜로디와 2014년 현재의 다양한 시퀀싱 실험을 통해 두 시대의 소리와 공간을 화학적으로 절묘하게 결합시켰다.
Chirstmalo.win
이번 9집 앨범의 타이틀곡이자 서태지가 그려낸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크리스마스 산타와 할로윈 괴물이라는 선과 악의 스테레오 타입화 된 이미지와 역할을 뒤집어, 세상에 숨겨진 진실을 이야기한다. 산타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달콤한 거짓 약속인 “요람부터 무덤까지” 라는 가사는 현재 우리시대를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기도 하다. 이 곡은 하우스(House) 비트에 트랩(Trap)과 덥스텝 장르에서 주로 사용되는 그로울(Growl) 등 다양한 사운드 실험이 촘촘하게 배치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선명한 멜로디 훅도 놓치지 않는다. 이번 앨범을 통해 서태지가 시도한 ‘일렉트로닉의 리얼 사운드 표현’이라는 실험을 가장 성공적으로 완성한 곡이다.
숲 속의 파이터
이번 앨범 수록곡 중 서태지가 개인적으로 가장 즐겁게 작업한 곡 중에 하나다. 서태지가 미국 서부의 조슈아 숲을 비롯해 북미지역을 여행하면서 얻은 재기발랄한 감상이 고스란히 담긴 곡이다. 여행을 통한 새로운 경험과 아찔한 모험담을 동화적 상상력으로 판타지한 사운드에 담아냈다. 80년대 아날로그 신스 사운드와 드럼패드 등을 아기자기 하고 감각적으로 배치해 들려주는 곡이다.
Prison Break
테크놀로지와 미디어에 스스로를 구속하고 있는 우리들의 세태와 현실을 풍자한 곡이다. 펑키한(Funky) 신스팝 사운드와 하우스 비트를 리얼 악기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 노래다. 또 으르렁거리는 호랑이의 포효를 전면에 배치해 새롭게 시도하는 덥스텝의 재미를 주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이번 앨범 수록곡 중 공연장에서 팬들과 호흡이 가장 기대가 되는 곡이다.
90s Icon
90년대의 가장 상징적인 아이콘인 서태지가 누구에게도 표현한적 없는 내면의 이야기를 쓸쓸하지만 진솔한 톤으로 담은 곡이다. 대중들의 환호와 함께 했지만 세월과 함께 조금씩 잊혀져가는 스타와 대중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누구나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자신이 사랑하던 스타처럼 인생의 주변부로 밀려나는 듯 한 바로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더 소중한 경험과 기억이 있으니 용기를 잃지 말라는 메시지도 담겼다. 이 노래는 맑고 서정적인 건반 소리가 특징인 칠아웃(Chillout) 계열의 일렉트로닉 스타일의 곡이다. 앨범 수록곡 중 가장 공간감이 극대화된 사운드를 들려주며 특히 쓸쓸함 또는 공허함에 대한 사운드 이미지에 서태지의 감각이 극대화된 곡이다.
잃어버린
숨 가쁘게 달려온 일상에서 문득 ‘과연 나는 잘 살아 왔던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잠시 멈춰 서서
다시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한 새로운 다짐을 노래하는 곡이다. 현란한 신스 사운드와 다이나믹한 코드 진행을 통해 희망적인 내일에 대한 비전을 사운드 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또 통통 튀는 건반 연주와 슈퍼소우(SuperSaw) 사운드를 곳곳에 배치해 청량감 넘치는 곡으로 완성했다. 서태지 음악의 가장 큰 장점인 드라마틱한 곡 구성으로 오랫동안 사랑 받을 수 있는 곡이 될 것으로 보인다.
비록(悲錄)
누구보다도 사랑하던 사람과 오해와 갈등을 겪고 난 후 길게 이어지는 공허함과 허탈함을 위로하는 내용의 노래다. 산산이 부서진 마음과 상처라도 진심을 담은 기다림을 통해 언젠가는 치유될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을 고스란히 가사에 담았다. 딜레이를 건 피아노 소리와 드림 팝에서 들을 수 있는 일렉트로니카 비트, 따뜻한 멜로디가 그의 체온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성탄절의 기적
서태지가 미국 세도나와 산타페 등의 인디언 마을을 여행하면서 영감을 얻어 작업했으며, 마음을 치유하는 명상음악을 염두해 완성한 곡이다. 특히 이 노래는 지난 8월 태어난 딸을 위한 태교 음악으로, 서태지가 배속의 딸에게 먼저 들려준 곡이기도 하다. 마지막까지 앨범에 수록을 고심했지만 이번 9집이 자신의 ‘딸과 함께 들을 수 있는 앨범’이 됐으면 하는 바람과 또 다른 새 생명들도 함께 듣기를 희망하며 최종적으로 마지막 트랙에 포함했다. 멜로우한 신스 사운드와 동양적인 느낌을 살려
숨소리까지 섬세하게 담은 플롯 편곡을 통해 딸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