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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rpions - Moment Of Gl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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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만든 이 앨범은 외형상 기존에 범람하던 크로스오버 앨범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표한 히트곡들과 두 곡의 신곡, 두 곡의 연주곡으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독특한 세계로 팬들을 인도한다. 총 10곡으로 구성된 본작에서 스콜피온스는 역시 그들답게 전체적 사운드를 리드하고 있다. 신곡이나 연주곡에서조차 스콜피온스가 만들어 놓은 틀에 오케스트라가 현악기를 가미해주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이미 기존 록 밴드들의 클래식 협연 앨범에는 오케스트라와 밴드가 대등한 관계에 있거나 오케스트라가 사운드를 리드해나가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아왔다. 하지만 기본 골격이 록인 음악은 그 특성상 오케스트라가 앞에 나서면 당연히 유치해지게 마련이고 이는 단순한 음의 조합은 클래식 악기의 음색과 어울리지 않음을 증명해주었다.
이미 여러 그룹들이 거쳐간 시행착오를 당연히 알고 있는 듯 이들의 앨범에서는 단점으로 지적될 만한 사항이 상대적으로 적다. 한마디로 오케스트라와 록 밴드가 넘어서면 안되는 적절한 선을 유지하며 오로지 훌륭한 융합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이 앨범에서 주목할 만한 사항은 두 곡의 연주곡에서 들려주는 록과 클래식의 뛰어난 협연인데 지금까지의 스콜피온스를 생각하던 팬들에게는 다소 의외의 충격을 선사할 것으로 확신한다.
독특한 구성을 지닌 이들의 대표곡 Hurricane 2000은 명곡 Rock will like a hurricane의 2000년 오케스트라 버전이다. 2000년 엑스포 공식 주제가로 지정된 Moment of glory는 본작에만 수록된 신곡으로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웅장한 분위기가 기막히게 어우러진다. 전형적인 스콜피온스 풍의 감미로운 멜로디와 현대적인 리듬이 편안함을 준다. 처절한 멜로디로 이미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Send me an angel은 이탈리아의 영웅 주케로와 함께 듀엣으로 들려주어 이채를 띤다. 독일 통일 때 진가를 발휘한 명곡 Wind of change도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연해 더욱 서정적으로 들린다. 오케스트라와의 본격적인 협연을 알리는 연주곡 Crossfire는 날카로운 기타 연주와 부드러운 오케스트레이션의 조화가 아름답다. 이어지는 연주곡 Deadly sting suite는 7분이 넘는 시간 동안 극적으로 전개되는 록과 클래식의 협연을 통해 앨범에서 가장 숨막히는 하이라이트를 제공한다. 특히 중반부 템포 체인지 이후 전개되는 드라마틱한 연주는 그 동안 생각했던 스콜피온스 이미지에 새로운 전환점으로 작용한다.
여성 보컬리스트 린 리에타와 함께한 신곡 Here in my heart는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고 두 말이 필요 없는 명곡이자 대표곡 Still loving you로 이어진다. 역시 중반기 대표곡인 Big city night은 빠른 템포의 단순한 곡임에도 오케스트레이션이 잘 어울린다. 초기 히트곡인 Lady starlight은 특이하게도 도입부에 인도 악기 시타가 등장해 잔잔한 현악기와 천상의 조화를 이룬다.
클래식과 록이 장르를 허물고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 동안 여러 그룹들이 시도했던 앨범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하지만 스콜피온스의 본작은 그러한 우려를 씻어버리고도 남을만한 좋은 결과를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 과연 노장의 연륜과 음악성은 무시할 수 없는 막강한 파워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