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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d Stewart - It Had To Be You... / The Great American Song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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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의 관록과 여유가 배어나오는 로드 스튜어트의 신보
[It had to be you - The Great American Songbook]
제 42회 그래미 시상식이 열린 2000년 2월 23일. 팝 음악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이날 행사의 스포트라이트는 백전노장 산타나에게 비춰졌다. 이미 무려 10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태풍을 예고했던 그는 이날 저녁 무려 8개의 트로피를 쓸어담는 기록을 세웠다. 그 전해 발표한 앨범 "Supernatural" 덕이었다. 'Smooth'로 송라이터인 롭 토마스와 이탈 슈어가 또 하나의 트로피를 거머쥔 것까지 합치면 한 앨범에서 무려 아홉개 부문의 수상 기록을 내는 위업을 달성한 셈.
매치박스 트웬티의 롭 토마스, 에버라스트, 데이브 매튜스, 이글아이 체리에 로린 힐에 이르는 록 음악과 힙 합을 망라한 팝 음악계의 후배들, 그리고 에릭 클랩튼 같은 동료 뮤지션에 이르는 빅 스타들이 함께 했던 이 '슈퍼 프로젝트'는 1990년대 들어 대중들로부터 멀어져있던 노장 산타나로 하여금 미국 시장에서만 무려 1,400만 장의 앨범 판매고를 올리는 기적을 연출하게 했다. 하지만 이 앨범의 주인공 산타나 못지않게 그의 부활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 있다. 바로 앨범을 발매한 "Arista" 레이블의 사장이었던 클라이브 데이비스. 1960년대 "Columbia"에 재직하던 시절 산타나와 레코딩 계약을 체결했던 장본인인 그는 이 "Superbatural" 앨범의 아이디어를 산타나에게 제공하고 산타나와 함께 앨범의 프로듀서를 맡았던 것이다.
그 뒤 클라이브 데이비스는 60대 중반의 나이에 "Arista" 레이블을 떠나 새롭게 "J Records"를 설립하게 된다. 법학을 전공하고 "Columbia" 레이블의 계약 담당 변호사로 시작해 재능을 인정받고 직접 팝 음악계 일선에 뛰어들었던 그가 40년 가까운 음악계 생활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려는 각오였을까? 어쨌든 그는 새롭게 시작한 "J Records"에서 첫 작품 오 타운(O-Town)을 시작으로 마침내 앨리샤 키스라는 뛰어난 재목을 발굴해 그의 혜안(慧眼)이 여전함을 입증해보였다. 서두가 다소 길었지만 어쨌든 지난 연초에 바로 그 클라이브 데이비스와 역시 백전 노장인 로드 스튜어트가 손을 잡았다는 소식은 또 하나의 빅 뉴스가 되었다. 비교적 신인급들로 채워져 있던 "J Records"의 라인업에 엄청난 무게가 더해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산타나가 클라이브 데이비스와 만나 화려하게 부활했듯이, 1990년대 후반을 지나오면서 다소 힘이 부치는 듯 했던 로드 스튜어트가 또 다시 팝 음악의 메인스트림에 합류할 수 있을지가 관심사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이번 로드 스튜어트의 음반은 산타나의 경우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의 음반이다. 산타나가 그 특유의 하이 피치 기타 솔로를 앞세우면서도 슈퍼 스타급 동료 및 후배 뮤지션들의 힘을 빌었던 데 비해 로드 스튜어트는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이적 후 첫 작품을 꾸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소프트 재즈계의 스타인 색소포니스트 데이브 코즈나 마이클 브레커 등이 참여하고는 있지만 그 역할은 통상적인 뒷받침 정도의 기능에 머물고 있다. 게다가 주로 1930년대 미국 스탠더드 재즈 넘버들을 중심으로 앨범을 꾸민 아이디어도 로드 스튜어트 자신의 것이라는 점도 차이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드 스튜어트와 새로이 레코딩 계약을 하는데 있어서 클라이브 데이비스의 뛰어난 감각이 작용을 했으리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로드 스튜어트가 들려준 데모를 듣고서 그 자리에서 계약을 결정했다는 이야기이고 보면 그가 단지 로드 스튜어트라는 이름에 현혹되어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지는 않았을 터이니...
