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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afur Arnalds - ...And They Have Escaped The Weight Of Darkness

유리보다 투명한 숭고함의 결정체. 급성장을 일궈낸 아이슬란드 국대급 천재 작곡가 올라퍼 아르날즈(Ólafur Arnalds)의 오가닉 크로스오버 레코딩. 전세계가 기다려온 두 번째 정규작. [...and they have escaped the weight of darkness]

아이슬란드가 난리가 났다. 모 음악관련 얘기는 아닌데 다들 알겠지만 화산폭발 때문이다. 에이야피야라예르쿨(Eyjafjallajökull)라는 화산이 활동하면서 이래저래 항공운항이 중지되고 사람들이 대피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 얼음 위의 왕국이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 또한 들려왔다. 아이슬란드를 동경했던 많은 음악 애호가들, 그리고 현지 음악인들의 걱정 또한 이만저만이 아닐텐데 올라퍼 아르날즈(Ólafur Arnalds)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1987년 생인 올라퍼 아르날즈는 아이슬랜드의 수도 레이카비크(Reykjavik)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다양한 친구들을 바탕으로 각양각색의 음악적 경험을 가진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독일의 메탈 밴드 헤븐 셸 번(Heaven Shall Burn)의 앨범 [Antigone]의 [Intro]와 [Outro]를 제공해주기도 했으며 아이슬랜드 하드코어 밴드인 파이팅 쉿(Fighting Shit)과 케레스틴(Celestine)에서는 드럼을 연주하기도 했다. 지금 언급한 각 밴드의 마이스페이스 페이지에 가보면 그가 정말 미친 드러머였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클래시컬한 모양새를 바탕으로 익스페리멘탈/엠비언트를 접목시키면서 이 씬의 신성에서 어느덧 중심인물로 위치가 바뀌었다. 황량한 아이슬란드의 풍경, 혹은 핵전쟁이후 아무도 없는 세계를 상상하게끔 만드는 공허한 아름다움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피아노와 현악기의 멜로디를 다른 여러 복잡한 요소들과 섞어내면서 자신만의 바운더리를 구축해냈다. 대부분의 작업은 집 내부의 자체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졌다는데 어린나이에 무서운 재능을 보이면서 동종업계의 잘 나가는 횽들에게 이쁨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요한 요한슨(Jóhann Jóhannsson)과 함께 아이슬랜드의 현재 기온을 비교적 적확하게 캐취해내고 있는 인재로 분류되고 있다. 얼음의 세계에서 만들어진 듯한 맑은 울림의 현악기와 일렉트로닉한 요소들의 충돌은 과연 아이슬랜드를 비롯한 북유럽권 음악팬들의 필청이 요구되곤 했다.

낯뜨겁지만 레퍼런스를 좀 더 읊어보면 다음과 같다. 골드문트(Goldmund), 피터 브로데릭(Peter Broderick), 대니 노르버리(Danny Norbury), 실뱅 쇼보(Sylvain Chauveau), 니코 멀리(Nico Muhly), 막스 리히터(Max Richter), 그리고 덴마크의 에프터클랭(Efterklang) 등등...

실내악에 일렉트로닉을 접목한 2007년도 데뷔앨범 [Eulogy for Evolution]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 오스트리아, 스위스, 그리고 영국 등지에서 본격적인 열풍이 시작된다. 또한 그 무렵 시거 로스(Sigur Rós)의 유럽 투어 서포트 아티스트로 발탁되기도 하면서 더욱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2008년도 바비칸 홀에서 펼쳐졌던 올라퍼 아르날즈의 공연은 BBC 라디오 1에서 자일스 피터슨(Gilles Peterson)이 "2008년도 베스트 라이브 세션"으로 꼽기도 했다. 물론 자일스 피터슨은 울트라 디거이기는 하다만 그가 이전에 컴파일해왔던 음악들하고 올라퍼 아르날즈는 분명 다른 색깔을 지녔음에도 그의 공연을 최고로 꼽은 것은 무척 이례적인 사례였다. 홍콩과 베이징, 상하이에서 열렸던 차이나 투어 또한 매진을 기록했다.

