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록과 힙합 음악의 만남은 이제 더 이상 얘깃거리가 되지 못한다. 십수년전 Run DMC, Public Enemy가 했던 시도들을 들먹거린다는 것은 구차하고도 장황한 설명이 될 것이다. 10년전 이내의 사건들로만 축소시켜 살펴보더라도 록과 힙합을 아우르는 환상의 복식조로 꾸며진 영화 "Judgement Night" 사운드트랙을 필두로 두 장르의 교차점 혹은 틈을 파고 드는 분주한 작업은 꾸준히 모색되어 왔다. 연주하는 랩 그룹 Beastie Boys, The Roots와 Red Hot Chili Peppers의 가교 역할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업적들이다. 하지만, 그 접목이 심화될수록 두 장르 속에서는 미묘한 고민이 발생하게 되었다. 높은 앨범 세일즈와 사회적인 파급효과로 승승장구하던 힙합 뮤지션. 하지만, 대형 페스티벌의 무대는 그들에게 너무나 높은 벽이었다. 공격적인 무대 매너와 굉음에 가까운 사운드를 품어내는 록 밴드들과의 경쟁력에 있어 그들의 기존 클럽 스타일의 방식들은 너무나 힘없이 느껴질 뿐이었다. 역시 록 밴드들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새로운 메시지 전달 방식으로 랩을 선택했다지만 전문 힙합 뮤지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라임과 플로우는 듣는 이들로 하여금 피곤하게 만들 뿐이었다. 이 즈음 새로운 음악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전문 래퍼를 앞세운 록 밴드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Rage Against The Machine, Limp Bizkit을 필두로 많은 밴드들이 힙합적인 비트에 하드한 사운드, 디제잉을 더하며 양 장르의 팬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랩 메틀, 핌프 록, 랩 코어, 얼터너티브 힙합 등 다양한 명칭으로 세분화되며 어떤 하나의 군을 이루게 되었는데, Insane Clown Posse, Kottonmouth Kings, Kid Rock, Downset, 311, Methods of Mayhem, Snot, Dislocated Styles, (hed)Pe, Jimmie's Chicken Shack 등이 바로 그 대표적인 인자들이다.
본작의 주인공 크레이지 타운은 앞서 소개한 계열의 밴드들 중에서도 힙합과 하드 사운드 양자에 정통한 래퍼를 두명이나 보유한 제대로된 대표주자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속한 활동을 시작한 생짜 신인으로 알려져 있는 크레이지 타운이지만, 사실 주축 멤버들의 커리어를 살펴보자면 10년 이상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베테랑 밴드라 할만하다. 밴드의 한축을 담당하는 Bret "Epic" Mazur은 아버지가 빌리 죠엘의 메니저를 했던 관계로 대중음악과 가까운 유년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원래 뉴욕 출신이던 그가 래퍼로의 길을 결심한 계기는 LA로 이주하면서 부터라고 하는데, 이 즈음 고등학교 시절 많은 힙합 소년들과 어울려 다니며 자연스럽게 그 문화에 빠져들게 되었다. 몇 년 후 'Pop Goes The Weasle'로 알려진 백인 3인조 그룹 3rd Bass의 멤버 MC Search(훗날 Gangstarr를 발굴한 제작자로 활약한 바 있다)의 솔로 앨범에 참여한 것이 인연이 되어 MC Lyte, Bell Biv Devoe, Sheena Easton 등의 앨범 작업에도 인연을 맺게 됐다. 크레이지 타운의 다른 한축을 맡고 있는 Shifty Shellshock(최근엔 Seth Binzer Shifty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역시 만만치 않은 인생역정을 가지고 있다. 롤링 스톤즈의 라이브 다큐먼터리 무비 'Ladies and Gentlemen, The Rolling Stones'의 디렉팅을 맡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음악과 친숙했던 그는 멕시코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비스티 보이스의 카피 밴드를 시작으로 힙합 스타일의 데모 음반을 제작한 경험이 있었다(훗날 테크노 뮤지션 Paul Oakenfold의 음반에도 참여했을 정도로 다양한 음악에 관심이 꽤 넓었던 편이라고 한다). LA에서 만난 그들은 서로에게 N.W.A, Cypress Hill, ICE-T, The Cure라는 음악적 관심사와 성장 배경이 비슷하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의기투합하여 힙합 팀을 결성하게 된다.
랩만으로는 자신들의 스타일을 표현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던 이들은 비로소 크레이지 타운이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는데, Epic과 Shifty를 위시하여 Doug"Faydoedeelay"Miller(bass), Rust Epique(guitar), Anthony"Trouble"Valli(guitar), DJ A.M.(turntables), James JBJ Bradley J(drums/비스티 보이스의 "Check Ya Head" 앨범에 참여한 바 있다) 등 7인조 라인업으로 꾸며지게 되었다. 폭발적인 무대 매너와 신인답지 않은 깔끔한 사운드로 주목받은 이들은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데뷔앨범 녹음에 들어가게 됐는데, 친구이자 Orgy, Coal Chamber 등의 앨범에도 참여했던 Josh Abraham이 프로듀서를 담당해줬다.
