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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sive Attack - 100th Win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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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번째 창문
신보의 제목은 『100th Window』이다. 백 번째 창문, 이것은 찰스 제닝스와 로리 페나가 쓴 인터넷 보안 문제에 관한 지침서 [The Hundredth Window]에서 따 온 것으로, 보안 전문가들이 말하는 바 ‘어떤 한 시스템 속의 가장 취약한 지점’을 가리키는 은유이다. 말하자면, 100개의 창이 있는 건물에서 아무리 열심히 아흔 아홉 개의 창을 잠궈논들 그중 실수로 단 하나 백 번째 창문만 열려 있다면 침입자는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다는 것. 허나 이 책을 읽었던 3D는 이 개념을 사람에 비유하고 싶어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속마음을 숨기고 꼭꼭 잠그고 싶어하지만 어떻게든 그 속에 침투해 들어갈 여지는 있다고 - 즉 “자물쇠를 따는 방법만 안다면.” 그리고 이들은 그 자물쇠를 따기 위해 『Mezzanine』처럼 우리를 위협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분명히 그 앨범은 정신 못 차리게 만드는 그 블랙홀 같은 헤비함이 최고의 마력이었지만, 상대적으로 인간미는 최저인 앨범이기도 했다(매시브 어택 앨범 중 가장 살기등등했다고나 할까). 밴드도 그 점을 인식한 듯, 3D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이 『100th Window』를 [Mezzanine] 보다는 따뜻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렁하지는 않게, 그러니까 『Mezzanine』의 선명함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물기를 좀더 머금게 한다는 게 이들의 전략이었다.
이 수정된 전략은 밴드의 오랜 작업 파트너 중 하나인 마크 스파이크 스텐트(엔지니어)와 전작에서부터 참여하고 있는 닐 대비지(그룹과 공동 프로듀서) 등의 여전한 도움을 통해 수행되었는데, 특히 닐의 경우 이번 앨범에서는 비중이 좀더 높아진 듯 프로듀싱 외에도 키보드, 프로그래밍, 그리고 스트링 섹션의 어레인지까지 거들고 있다. 보컬은, 기본 트랙을 만들 때까지만 해도 행동을 같이 했으나 프로듀싱과 믹싱 등 포스트 프로덕션 작업 일체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은 대디 G 덕분에 그의 목소리는 이번 앨범에서 들리지 않는다. 대신, 그와 함께 원래 그룹의 랩퍼였던 3D가 네 곡, 그리고 변함없는 이들의 조력자 호레이스 앤디가 두 곡, 그리고 지난 트레이시 손과 엘리자베스 프레이저의 뒤를 잇는 객원 보컬의 전통은 이번에 시네이드 오코너(Sinead O'Connor)가 맡아 총 세 곡에서 노래를 들려주고 있는 모습이다. 밴드 측의 말에 따르면 일찍이 [Protection] 앨범 이후부터 계속 그녀를 섭외하고 싶었으나 이제서야 그 결실을 맺었다고 하는데, 한때 ‘현재 우리의 음악을 전혀 발표할 맘이 나지 않을 정도로 작금의 영국 음악계에 환멸을 느낀다’는 악담을 한 적도 있는 매시브 어택이니만큼 “그녀는 얼마 남지 않은 진짜 훌륭한 싱어 중 하나”라는 그들의 평은 분명 진심의 찬사이리라. 그녀가 부른 세 곡은 모두 그녀답게 ‘어머니+카톨릭+앵그리 우먼’스러운 트랙들인데, 그 중에서도 특히 'A Prayer For England'는 모르긴 해도 최근 영국 내에서 있었던 일련의 어린이 유괴 살해 사건들이 아무래도 상당한 동기가 되어주지 않았을까 내심 추측하게 되는 곡으로, 앞으로 자선기금 마련을 위한 싱글 발매를 잠정적으로 계획해둔 곡이기도 하다. 그렇다곤 해도 그녀의 트랙 중에서도 'What Your Soul Sings'가 아닌 'Special Cases'를 첫 싱글로 한 건 조금 뜻밖이었지만(여담: 최근의 인간복제 이슈와 영화 ‘가타카’의 만남인 듯한 뮤직비디오에도 주목).
물론 지금까지 매시브 어택의 싱글 히트 대부분이 게스트 보컬리스트의 매력이 빛나는 곡들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호스트인 3D에 눈을 돌려 볼 필요가 있다. 싫든 좋든 이 앨범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긴 했으나 지난 『Mezzanine』 때부터 슬슬 기미를 보이던 이 친구의 보컬은 본령인 랩에서 노래로 조금씩 옮겨온다는 느낌이 들더니, 이번 앨범에선 온전히 ‘보컬리스트’로서 기능하고 있다('Small Time Shot Away'를 들어보라). 머쉬룸의 탈퇴에 이어 대디 G의 랩이 빠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시브 어택에서 ‘소울’이 실종됐을 거라고 성급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벌써 나타나고 있지만(과연, 매시브 어택의 주요한 특징 중 일부였던 힙합 랩과 덥/레개 사운드가 이번 앨범에서는 상대적으로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 소울은 그같은 힙합이라는, 혹은 라스타(rasta)라는 협의의 의미만이 아니라는 것을 3D는 자신의 소울로 증명해 보이는데, 그 대표적인 첨병으로써 『100th Window』에서 활용된 것이 동양 혹은 중동 사운드이다.
전작들에서의 'Karmacoma'와 'Inertia Creeps' 등 그들이 꾸준히 이 방면을 탐색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좀 더 노골적인데, 'Butterfly Caught', 'Antistar', 'Special Cases' 등 특히 대규모 오케스트레이션을 도입한 곡들에서는 전반적인 어레인지가 이 완연한 동양풍 모드에 기반하고 있다. 원한다면 이쯤에서 그 흔한 오리엔탈리즘 타령 한번 구성지게 읊을 수도 있겠지만, 그 곡들 모두에 인도 전통 악기 사랑기(Sarangi)의 젊은 유망주 플레이어(카말 사브리)를 아예 직접 초빙해 녹음, 수록한 데서는 고아 트랜스(Goa Trance) 등에서 흔히 보이는 것과 같은 그런 댄스 씬 속의 라가(raga) 양념이라고만 치부하기 힘든 천착의 흔적이 있다. 그 중에서도 단연 'Antistar'는 그 ‘동양 사운드’ 면은 물론 앨범 전체를 통해서도 단연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출중한 트랙으로, 3D의 발언을 미루어보건대는 'Inertia Creeps'의 심화버전이자 이번 앨범 작업 중에서 가장 오래 묵은(=공들인) 곡 중 하나임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사례가 될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트랙이, (이전)보다 적은 멜로디지만 그래서 보다 드라마틱한 [100th Window]의 ‘나코시스’와 ‘클로로포름’ 가득한 만트라(mantra)적 특징을 제대로 일괄해주리라. 이 음반, 『Mezzanine』보다 온기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 약기운에 있어선 진배없이 독한 녀석이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