2008년도에는 보다 일렉트로닉한 소스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EP [Variations of Static]을 발매한다. 2009년도에는 인터넷을 통해 7일간 자신의 곡을 하나씩 업데이트하면서 이 음원들에 어울리는 사진을 플리커(Flicker)에서 기부받아 아트웍을 완성한 [Found Songs]가 릴리즈되기도 한다. 무료 다운로드로 올려놓은 곡들은 무려 30만 건 이상의 다운로딩을 기록했다. 참고로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만 특별히 올라퍼 아르날즈가 발표한 두 장의 EP [Variations of Static]과 [Found Songs]가 합본형태로 발매됐다.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i Diaghilev)가 설립한 전설의 발레단 발레 루스의 영향을 받아 영국 런던 오페라 하우스의 로열 발레단 총감독인 안무가 웨인 맥그레고르(Wayne McGregor)가 제작한 현대무용극 [Dyad 1909]를 위해 만들어진 동명의 악곡집을 발표하기도 했다. 본 발레공연은 영국 BBC와 여러 유럽 예술채널에서 방송되기도 했다. 우리에게 이런 방식의 기획은 머스 커닝엄(Merce Cunningham)과 시거 로스의 합작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런 식의 복합예술이 이 동네에서는 통과의례 같은건가 싶기도 하다.

…Þau Hafa Sloppið Undan Þunga Myrkursins
시거 로스와의 투어라던가 독특한 방식의 EP를 기획하면서, 그리고 무용극의 사운드트랙을 만들면서 여러가지 아카데믹한 도전과 경험을 거쳐 급성장하고 있는 이 아이슬란드의 젊은 작곡가가 두 번째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충격적인 데뷔작으로부터 3년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아이슬란드 최고의 신인'이라는 타이틀은 어느덧 '아이슬란드 대표 아티스트'라는 타이틀로 바뀌었다. 거진 반년에 한 타이틀씩 발매하는 것 같은데, 비교적 쉬지않고 다작을 하는 편이라 하겠다. 공동 프로듀서로는 뱅 갱(Bang Gang)과 레이디 앤 버드(Lady and Bird)의 바르디 요한슨(Barði Jóhannsson)으로 내정됐다.

올라퍼 아르날즈는 일반인들에게 굳게 닫혀있는 듯 보이는 클래시컬 씬이 클래식에 영향받은 자신의 음악을 통해 그들의 마음이 열리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모 일단 상황을 봤을 때는 성공적인 것 같다. 클래식을 바탕으로 구축된 독특한 세계관은 이번에도 여전하다. 고요하고 섬세한 현악기로 연주되는 투명한 멜로디는 여전히 여러 사람들을 편안하게, 혹은 가슴 뛰게 만들어 줄 것이다.

첫 트랙부터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영롱하고 숭고한 피아노로 시작하는 [Þú ert Sólin (You are the Sun)]에서 템포와 멜로디가 그대로 연결되는 리버브를 머금은 연약한 건반터치가 인상적인 [Þú Ert Jörðin (You are the Earth)], 미니멀한 피아노 연주를 바탕으로 드럼을 통해 좀 더 드라마틱한 감성을 표출해내고 있는 [Tunglið (The Moon)]이 마치 한 파트인 양 이어진다. 감성적으로도 하나의 흐름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단조 멜로디를 통해 슬픔으로 가득찬 소리들을 만들어 내는 [Loftið Verður Skyndilega Kalt (The Air Suddenly Goes Cold)], 비슷한 감성을 제목만큼 ‘여전히’ 이어가는 [Kjurrt (Still)], 그리고 끊임없이 곧바로 전개되면서 낮고 느린 드러밍을 바탕으로 유영하는 스트링 파트와 후반부의 이보우 소리가 인상적인 [Gleypa Okkur (Swallow Us)]의 연작이 앨범의 슬픈 한 축을 담당한다.

[Hægt, Kemur Ljósið (Slowly, Comes the Light)]의 경우 에스테반 디아코노(Esteban Diácono)가 감독한 동화같은 애니매이션 뮤직비디오가 미리 공개되기도 했다. 집안 천장에 매달려있던 장난감 새가 머나먼 여정을 떠나는 내용이 음악의 전개와 그대로 씽크되면서 감동을 줬는데, 휘몰아치는 곡의 다이나믹한 상승감은 사실 본 앨범의 클라이막스이기도 하다. 본 앨범에서 일반 애호가들도 가장 관심을 보일만한 트랙으로 이런 종류의 음악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들어보아야 할 것이다.

슬픈 영화의 에필로그에 등장할 것만 같은 차분한-모 이 앨범에 안 차분한 트랙이 있겠냐마는- [Undan Hulu (From Behind Shadows)], 장엄하게 앨범을 마무리 하는 앨범의 타이틀 트랙 [Þau Hafa Sloppið Undan Þunga Myrkursins (They Have Escaped the Weight of Darkness)]로 대단원의 막이 내려진다. 드럼 사이로 마치 하이햇 소리처럼 사용되는 일렉트로닉 소스들과 마칭을 연상시키는 스네어 롤링, 그리고 심플한 관악기의 배치가 더욱 깊은 여운을 주는 역할을 한다.

