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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트 아이 (Silent Eye) - Dirty World Of Angels

속(俗)의 시선으로 세상을 일갈하다.
사일런트 아이 [DIRTY WORLD OF ANGELS]

대중(mass건 popular의 의미이건 상관없이)의 시대가 열린 것은 길게 봐야 200년 안팎이고, 우리에게 이러한 관념이 만들어진 것은 슬프게도 식민지의 경험과 맞물려있다. 대중의 시대에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세속(世俗) 혹은 개인의 재발견이다. 왕권 혹은 신의 이름 아래에서 살아가던 이들에게 개인은 없었다. 나는 주체적인 내가 아니라 왕의 소유물이었고, 신의 사용을 기다리는 피동적 존재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근대와 함께 탄생한 개인이 탄생했다. 근대의 기술은 예술을 한 줌의 왕, 귀족, 성직자의 소유물에서 모든 사람이 향유할 수 있는 것으로 돌려놓았다. 아무리 아우라를 운운해도 인쇄 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모나리자가 어떤 그림인지 알고 있으며, 덕분에 이를 뒤틀고, 희화화한 패러디나 모나리자에 영감을 얻었음을 보여주는 오마주조차 친숙하다. 평범한 개개인의 생각, 느낌, 감정으로 만들어진 세속의 세계가 오랜 소외를 벗어나 그 의미를 되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대중의 시대인 것이다.  
세속의 미학이 자리한 시대에 더 이상 예술은 신 혹은 절대자의 이름으로 된 미학을 쫓을 이유가 없어졌다. 록과 재즈라는 20세기를 견인한 대중음악 장르를 잉태한 블루스의 존재는 이를 생생히 증명한다. 1920년대 녹음이라는 기술의 개발을 통해 처음으로 전 세계와 만난 블루스의 장인들은 찌그러지고, 게걸대는 목소리로 술, 섹스, 간음, 가난, 고통, 비탄을 거리낌 없이 지껄였다. 그들의 기타는 유럽의 현악기 연주에서 수백 년 동안 천대 받았던 비브라토와 벤딩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었으며, 정련된 선율보다 리듬과 감정을 드러내는 데 방점을 둔 연주를 들려줬다. 사일런트 아이의 새 앨범을 두고 이런 얘기를 한참 떠들어대는 이유는 제목부터 만만치 않은 신작 [Dirty World of Angels]에서 우리 시대의 대중음악이 세속의 진짜 힘과 가치를 잃어가는 모습에 일갈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어쎄신, 제노사이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기타리스트 손준호와 보컬리스트 서준희의 의기투합과 성과, 이별, 그리고 재결합까지의 스토리는 사일런트 아이의 음악을 찾은 이에게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사일런트 아이의 이름을 떠나 밴드의 두 핵심 멤버는 지난 20여 년간 한국 헤비메탈의 역사에서 중요한 발자취를 지속적으로 만들어왔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중요하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성과 속, 미(美)와 추(醜)에 대한 지배적인 관념에 끊임없이 도전해왔다는 의미다. 익스트림 메탈이라는 장르 자체가 틀에 대한 도전이지 않은가. 여기까지가 “노래”라고 규정하는 통념과 규칙에 대한 도전, 기타, 드럼, 베이스를 통해 소음과 음악의 경계선을 허무는 도전, 어떤 악기의 조합이 무슨 장르라는 규정에 대한 도전, 끝없는 도전의 연속으로 확장되어 온 음악이 바로 이 장르다. 그 확장이 언제나, 모든 사람들의 호응을 얻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도전은 음악에 대한, 통념에 대한, 사회에 대한 “당연한 것” 혹은 “이래야만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해준다. 단지 남들보다 빨리 해외 익스트림 메탈에 대한 촉각을 세웠던 사람들이었다고 대충 넘어가기에 사일런트 아이와 현재의 멤버들이 시도해온 모든 것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간단치 않은 도전이었다.  

