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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이시오스 (The Ratios) - Lusty Initialization (재발매)

“되살아나는 실험 스피릿의 불꽃”
레이시오스(Ratios)의 <Lusty Initialization>

너무 담대해서 놀라웠고 그런 만치 쉬 묻혀버려 아쉬움의 이끼가 끼었던 ‘레이시오스’의 앨범, 그 불운과 미완의 회심작이 부활한다. 그대로 돌아온 단순 리바이벌이 아니라 5년 이상 세월의 간극에 대한 체감을 막는 새로움을 덧입혀 뉴 레코딩으로 되돌아왔다. 레이시오스의 원작(그때 이름은 Burning Telepathy)은 2008년의 시점에서는 쇼크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렉트로닉 헤비 록 앨범이었다. 통렬한 ‘리얼’ 록음악에다 쉴 새 없이 쏘아대는 신스 전자음의 결합. 당시 서구에서는 터를 잡은 개러지 하우스 혹은 더 포괄적으로 규정하면 일렉트로니카라는 스타일을 우리 식 대입의 차원에서 끌어댔다는 점에서 완벽한 창의의 결과가 아님을 알면서도 경이적 시선으로 레이시오스를 바라본 것은 국내 실정, 시장의 상황에서는 좀처럼 가당찮은 시도와 실험의 산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시나위의 보컬을 거쳐 ‘나비효과’ 그리고 레이시오스 이후의 ‘아트 오브 파티스’와 같은 일련의 작업을 통해 김바다가 포획한 수식어는 바로 그것, 시도와 실험이었다. 분명 이 스타일이 온전한 클럽 DJ의 것이 될 수 없고 그렇다고 록밴드 마당에 서기에도 머쓱한, 잘못하면 사생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밀어붙이듯 미지의 영역으로 덤벼가는 무한질주의 영혼으로 그는 원초적 록 본능의 소유자임을 증명했다.

의욕에 찬 재출발을 의미하는 타이틀의 변화가 시사하듯 이 개작은 2008년의 것에 대한 상당부분의 손질을 동원했다. 먼저 록보다는 일렉트로닉 사운드 쪽으로 무게중심을 이동시켰다. 일렉트로닉 스페셜리스트 박상진의 역할을 강화해 록과 전자음악의 비등한 배분율을 조정해 전자음을 상전으로 모신 것이다. 세계적인 EDM의 폭발을 의식한 것인지, 5년 사이에 국내에 소수라도 수요층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생겨서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일렉트로니카로의 심화 아니면 진화는 확실히 작품을 더욱 모던하게 느끼게 해준다.

새롭게 마스터링한, 사운드가 한층 찰 져진 첫 곡 ‘Long Journey / Island’가 웅변한다. 아예 녹음을 다시 한 ‘Love Is All’에서 김바다의 보컬을 감싸는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이전 앨범에 비해 기타 노이즈와 잘 어울림을 만들어내면서 확실히 매끈해졌다. 어쩌면 전체적으로 일렉트로닉 요소가 부각됐다고 보기보다는 일렉트로닉 드라이브가 마침내 헤비 록 사운드와 밀월을 꾸려냈다고 보는 것이 옳은 표현일지 모른다. 모든 곡들에서 김바다의 보컬 또한 마구 질러대는 광포함에서 ‘질서가 잡힌 포효’ 쪽으로 살짝 느낌이 달라졌다. 앨범이 훨씬 듣기 수월해진 것은 우선은 곡에 잘 달라붙은 김바다의 목소리 때문이기도 하다.

제목을 바꾼 세 곡이 있다. ‘Punk & Roll’은 ‘Punk not! Sister X’로, 마니아들 반응이 좋았던 ‘See The Pinky Sky’는 ‘다른 하늘(Follow)’로 개명했고 ‘Dog Star’가 상대적으로 귀에 익은 이유는 과거 타이틀곡이었던 ‘Rockstar’이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을 통한 재생작업으로 시장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려는 의지의 소산이다. 14곡이었던 오리지널의 수록곡 가운데 ‘Viper Room’, ‘Newave’, ‘This Is Me’는 과감하게 뺐다. 이것도 앨범을 ‘2013년의 컴백’으로 만들고자 하는 은근한 기대감의 반영이다.

결정타는 빅 비트가 넘실거리는, 록과 일렉트로닉이 화학적으로 만난 파워풀한 신곡 ‘Yeah! Yeah! Yeah!’다. 핵심이라고 할 코러스는 최근 급부상한 ‘크레용팝’의 앙증맞은 소리가 합쳐져 매력적인 후크로 상승했다. ‘빠빠빠’로 뜨기 전에 섭외했다지만 어찌됐든 거부하기 어려운 귀여운 아우성이다. 록 스피릿으로만 등식화될 것 같은 김바다의 유연한, 대중전선도 마다하지 않는 의외의 탄력적 사고가 엿보인다. 사실 그는 분류의 대척점에 서있는 아이돌 트리오 JYJ의 김재중에게도 두 곡이나 써주었다. 솔로 앨범으로는 더욱 대중적인 접점을 마련할 것으로 전해지는 소식마저 기회주의나 훼절로 매도되지 않고 예측할 수 없는 자유의 영혼으로 비쳐지는 것은 그만의 각별한 존재감 아닐까. 이러한 행보가 이상하리만큼 록 스피릿과 충돌하지 않는다.

조금만 시간을 투자한다면 ‘Love Is All’, ‘031807’, ‘다른 하늘(Follow)’ 그리고 ‘Yeah! Yeah! Yeah!’ 등 예상보다 귀에 잘 감기는 곡들이 많다. 2008년에 어색함을 주었던 곡마저 친화 지수가 상승한 느낌이다. 아마도 김바다와 사운드메이커 박상진(신시사이저, 베이스), 김정준(기타) 그리고 김영식(드럼) 넷이 모여 재생의 욕구를 다진 뮤지컬 애티듀드, 그 단합의 성과일 것이다. 다시금 시도라는 불씨를 피워 활활 타오르는 화염을 되살려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하다. 역시 음악은 그것을 이해하는 대중을 항해 예술성을 탐하는 실험정신의 영토에서 호흡한다.

임진모(www.iz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