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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Lost - It's Not Me, It's You!

노래를 삼키는 굉음
스웨덴을 넘어 유럽전역으로 뻗어나가는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어둠의 멜로디
포스트록 밴드 피지 로스트(pg.lost)의 씬을 뒤흔든
It's Not Me, It's You!(2008)

장르의 구분, 혹은 신조어 개발 같은 것이 평론가들에겐 편리하고 획기적일지 모르겠다만 가끔은 좀 바보같아 보인다. 얼터너티브가 꽤나 급속도로 메탈씬을 잠재웠음에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큰 '대안'이 아닌 그저 흘러가는 유행이었듯, '포스트록' 또한 록 이후의 어떤 새로운 움직임이 아닌 아트록 만큼이나 지루한 하나의 클리셰 과정을 답습해나가고 있다. 레이첼스(Rachel's)나 토어터즈(Tortoise), 혹은 트랜스 앰(Trans Am) 같은 팀들이 소위 '포스트록'으로 분류됐었을 당시에는 그 영역의 광범위함은 물론 꽤나 그럴듯한 용어였고 실제로 록 '이후'의 어떤 징후처럼 다가오곤 했다.

아무튼 이 용어는 점차 정형화 되어가면서 이상하게도, 뭐 모과이(Mogwai)나 갓스피드 유 블랙 엠퍼러(Godspeed You! Black Emperor)와 같은 연주 중심의 록(인스트루멘틀 록이라고도 통칭되어진다.)을 하는 후예들을 일컫는 말로 고정됐다. 이 노래들은 모조리 정과 동, 멜로디와 굉음 사이를 오가는 기타의 중첩, 그리고 노스 페이스 히말라야 모델을 입고 눈보라 치는 험준한 산악지대를 등정하는 것 같은 고난의 절정으로 점차 진입해 들어가면서 클라이막스를 맞는다. 그러니까 이런 전개는 한국에서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오는 R&B 가요 풍의 곡 막바지에 워우워어~하면서 온갖 기교와 감정과잉의 방식으로 절정으로 돌진해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때문에 여기서 또 한번 궁금해지는 것은 과연 이런 음악들이 어떤 연유로 '포스트'라는 말을 하사받게 됐냐는 대목이다. 보컬이 없다는 점? 정말 그런 이유에서라면 '이후(Post)'라는 표현이 민망할 정도로 옛날에도 넘쳐났다. 벤쳐스(Ventures), 딕 데일(Dick Dale) 등등.

공간계 이펙터와 강렬한 디스토션을 이용해 소리의 층을 쌓아가는 과정, 혹은 톤도 밴드마다 그리 큰 편차는 없는 편이었다. 유명한 포스트록 밴드들의 잘 모르는 곡들 몇 개를 섞어놓고 한번 실험해 보시라. 오히려 이런 음악을 듣다가 필 스펙터(Phil Spector) 류의 '월 오브 사운드'를 들으면 더 놀랍곤 했다. 지금 우리는 뭔가가 죽어가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대가 변해가는 것을 보고있는 것일 수도. 다음 타자는 또 뭐가 될까? 뭐 일본에서 줄곧 쏟아져 나오는 좀 더 복잡한 전개로 구성시켜낸 포스트록의 실용음악 전공자 버전 같은 것들?

아무래도 안티테제로서 존재하던 장르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하나같이 포스트록이라 분류되는 밴드들은 포스트록을 듣지 않는다거나, 포스트록이 뭔지에 관심이 없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KBS 탑밴드 같은 프로그램에 응모를 하는데, 프로필에 자신들이 하는 음악을 두고 손수 '포스트록'이라고 써놓으면 모양새가 엄청 촌스러워지는 것 같은 이치였다. 뭐 생각해보니 과거엔 하이브리드나 핌프 록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진 장르들도 있긴 했던것 같다. 펄 잼(Pearl Jam)의 스톤 고사드(Stone Gossard)는 '그런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자신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그런 얘기'는 도대체 누가 만들어내는 건가?

pg.lost

마찬가지로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포스트록으로 분류되는 것에 대해 밋밋하게 반응했던 피지 로스트(pg.lost)는 스웨덴의 항구도시, 그리고 화학공업의 중심지인 노르셰핑에서 2004년도에 결성됐다. 스톡홀름이나 예테보리같이 잘 알려지거나 큰 도시는 아닌데, 때문에 정작 스웨덴 씬 자체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한다. 비포 유 기브 인(Before You Give In)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시작했지만 멤버가 교체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고정됐다. 인터뷰에 의하면 원래 처음부터 피지 로스트로 하려 했었다는데, 비포 유 기브 인이 덜 추상적이고 기억하기도 쉽기 때문에 첫 공연 때 이 이름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특정한 뜻으로 확정 지어진 이름은 아니었고, 보통 'pg'는 'page'로 스스로 소개하기도 한다. 2005년 무렵 셀프타이틀 데모 EP를 발매한 이후 [Yes I Am]이라는 EP를 공개했고, 데뷔작 [It's Not Me, It's You!]를 2008년도에, 그리고 2009년도에는 [In Never Out]을 발표하면서 씬의 어떤 정점에 올랐다.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높은 평가를 받았던, 뮤(Mew)나 뮤즈(Muse)를 연상시키는 로맨틱한 3인조 록 밴드 에스큐 디바인(Eskju Divine) 출신의 두 멤버 마티아스 바트(Mattias Bhatt: Guitar)와 크리스티앙 칼슨(Kristian Karlsson: Bass/ Vocal)을 중심으로 밴드가 결성됐다. 마티아스 바트의 경우 에스큐 디바인에서는 기타가 아닌 드러머로써 활동했었는데, 그들이 이전에 속했던 밴드 에스큐 디바인에는 기타 대신 피아노 멤버가 존재했고, 그럼에도 충분히 록킹하고 충동적 표현들로 무장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멤버들인 구스타프 앨름버그(Gustav Almberg: Guitar)와 마틴 헤르트스테드(Martin Hjertstedt: Drum) 또한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고 한다.

