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ipknot - Antennas To Hell : Best Of Slipkn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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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러너 레이블 최대의 히트 메이커이자 2000년대 익스트림 메틀 씬을 주도해나간 핵심 밴드 Slipknot 그들의 15년 역사를 담아낸 최초의 베스트 앨범 [Antennas To Hell : Best Of Slipnok]
20세기 말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익스트림 메틀 씬과 팬들에게 슬립낫의 등장은 최대 이슈였다. 가면을 쓴 아홉명의 멤버. 이름 대신 번호가 이름이었던 밴드, 무엇보다 세풀투라를 뛰어넘는 세기말의 하이브리드 익스트림 메틀은 정확한 시기에 정확한 스타일로 정확하게 레이블과 팬들을 동시에 만족시켰다. 게다가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분노’의 정서. 세기말의 흉흉한 시절이 배경이라 별다른 마케팅도 필요 없을 정도로 당대가 원했던 밴드가 바로 슬립낫이다.
그들이 정식으로 등장한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슬립낫이 선사하는 분노의 익스트림 메틀은 여전히 자극적이다. [Antennas To Hell]은 그 역사를 단숨에 요약해주는 최상의 가이드다. 데뷔 앨범 [Slipknot]을 다 듣고 난 뒤 느꼈던 강력한 자극은 이 베스트 앨범을 모두 다 듣고 난 뒤에도 동일하다.
로드러너 레이블 최대의 히트 메이커이자 2000년대 익스트림 메틀 씬을 주도해나간 핵심 밴드 Slipknot 그들의 15년 역사를 담아낸 최초의 베스트 앨범 [Antennas To Hell]
기타 영웅이나 변방의 메틀 밴드 앨범을 발표하며 메틀계의 한자리를 차지한 후 차근차근 성장하던 로드러너 레이블이 당대의 잘 팔릴 것 같지는 않지만 더 큰 자극을 원하는 음악 팬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극단적인 메틀 밴드를 발굴해내려 했던 건 지금 생각해도 적절한 선택이었다. 80년대 중반이 지나면서 80년대를 상징하는 헤비메틀도 잘 나가는 밴드 몇몇을 남겨놓고 모두 언더그라운드로 들어갔다. 하지만 언더그라운드였기 때문에 잘 팔릴만한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밴드들이 성장할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사실 이건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어떤 밴드이건 이름이 알려지고 수백만장의 앨범을 팔고 싶어 한다. 그러면 밴드의 명성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거나 아예 불가능하다면, 잘 팔리는 음악을 한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꾸준히 했기 때문에 잘 팔리는 것이라는 논리를 세운다.) 언더그라운드로 내려간 덕분에 팝메틀 밴드들과 비교도 할 수 없는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스타일들이 분화와 진화를 거쳐 당당하게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가장 성공적으로 안착한 언더그라운드 헤비메틀 장르가 바로 메탈리카(Metallica)를 중심으로 한 스래쉬 메틀(Thrash Metal)이다.
로드러너 레이블에서도 이런 밴드를 여럿 발굴했지만, 세풀투라(Sepultura)는 최고였다. 80년대 말부터 막스 카발레라(Max Cavalera)가 밴드 멤버인 상태에서 발표한 마지막 앨범 [Roots](1996)까지 세풀투라는 로드러너 레이블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는 핵심 밴드 가운데 하나였다. 판매량은 어마어마하지 않았어도, 특이하게 브라질 출신이라 해도, 세풀투라는 극단을 추구하는 익스트림 메틀 밴드의 모범사례를 제공했다. 그렇지만 막스 카발레라가 밴드를 떠나고 나서는 힘을 잃어버렸다. 막스 카발레라는 밴드를 떠나 곧바로 자신의 밴드 소울플라이(Soulfly)를 결성해 로드러너 레이블에서 첫 앨범 [Soulfly](1998)을 발표하며 활동을 개시했지만 세풀투라만큼 폭발적인 반응을 얻진 못했다.
슬립낫이 로드러너 레이블의 기대주로 등극한 건 바로 이 시점이다. 레이블에서는 결코 놓칠 수 없는 밴드 세풀투라가 프런트맨 막스 카발레라를 잃은 후 브레이크가 걸렸고, 막스 카발레라는 새로운 밴드를 결성해 시동을 걸었지만 세풀투라만큼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해 지지부진한 상황, 레이블 최고의 밴드 둘이 동시에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세풀투라와 소울플라이는 쓰러지지 않았다. 여전히 로드러너 레이블에서 새 앨범을 발표하며 활동하고 있다. 쓰러진다는 건, 단지 극적인 표현을 위해 가져온 표현일 뿐이다.) 로드러너는 새로운 밴드가 필요했다. 콘(Korn)과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과 하드코어 테크노 그룹 프로디지(The Prodigy) 등이 메이저 레이블에서 명성을 얻은 상황에서 로드러너는 머신헤드(Machine Head)와 피어 팩토리(Fear Factory)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훅이 부족했다. 과격한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을 KO시킬 한 방 말이다. 슬립낫은 콘의 앨범 프로듀서 로스 로빈슨(Ross Robinson)의 눈에 띈 후 로드러너 레이블이 원하는 한 방을 날려줄 초강력 훅을 가진 밴드로 단숨에 뛰어올랐다.