이미 높은 주목을 받고있고 앞으로 큰 기대를 걸 수 있는 신진 작곡가의 비범한 도약이다. 언컷(Uncut)지는 "성숙한 북유럽 작곡가의 호화로운 두 번째 정규앨범... 영원하고 숭고하다." 라고, 그리고 클래쉬(Clash)지는 "아이슬란드 최고의 수출품"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제대로 직조된 멜랑꼴리를 가득채운 멜로디와 풍부한 하모니가 세세하게 맞물려있다. 맑은 울림을 가진 우울한 피아노와 현악기가 매끄럽게 용해되어 잊을 수 없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앨범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일관성에 대한 주장을 하겠고 몇몇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전작들에 비해 다양성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확실히 기타와 일렉트로닉한 부분들이 줄었는데, 이것이 점점 성숙해져 가는 과정, 좀만 더 오바해보면 사운드 메이킹 보다는 컴포저로서의 거장들의 모습에 더욱 닮아가려 하는 움직임으로 짐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결과물에 대한 감상은 여러분들이 가진 취향의 몫에 달려있다.

아무튼 현재 스스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은 듯 하다. 안정적인 드러밍이 몇몇 트랙에 포진되어 있고, 밝고 희망적인 멜로디와 무드를 이전보다 적극 수용하고 있다. 이건 모 앨범 제목처럼 그들이 어둠의 무게로부터 탈출하는 광경을 그리려다 보니 그런걸 지도 모르겠다. 아름답고 투명한 사운드에 다이나믹이 더해져 장대한 광경을 만들어내곤 한다.

놀라운 시선으로 가득하다. 전세계, 그리고 한국에서도 이미 두루두루 사랑받고 있기는 하다만 앰비언트, 모던 컴포지션/네오 클래식, 그리고 포스트 록 팬들에게 여전히 애호될만한 한 장으로 완성됐다. 모 매번 쓸 때 마다 남발했던 문구이긴 하지만 이번에도 아이슬란드 특유의 차가운 공기를 머금고 있다. 해야할 말이 이전에 발매된 앨범들의 해설지와 겹치는 것이 사실인데, 아무튼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훌륭하게 소화해내고 있는 것 같다.

여러 장르와 다양한 기술에 정통한 올라퍼만의 사운드가 창조되는 한 장이다. 이 획기적인 작품집에서도 그의 재능이 폭발하는 순간을 엿볼 수 있다. 극도의 집중력을 바탕으로 스토리성을 가진 클래시컬한 악곡들에 미묘한 전자음의 실험을 도입하면서 완결된 이 감동의 순간들은 순조롭게 귀로 밀려온다. 한정된 공간에서 전개되는 엄숙하고 아름다운 프레이즈가 사람들의 가슴속에 스며든다.

결국 처음 시작했던 얘기를 다시 꺼내보면, 아무튼 지금 아이슬란드가 화산폭발로 난리가 났다. 모 과테말라도 그렇고 백두산도 위험하고 이러다가 정말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지구가 박살이 나서 인류가 사라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디스커버리 채널의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지구가 멸망해도 인간이 전송해왔던 라디오 시그널들은 우주공간을 계속 떠돈다고 한다. 지구와 인류가 개판이 난 이후, 우주를 외롭게 유영하는 라디오 시그널에서 이 음악을 수신해낸 외계 생명체는 아마도 아이슬란드의 풍경이 어땠을 것이라는 짐작 정도를 하게 될 것이다. 앨범의 수록곡 제목들을 찬찬히 훑어보면 태양, 달, 지구, 공기, 그리고 빛과 어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단순히 아이슬란드 뿐만 아니라 지구행성에서 존재했던 지적 생명체들이 어떤 심상을 가지고 자신들의 자연환경을 바라보았는지에 대한 시선 또한 인지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인간에게 지구는 아직까지는 푸르고 아름다운 행성이다. 자연에 수긍하고 더불어 살아야 인간은 생존해서 계속 이런 음악을 만들고 들을 수 있을 것이다. 2PM의 간담회에 등장했던 어록이 무척 적절해 이를 빌려 글을 마무리를 지을까 한다.

“그렇습니다. 마음과 마음, 그게 제일 중요한 거죠. 믿음이라는 거... 세상에는 저희만 살아가는 게 아니잖아요. 다른 나라, 그리고 다른 민족, 다른 국가, 하나의 생물, 생명체... 저희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희만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한상철(불싸조 http://myspace.com/bulssaz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