이들은 매 인터뷰마다 재미로 밴드를 결성했다 강조하고 있는데, 사실 이전에 했던 밴드에서의 실험적 야심을 채우기 위해 시작한 것 같다는 인상을 줬다. 앞서 얘기했듯 포스트록이나 영향에 관해서는 가급적 직접적인 얘기를 하지 않는 편이었다. 우울한 두 대의 기타의 섬세한 트레몰로, 그리고 아름다운 굉음 같은 특징은 동종업계의 익스플로전스 인 더 스카이(Explosions In The Sky)나 일본의 모노(Mono), 캐스피안(Caspian), 혹은 같은 북유럽 출신인 엡파토리아 리포트(The Evpatoria Report) 등을 언급할 수 있을 것 같다. 인디 할다(yndi halda), 해먹(Hammock), 디스 윌 디스트로이 유(This Will Destroy You) 등의 대표적인 후발주자들 사이에 피지 로스트의 이름 역시 항상 함께 거론되곤 했다. 아무튼 밴드는 2010년 무렵 drop-d.ie라는 웹진과의 인터뷰 당시 현재 자신들이 듣는 음악의 목록을 나열했던 바 있었다. 참고 바란다.

Martin Hjertstedt
Mutiny Within - Mutiny Within
Opeth - Watershed
Copeland - You are My Sunshine

Mattias Bhatt
Beach House - Teen Dream
Broken Social Scene - Forgiveness Rock Record
Kidcrash - Snacks

Gustav Almberg
Jay Reatard - Watch Me Fall
Villagers - Becoming a Jackal
Adebisi Shank - This is the Second Album of a Band Called Adebisi Shank

Kristian Karlsson
Black Keys - Brothers
Radiohead - Ok Computer
Queens of the Stone Age - Rated R

밴드에겐 꽤나 드문 사례가 하나 있었다. 바로 어떤 사람이 이들의 데모 음원을 자신의 곡이라고 속여 레코드 회사로 보내면서 발매까지 진행됐던 일화였다. 본격적인 레코딩을 하기 이전부터 들을만한 곡들을 써왔던 지라 이런 일이 벌어졌던 모양인데, 정작 밴드는 이에 대해 크게 생각하고있지 않고있다고 밝혔다. 아무튼 2007년도에 데뷔 EP [Yes I Am] 이후 또 다른 4 피스 포스트록 밴드의 등장을 알리면서 이쪽 팬들을 본격적으로 끌어 모으기 시작한다.

It's Not Me, It's You! (2008)

2008년도에 데뷔작 [It's Not Me, It's You!]를 공개했다. 슈게이즈의 감미로운 도취감과 내성적이면서도 시각적인 사운드를 포괄하는 사운드스케이프를 완성시켜내면서 사람들을 압도해갔다. 기타가 만들어내는 절묘한 분위기와 하모니, 그리고 격정적이고 압도적인 리듬으로 표현되어진 이 서사시는 포스트록 팬들에겐 또 하나의 아름다운 한 장으로 기록될 만했다. 뭐 포스트록 밴드답게 곡당 6분대 아래의 러닝타임이 없으며, 세 곡은 십분을 상회하면서 곡 마다 꽤 긴 시간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데뷔작은 토마스 에릭슨(Tomas Ericsson)이 공동으로 프로듀스했다.

2분 여의 퍼즈톤 예열 이후 처음부터 꽤나 일관되게 질주해나가는 11분짜리 트랙 [The Day Shift]로 앨범의 시작을 알린다. 소리의 여백이 돋보이는 우울한 인터루드-그래도 6분이다-인 [Head High], 그리고 역시 서서히 고조되어가는 멜랑꼴리한 무드를 지닌 [Maquina]에서는 첼로 연주 또한 포함되어 있는데, 이 두 곡에서 첼로는 꽤나 적절하게 어우러져있는 편이다. 비교적 빠르고 요란한 리듬파트가 두드러지는 [Pascal's Law], 북유럽 밴드 특유의 차가운 서정미가 돋보이는 [Jonathan], 그리고 중간에 보컬파트 또한 들을 수 도 있었던, 마치 시겨 로스(Sigur Ros) 류의 천상의 분위기를 유지한 채 서서히 전진해 나가는 마지막 곡 [Siren]을 끝으로 본 편이 마무리된다.

국내반에서는 보너스 트랙 또한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일본반과 마찬가지로 일전에 언급했던 이들의 EP [Yes I Am]에 수록된 곡들이었다. 딜레이 걸린 트레몰로로 전형적인 시작을 알리는 고양감으로 가득한 [Yes I Am], 어둡지만 서정적인 아르페지오로 달려나가는 [Kardusen]의 두 곡 또한 본 작에서 감상할 수 있겠다.

공간계 페달들을 이용한 깊이있는 기타 앙상블이 서정적 멜로디를 연주해내고 있지만, 라이브에서는 꽤나 공격적인 비트들이 유독 펼쳐진다고 한다. 스웨덴식 소리의 물결은 이렇게 하나의 드라마로써 기분좋게 상승해나간다. - 한상철(파스텔 문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