로드 스튜어트. 1945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1960년대 초반부터 음악 활동을 시작했으니 어느덧 음악계에서 40여년을 보낸 셈이다. 제프 벡 그룹(Jeff Beck Group)과 스몰 페이시스(Small Faces) 등의 밴드에 몸담으며 탁월한 록 보컬리스트로 인정받았고 1969년 솔로 데뷔 앨범 "An Old Raincoat Won't Let You Down"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스물 한 장의 앨범을 낸 그는 또한 뛰어난 송라이터로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탁월한 록 보컬리스트로 인정받았던 그는 디스코 전성기엔 넘버 원 히트곡인 'Da Ya Think I'm Sexy' 등으로 댄스에도 일가견(!)을 보였고 그런 한편 특유의 허스키 보이스로 많은 팝 발라드 히트곡도 만들어냈다. 그와 함께 대표적인 팝 음악계의 허스키 보이스로 인정받는 브라이언 아담스, 스팅과 함께 영화 "삼총사"의 주제곡 'All For One'을 불러 히트시킨 것은 이런 발라드 가수로서의 일면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만 하다. '리메이크의 귀재'라 할 만큼 다른 가수의 노래를 소화해내는 능력 또한 탁월했고 이를 통해 많은 곡들을 히트시켰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서면 설수록 시류에 영합하는 아티스트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시비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당당히 이름이 오름으로써 모두 가라앉았고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확실하게 인정받게 되었다. 어떤 장르를 소화하건 로드 스튜어트가 탁월한 곡 해석력을 가진 뛰어난 보컬리스트요 송라이터라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1990년대 들어 로드 스튜어트는 어쿠스틱 사운드 위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히트곡 'Have I Told You Lately'를 배출해낸 "MTV Unplugged"(1993)라든지 톰 페티의 'Leave Virginia Alone'을 리메이크해 히트시킨 "A Spanner In The Works"(1995) 같은 앨범들이 러했다. 1996년엔 기존의 히트곡과 신곡을 담은 발라드 베스트 앨범 "If We Fall In Love Tonight"을 내놓아 완전히 발라드 가수로 정착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모습은 대중들의 기호에는 맞아떨어졌는지 모르지만 로커로서의 본연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었다.
하지만 1998년 발표한 앨범 "When We Were The New Boys"는 그를 또 다시 화제의 인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한참 후배뻘인 1990년대 록 밴드들의 음악들을 대거 수록한 것이다. 과거 몸담았던 페이시스(Faces)의 노래라든가 자작곡 'When We Were The New Boys' 등의 신곡도 주목을 받긴 했지만 역시 관심은 젊은 밴드들, 오아시스, 프라이멀 스크림, 론 섹스스미스, 스컹크 애넌지 등등의 곡을 리메이크한 부분에 쏟아졌다.
그리고 이어진 새 앨범 "Human"(2000)에서 그는 또 다른 시도로 여전히 '젊은' 로드 스튜어트의 모습을 과시했다. 건즈 앤 로지스 출신 기타리스트 슬래시와 마크 노플러 등이 참여한 이 앨범에서는 당대 영국의 잘 나가는 젊은 프로듀서들을 대거 기용해 샘플링과 힙 합 리듬 등이 가미된 트렌디한 영국 R&B의 요소를 담아내보였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로드 스튜어트가 나름대로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것이 충격을 던질 만큼의 파격적 시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나름대로 진지한 음악적 탐구를 계속해오고 있음은 분명하다.
2년만에 레이블을 옮겨 선보인 이 앨범 역시 그런 음악적 탐구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이 전곡을 로드 스튜어트가 즐겨 들었던 미국의 재즈 스탠더드 음악들로 채우고 있어 그의 주특기인 '리메이크' 능력을 과시하고 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그만의 색깔은 앨범 전반에 묻어있다. 버트 바카락, 시카고 등 수많은 뮤지션들의 앨범을 작업한 거물 프로듀서 필 라몬과 해리 닐슨과 멜리사 맨체스터, 다이애나 로스 등과 작업했던 리처드 페리라는 명 프로듀서들을 기용한 이번 앨범은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항상 울려나오는 'Santa Clause Is Coming To Town'을 만든 헤이븐 길레스피(Haven Gillespie)의 작품 'You Go To My Head'를 비롯해 조지 거쉰과 아이라 거쉰 형제의 'They Can't Take That Away From Me', 제롬 컨의 'The Way You Look Tonight' 등 1930년대 작품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모두 빌리 홀리데이 등 수많은 뮤지션들이 즐겨 불렀던 레퍼토리들이다.
내용 면에서 보면 이 앨범은 젊은 후배들의 음악을 리메이크했던 "When We Were The New Boys"나 전작인 "Human"과는 정반대의 시도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앨범의 주역인 로드 스튜어트나 필 라몬, 그리고 리처드 페리 세 사람 모두 1960년대부터 활동을 시작한 노장들이다. 게다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클라이브 데이비스 역시 그러하다. 이렇다 보니 얼핏 로드 스튜어트가 대중들에게 영합할 수 있는 편안한 레퍼토리로 승부하려 한다는 느낌을 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진하게 배어있는 로드 스튜어트의 체취, 더없이 편안한 느낌으로 스탠더드 곡들을 자신의 감각으로 소화해내고 있는 로드 스튜어트의 모습은 다시 한 번 그가 탁월한 곡 해석력을 지닌 보컬리스트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게스트 뮤지션들이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프로듀싱은 보컬 파트를 강조하는데 중점을 둔 흔적이 역력하다. 한 마디로 로드 스튜어트의 역량이 크게 부각되고 있는 작품이라는 얘기다. 허스키 보이스면서도 발라드를 더없이 달콤하게 들리게 만들어주는 로드 스튜어트의 매력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