사실 슬립낫이 처음 소개될 때에는 기존 음악을 모두 시시하게 생각하는 팬들에게나 매력적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분노’를 담은 가사, 이 가사를 뒷받침해주는 폭력적인 음악, 변태성욕자들 같은 느낌을 주는 괴팍한 분장, (나중에는 번호보다 이름이 더 먼저 튀어나왔지만) 이름 대신 번호로 규정된 아홉 명의 멤버들, 100년에 한 번 찾아오지만 누구나 경험하는 건 아닌 세기말의 분위기를 재현한 듯한 핏빛 분위기의 앨범 커버. 다양한 소재를 뒤죽박죽 섞어버리며 세기말의 분위기를 누구보다 더 잘 보여준 밴드였다. 슬립낫의 정식 데뷔 앨범 [Slipknot](1999)은 신인밴드의 첫 앨범답지 않게 평단의 강력한 호평을 얻으며 팬들을 늘려나가기 시작했다. 음악지 ‘커랭!’은 만점을 부여했고, ‘메틀 해머’는 최근 25년 사이에 발표된 데뷔 앨범 가운데 최고의 데뷔앨범으로 슬립낫의 앨범을 꼽았다. 영국에서도 호평은 이어졌다. 보수적인 ‘롤링스톤’에서 (이것저것 세팅이랄 것도 없이 모든 게이지를 최대로 돌려놓고 시끄러운 소리만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콘과 림프 비즈킷의 “Left-Of-The-Dial Metal’를 재현한 것일 뿐이라며 이도저도 아닌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그런데, 앨범은 이 앨범은 평단과 팬들의 호응을 얻기 시작하더니 판매량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당시 힙합과 R&B가 아니면 명함도 내밀지 못하던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도 51위를 기록했다. 슬립낫의 정식 첫 앨범은 무려 더블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이는 밴드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많은 판매량이기도 하다. 하지만 밴드만의 경사가 아니었다. 슬립낫의 앨범 [Slipknot]은 2000년이 되면서 플래티넘을 기록했는데, 이는 로드러너 레이블 최초의 플래티넘 앨범이다. 밴드와 레이블과 팬 모두에게 경사였다.
2년 뒤인 2001년에 발표한 밴드의 두 번째 앨범은 [Iowa]다. 변변한 뮤지션 하나 보유한 적 없다는 슬립낫 멤버들의 자조적인 이야기도 있었던 밴드 멤버들의 고향인 미국 아이오와를 제목으로 삼았다. 첫 앨범의 엄청난 성공과 함께 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앨범 가운데 하나로 선택받은 슬립낫의 두 번째 앨범은 첫 앨범보다 더 극렬한 사운드였지만 수많은 공연을 통해 다져진 원숙미까지 더해진 앨범이었다. 이미 세기말은 지나가버렸지만 슬립낫의 음악에서는 아직도 세기말의 공포와 분노로 말세를 전하고 있었다. 게다가 염소를 커버에 담아 흑마술의 분위기까지 담아놓는 치밀함도 있었다. 흥미롭게도 이 앨범의 완성도에 어울리지 않게 앨범에서 싱글로 커트한 ‘The Heretic Anthem’과 ‘Left Behind’, 그리고 ‘My Plague’ 등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는 첫 앨범 때도 마찬가지였다. ‘Wait And Bleed’, ‘Spit It Out’, ‘Surfacing’ 등, [Slipknot]에서 커트한 싱글들은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당연했다. 슬립낫의 음악은 싱글 히트곡 한두곡이 아니라 러닝타임 내내 온 신경을 긁어대고 짜릿한 자극을 주는 앨범 중심이기 때문이었다. 곡과 곡 사이의 변별력은 거의 없지만 앨범 전체의 일관성에서 비롯된 흡인력은 대단했다.
두 장의 앨범으로 성공을 거둔 밴드는 질주하는 대신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밴드 멤버들은 각자 사이드 프로젝트 밴드 활동에 바빴다. 밴드 해체에 대한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밴드는 그 사실을 부정하며 로스 로빈슨 대신 세상에서 가장 바쁜 프로듀서 릭 루빈(Rick Rubin)과 함께 세 번째 앨범 [Vol. 3: (The Subliminal Verses)](2004)를 작업해 발표했다. 두 번째 앨범 [Iowa]는 빌보드 앨범 차트 3위까지 진출했는데, [Vol. 3]는 그보다 더 높은 순위인 2위를 기록했다. 밴드가 해산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었던 시기에 작업했는데도 이처럼 탄탄한 앨범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도 대단하고, 여전히 날선 분노를 유지하며 폭력적인 사운드를 펼쳐보이며 최고의 익스트림 메틀 밴드로 군림할 수 있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로스 로빈슨이 프로듀스한 앨범과 조금 다른 질감이었지만 여전히 극렬한 사운드였다. 앨범은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이듬해인 2005년에 발표한 밴드 최초의 라이브 앨범 [9.0: Live]는 세 번째 앨범 발표 후 이어진 투어 현장을 담았다.