크레이지 타운의 성공은 히트 싱글 한 장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1999년 초 데뷔 앨범 "The Gift Of Game"이 발표됐을 당시 두장의 싱글 'Who The Fucking Is Crazy Town', 'Toxic'을 발표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2년이나 시간이 지나 발표된 세 번째 싱글 'Butterfly'는 크레이지 타운의 인생을 뒤바꿔놓은 의미심장한 카운터블로우였다. 선배격인 림프 비즈킷, 콘도 이루지 못했던 싱글 차트 1위의 염원을 이뤘으며, 앨범 역시 늦바람을 타고 폭발적인 세일즈를 기록했다. 이 당시 갑작스레 찾아든 이들의 인기는 급기야 R&B 라디오 상위권에 진입하는 말도 안되는 사건(?)을 탄생케 했고, MTV를 위시한 미국 전 매스컴의 관심에 초점이 되었다(그 유명한 프로그램 TRL에 출연했을 당시 뉴욕 맨하탄 타임 스퀘어 중심부에 있는 MTV 스튜디오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어 심한 홍역을 치루기도 했다).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름 히트곡 중 하나라는 평가만큼이나 여름 페스티벌을 화려하게 수놓으며 황금의 2001년 시즌을 보내게 된 것이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슈거 레이, POD, 스테인드, 슬립낫, 린킨 파크와의 합동 공연, 하드록의 최대 축제라는 Ozzfest 출연 등은 크레이지 타운의 그레이드를 몇계단 상승시켜준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쉬엄쉬엄 꾸준히 팔려나간 그들의 데뷔 앨범은 결국 전세계적으로 25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성공적인 데뷔 앨범으로 남게 됐다.
오랜 투어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모든 것이 고갈된 크레이지 타운은 재충전을 위해 집으로 돌아와 몇 개월을 은둔하며 후속 앨범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1집의 발매 시점으로 봤을 때 3년만의 새 앨범이란 꽤 적절한 타이밍으로 보여지지만 전작이 뒤늦게 발동 걸렸었음을 감안하자면 갑작스레 준비된 2집이란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번 앨범에 들인 고민과 노력은 데뷔 앨범에 비해 몇 배는 더 컸으리란 후문이다. 크레이지 타운의 오리지널 스타일과는 가장 먼거리에 있던 싱글 'Butterfly'로 아이러니컬하게도 성공을 얻었기에 자신들의 오리지널리티와 음악적 방향성을 이번엔 제대로 설파하고자 실력 이상의 것들을 가다듬어야 했다. 그러기에 'Butterfly'가 가지고 있는 팝적인 요소들은 의도적으로 거세해야 했고, 그 자리에는 공격적인 사운드와 프로페셔널한 기법들이 점철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새 앨범의 프로듀서는 POD나 모터헤드의 앨범에 참여했던 하워드 벤슨(Howard Benson)이 믹싱에는 슈거 레이, 홀 등과 작업했던 크리스 로드알지(Chris Lord-Alge)가 낙점됐다. 거의 한번의 녹음으로 빠르게 진행됐던 전작에 비해 좀 더 많은 조율을 해가며 작업을 이끌어냈으며, 두 보컬리스트 중심의 작업 방식에서 벗어나 밴드 음악에 기본적인 초점을 맞췄다.
미국에서 오는 11월 12일 발매되는 본작은 강한 사운드와 센스있는 멜로디의 조합, 다시 말해 헤비하지만 대중성도 놓치지 않고 있다. 전에 없던 이모어 코어(Emo-Core)적인 파워 팝 멜로디를 선보이고 있으며, 각기 다른 래핑의 주고 받는 인터플레이의 조화속에서도 보컬 하모니스를 잃지 않았다(자신들의 표현대로라면 전작에 비해 노래를 많이 불렀다고 한다). 첫 싱글 커트곡은 'Drowing'. Ozzfest 투어 버스에서 만든 곡으로 갑작스런 성공을 거둔 자신들의 심경을 담았다고 하는데, 기타 리프의 구성과 보컬의 멜로디 진행이 Linkin Park의 그것과 흡사하다. 비교적 젊은피로 수혈된 멤버들의 농익어가는 연주에 다양한 보컬 이펙팅이 더해진 'Decorated', Rivers Cuomo(Weezer)의 기타 솔로가 게스트로 더해진 'Hurt You So Bad', 슬로우+이모어 코어적인 느낌을 살린 'Sorry', Shifty의 레게적인 리즌 앤 라이밍이 빛을 발하는 'Skulls And Stars', 멕시코 랩 메틀 그룹 Molotov의 리프를 차용한 'Battle Cry', 23번과 32번에 숨어있는 소품 형식의 히든 트랙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인 음악적 업그레이드가 확연히 느껴진다.
1집에 비해 보다 주관적인 느낌이라는 멤버들의 코멘트가 있었지만, 다가서기에 그다지 어렵다거나 무리있는 사운드는 아닌 듯 싶다. 아이돌 스타와 힙합 뮤지션들에게만 모든 영예를 쥐어준 채 (스타부재에 허덕이고) 있는 록 씬에 크레이지 타운은 분명 첨병 역할을 할 것이다.
[자료제공: Sony Mus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