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그로테스크 트래블러 (The Grotesque 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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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속의 빈 곳으로 - 윤여문의 시선, 그리고 이야기
그는 여행자이다. 여행자의 이야기 속에는 지친 몸을 끌며 낯선 세상을 떠돌아온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먼 길을 걷는 시간 속에서 마주쳐야 했던 죽음과 고독의 상처가 아련하기 마련이다. 첫번째 앨범 [Images & Memories], 두번째 앨범 [Crossing the Line]을 거치는 동안 윤여문이 들려준 이야기는 그의 성장사이자 상처받은 영혼의 아픔과 외로움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길은 다시 길을 내었고, 그 여행의 풍경 속에 이번 앨범 [Disappear in the Dark]이 놓인다.
여행자는 풍경을 보며, 그 풍경이 하늘과 산, 대지, 바다 같은 자연일 때는 행복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의 삶은 자연을 잃어버렸다. 도시화와 물신주의로 인간 주체와 세계 사이의 상호작용이 붕괴되었고, 오늘날의 인간은 자연과 분리된 하나의 관조자로서만 자연을 보고 있다. 윤여문이 바라보는 풍경도 자연과 결별되어 있다. 그의 눈에 비친 풍경은 풍요롭고 안락한 자연이 아니라, 소외되고 원자화된 환경 속의 인간들, 사람과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인간답고 진정한 경험을 갖지 못한 삶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그는 슬픈 여행자이다.
그의 시선은 마치 다큐멘터리의 카메라 앵글처럼 우리의 삶을 들여다본다. 슬픈 여행자의 눈에는 사람이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과 억압,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타자화하고 소외시키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얼굴들이 보인다. 인간의 울음, 그 태초의 고통으로부터 시작된 우리의 삶은 비명을 지르듯이 내처 달려나가고 있으며, 우리를 품어 줄 수 있는 평온한 세계가 그 어디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모성의 원초적 공간을 잃어버리고, 타인과의 소통은 좌절된다. 윤여문의 음악은 그 얼굴들을 응시하고, 이야기한다.
이번 앨범의 음악들은 모두 다르지만 하나인 이야기이다. 기차 소리, 아이의 울음, 여자의 비명, 파도 소리 같은 효과음들이 환기시키는 이미지는 여행자의 시선 속에 가시화된 풍경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풍경은 파편적인 장면으로 분할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를테면 윤여문은 풍경 속의 빈 곳으로 그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가장 절실하고 고집스럽게 들려주고 있는 셈이다.
윤여문의 음악에는 우리의 삶이 직면하고 있는 아픔과 슬픔이 있다. 비록 그의 음악이 그러한 삶의 고통을 모두 치유해 주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의 음악에서 위로 받는다. 자연과 결별되어 있는 그의 시선이 자연음을 통해 위로의 손길을 내밀고 있음을 보라. 예술의 근원에는 교감이 있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나누는 농밀한 어울림에서 우러나오는 향기와 소리가 예술을 이룬다. 이를 두고 G. 루카치는 천공의 불빛과 내면의 불꽃이 서로 뚜렷이 구분되지만 서로에 대해 결코 낯설어지는 법이 없다고 했다. 음악 역시 이러한 교감의 세계 속에서 영혼의 모든 행위가 의미로 가득 차게 될 것이며, 윤여문의 음악 역시 그러하다.
그리하여 윤여문의 음악은, 길이 사라진 풍경 속에서 길을 찾는 여행자의 노래일 것이다.
강상대(단국대 교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