서준희의 복귀 이후, 사일런트 아이의 첫 정규 앨범이 지금 앞에 있다. 되돌아오기까지의 시간만큼이나 담긴 음악의 색채도 달려졌다. 두 장의 컴필레이션과 [Buried Soul In The Castle Wall](2001)을 발표하던 시절까지의 데스 메탈과 블랙 메탈의 색이 묻어나던 음악을 지금까지 기대하고 있을 팬은 없을 것이다. 사일런트 아이의 음악, 특히 손준호의 기타는 데뷔작부터 단단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더욱 정교한 연주 세계를 더해나갔고, 서준희의 보컬은 팔세토와 그로울링을 묘하게 섞은 자신만의 창법을 다운 인 어 홀을 이끌며 더욱 발전시켰다. 여기에 베이시스트 김현모의 (심지어!) 멜로디에 강점을 가진 유연한 베이스 연주, 킥도 킥이지만, 스네어 사용에 탁월한 실력을 보이는 드러머 이충훈, 기타와 리프를 양분하는 키보디스트이자 안정된 보컬 실력까지 겸비한 진영의 존재까지, 확실히 지금의 사일런트 아이의 연주력은 무르익은 상태이다. 그러나 이들이 어떤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 들려줄 것인가는 연주력과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새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는 허상과 그 허상을 쫓는 자들의 이기심이다. 이 글의 시작에서 대중음악의 시대의 핵심은 아주 개인적인 속(俗)의 귀환이라 밝힌 바 있다. 헤비메탈의 울부짖고, 찢어지고, 폭발하는 소리에 가치가 부여될 수 있던 이유와 같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대중음악판에서 속의 소리는 어디에 있는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한국 재즈 음반이 발매되고 있으며, 라임과 플로우의 목을 매는 젊은이들이 있고, 다양한 록이 끊임없이 실험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설 구석이 없다. 놀랍도록 천편일률적인 음악만이 놀랍도록 소수의 방송과 매체를 통해 사람들과 만나며, “대중음악”임을 자임하고 있다. 사일런트 아이는 바로 그러한 현실에 의문을 표한다. 대중이 존재하기 전, 절대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취향을 신의 이름으로 포장하고, 그 밖의 소리를 악마의 소리로 규정하던 그 시절과 무엇이 다른지 묻고 있다. 밴드는 음악계의 현실을 통해 음반 속 얘기를 풀어내고 있지만, 음악 역시 한국 사회의 일부다. 사회-문화라는 것은 놀랍도록 총체적이다. 그래서 밴드의 은유를 따라 음악을 듣다보면, 이 이야기가 음악계의 비틀어진 현실인 동시에, 탐욕스런 우리 사회의 모습이며, 나아가 부정을 바른 자리로 다스려놓는다는 원래의 뜻과 정반대로 흘러가는 이 사회의 정치(政治)와 권력에 대한 우화로 읽히게 된다.

앨범의 제목이나 세상의 혼탁함과 부정함에 분노하는 가사와 달리 음악은 매우 명쾌한 소리로 표현된다. 기타 소리는 피킹 하나하나가 정확하게 파악될 정도로 다부지고 정확한 톤으로 정교하게 표현된다. 현악기보다 훨씬 단절적인 소리를 표현하는데 능숙한 키보드 역시 기타의 정밀하고 날카로운 리프를 따라 소리의 날카로움을 더한다. 이는 손준호의 정교한 기타 연주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다양하고 풍부한 울림을 가진 서준희의 보컬과 대척점을 그려낸다. 스네어와 탐탐, 킥 하나하나의 두드림이 선명한 드럼과 드라이브를 통해 달리는 분위기를 더욱 강조한 베이스의 대조와 쌍을 이룬다. 밴드의 사운드 안에서 서로의 특징을 살리는 동시에 개성이 한 곳으로 쏠리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내는 중요한 장면이다. 거의 모든 곡이 드라마틱한 전개를 가지고 있는데, 빠르고 느린 대목이 모두 들어있다. 거친 헤비메탈 8곡 전체를 통해서 구현되는 악곡의 배분, 사운드의 균형감은 다시 밴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로 환원된다. 이토록 거친 소리 속에서도 잃지 않는 멤버 각자의 개성에 대한 존중, 그렇지만 어느 하나로 인해서 전체가 쏠리거나 무너지지 않게 만들고자 하는 노력 자체가 밴드가 가사를 통해 그토록 외쳤던 불균형 - 권력자의 억압과 아집, 애써 현실을 외면하는 소심한 개인들의 합작품에 대한 항변인 것이다.  

약육강식이 당연하고 거스를 수 없는 진리인 양, 이야기되는 세상이다. 그러나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것 같은 자연의 세계는 절대로 강자 하나가 다른 동물 모두를 차지하고, 맘대로 하지 못한다. 종의 다양성이 무너지면, 그 생태계는 전멸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자연계에 비춰보면, 지금 우리의 삶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상태인지, 대중의 시대가 열리며 온갖 다양성의 기운이 움찔대던 역동성이 어떻게 짜부라져버렸는지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다. 사일런트 아이는 이러한 현실에 항변한다. 항변의 (음악) 언어는 아름답지 않다. 때론 분노에 차 있고, 때로는 해학적이며, 때로는 끝 간 데 없이 직선적이다. 진정한 세속의 기운이다. 그래서 이 일갈이 더 저릿하고, 더 강렬하다.


조일동 (음악취향Y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