그리고 4년. 3장의 스튜디오 앨범과 한 장의 라이브 앨범을 발표한 슬립낫은 밴드의 네 번째 앨범 [All Hope Is Gone](2008)은 아이오와에서 작업했다. 그동안 레코딩을 비롯한 주 활동무대가 로스앤젤레스 부근이었기 때문에 밴드의 음악에 이 지역의 정서가 알게 모르게 배어 있었다고 판단했다. 프로듀서도 어글리 키드 조(Ugly Kid Joe)의 멤버로 활동했던 데이브 포트먼(Dave Fortman)과 젊은 프로듀서 크리스 브레나(Chris Vrenna)를 기용했다. 밴드도 프로듀싱에 참여했다. 덕분에 이 앨범은 기존 슬립낫의 음악과 다르게 선명한 멜로디를 담고 있었고, 팬들에게는 충격이었을 발라드 ‘Snuff’도 담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팬들은 ‘Snuff’에도 지지를 보냈다. 슬립낫의 음악이 주로 인기를 얻었던 빌보드 메인스트림 록 차트 기록에서도 최고인 2위까지 올랐다. 예전과 달리 포스트 그런지 스타일의 ‘Dead Memories’도 네 번째 앨범에서 주목할만한 트랙이다. 그게 다가 아니다. [All Hope Is Gone]은 앨범 타이틀과 다르게 밴드 최초의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모든 희망이 다 사라져버렸다는 절망적인 앨범 타이틀과 달리 슬립낫의 음악은 여전히 희망을 주고 있었다. (다만 밴드 결성의 핵심이었던 멤버 번호 2번 폴 그레이(Paul Gray)가 2010년에 사망하면서 원년 멤버 한 명을 잃었다.)
[All Hope Is Gone] 이후 또다시 4년만에 만나는 슬립낫의 새 앨범이자 폴 그레이 사망 이후 첫 앨범인 [Antennas To Hell]은 슬립낫의 15년 역사를 깔끔하게 정리해놓은 최고의 요약본이다. 이 앨범은 싱글로 발표하지 앟았는데도 슬립낫의 음악을 단번에 요약해준 첫 앨범 수록곡 ‘(Sic)’와 DJ를 보유한 익스트림 메틀 밴드라는 데뷔 초반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Eyeless’로 시작해 가장 최근 싱글로 기록되어 있는 [All Hope Is Gone] 수록곡인 발라드 트랙 ‘Snuff’까지 모두 19곡을 담고 있다. 밴드가 지금까지 발표한 네 장의 정규 앨범에서 싱글로 발표한 곡들을 중심으로 담았다. 물론 두 곡의 라이브 트랙 ‘The Heretic Anthem’과 ‘Purity’를 담아 슬립낫의 라이브의 역동성도 빼놓지 않았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라이브 트랙은 CD로 발표했던 현재까지 유일한 라이브 앨범 [9.0: Live]에서 가져온 곡이 아니라 DVD로만 공개했던 라이브 DVD ‘Disasterpieces’(2002)에서 가져온 트랙이다. [Antennas To Hell]은 앨범 발표 순서를 지켜 밴드의 음악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앞에서 거론한 두 곡의 라이브 트랙 역시 정확하게 발표 순서를 지켰다.)
20세기 말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익스트림 메틀 씬과 팬들에게 슬립낫의 등장은 최대 이슈였다. 가면을 쓴 아홉명의 멤버. 이름 대신 번호가 이름이었던 밴드, 무엇보다 세풀투라를 뛰어넘는 세기말의 하이브리드 익스트림 메틀은 정확한 시기에 정확한 스타일로 정확하게 레이블과 팬들을 동시에 만족시켰다. 게다가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분노’의 정서. 세기말의 흉흉한 시절이 배경이라 별다른 마케팅도 필요 없을 정도로 당대가 원했던 밴드가 바로 슬립낫이다. 그들이 정식으로 등장한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슬립낫이 선사하는 분노의 익스트림 메틀은 여전히 자극적이다. [Antennas To Hell]은 그 역사를 단숨에 요약해주는 최상의 가이드다. 데뷔 앨범 [Slipknot]을 다 듣고 난 뒤 느꼈던 강력한 자극은 이 베스트 앨범을 모두 다 듣고 난 뒤에도 동일하다.
2012년 7월. 한경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