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T - Gangs Of New York (갱스 오브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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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들 중에는 뛰어난 재능과 감각으로 이미지와 음악의 충돌을 멋지게 계산해 낼 줄 아는 이가 있다. 스탠리 큐브릭, 올리버 스톤, ?틴 타란티노는 물론이고, 재즈 마니아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우디 알렌이 그렇다. 그리고 둘째가라면 서러운 감독, 마틴 스콜세지 역시 음악과 내러티브의 관계를 가장 완벽하게 끌어내는 감독 중 하나. 그런 그의 이력을 음악을 통해 살펴볼까? 그는 록 다큐멘타리인 ‘우드스탁’에서 편집과 조감독을 맡았고, 록 그룹 더 밴드의 고별공연을 담은 다큐멘타리인 ‘라스트 월츠’를 통해 야심적인 스타일을 선보이기도 했다. 77년에는 뮤지컬 ‘뉴욕, 뉴욕’으로 재즈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야심을 토로했고, 70년대 록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비열한 거리’, ‘컬러 오브 머니’, ‘좋은 친구들’, ‘비상근무’의 사운드트랙을 풍요롭게 채웠다. 특히 장르와 시대를 넘나드는 그의 음악감각이 최고로 빛난 작품이 ‘카지노’인데, 그 사운드트랙에선 블루스와 소울, 재즈와 발라드, 록은 물론이고, 클래식과 예전 영화음악까지 모든 장르의 음악을 아우르며 음악의 전시장을 펼쳐냈기 때문이다. 그밖에 ‘분노의 주먹’과 ‘순수의 시대’에선 클래식한 감각을 피력했고, ‘택시 드라이버’에선 위대한 작곡가 버나드 허먼과,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 피터 가브리엘과, 그리고 ‘쿤둔’에선 미니멀리스트 필립 글라스와 호흡을 맞추며 최상의 팀웍으로 스크린에 생명력을 더했다. 그리고 그것은 신작 ‘갱스 오브 뉴욕’에서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올 베를린 영화제 폐막작이자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감독상의 영예를 안겨준 영화 ‘갱스 오브 뉴욕’은, 마틴 스콜세지가 25년 동안 구상했던 대형 서사물. 그러니까 2년 6개월의 제작 끝에 결국 그의 나이 예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오랜 숙원을 풀게 된 것이다. 이 영화는 뉴욕 갱들의 연대기인 허버트 J. 애스버리의 동명 서적이 원작이 됐고, 도끼와 칼이 치열한 삶의 도구였던, 그만큼 역사상 가장 혼탁하고 참혹스러웠던 19세기 뉴욕을 배경으로 파란만장한 복수의 드라마를 펼쳐낸다. 영화의 핵심은 아일랜드 출신 이민자들과 앵글로색슨 토착민들 사이의 세력 다툼. 그 과정에서 숨을 거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16년의 세월을 견딘 주인공 암스테르담과 비열한 힘으로 세상을 제압한 도살광 빌의 대 혈투가 둔탁한 고통을 전해준다. 특히 암스테르담은 복수를 위해 빌의 오른팔이 되는데, 그에게서 아버지의 체취를 느끼고 방황하는 풍경은 짓궂은 운명의 장난을 연상케 하는 비극의 드라마로 손색이 없다. 어쨌든 그 참혹한 피의 대가로 뉴욕이 새롭게 재건되는 과정을 비감 어리게 담아낸 만큼, 이 영화는 뉴욕에 관한 특별한 애정을 지닌 노장 뉴요커 감독의 뉴욕 창세기라 할 수 있겠다. 영화의 마지막 나레이션에서 이러지 않았던가. "얼마나 많은 피들이 이 도시를 다시 세우기 위해 뿌려졌던지 간에, 한때나마 우리가 여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 탁월한 카리스마로 좌중을 압도하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명연기를 비롯해, 작년 한해 스필버그 감독의 ‘캐치 미 이프 유 캔’까지 두 작품을 통해 거장들과 호흡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그리고 카메론 디아즈는 물론, 리암 리슨, 블렌다 글리슨과 같은 명배우들의 협연이 1억 300만 달러라는 미라맥스 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올린 이 영화에 생명력을 더한다.
그렇다면 음악은? 물론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작품답게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스크린 위를 물결치고 있다. 게다가 이번엔 중국의 경극(Bejing Opera) 음악까지 담겨있으니, 그 다채로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겠다. 우선 이 영화의 음악은 작곡가 하워드 쇼어(Howard Shore)가 맡았는데, 그는 작년 영화 ‘반지의 제왕’으로 아카데미 작곡상을 수상한 캐나다 출신의 뮤지션. 그는 사운드트랙 속에서 세 차례 변주되는 곡 Brooklyn Heights를 통해 부패와 살육으로 소용돌이치던 19세기 뉴욕에 특별한 숨결을 드리운다. 그리고 최근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수상해 더욱 화제를 모으고 있는 곡이 있는데, 그 곡이 바로 영국 더블린 출신의 록밴드 U2가 비감어리게 토해낸 The Hands That Built America. 사실 U2는 빔 벤더스 감독과 손잡고 수많은 영화에 호흡을 드리웠었지만, 이제껏 아카데미에 한번도 노미네이션되지 못했던 만큼 올 시상식에서 U2의 특별한 무대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그밖에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는 이미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 함께 했던 뮤지션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은 Signal To Noise라는 멋진 연주곡을 들려주는데, 이 곡은 영화의 첫 장면, 그러니까 살인자들의 뒷골목, 혹은 지옥의 문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려지는 파이브 포인츠 광장의 혈전 장면에서 배경음악이 됐던 곡이다. 특히 뒷부분의 강렬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발론 신부와 도살광 빌의 처참하고 비극적인 결투에 강렬한 에너지를 드리우고 있는 듯한 느낌.
하지만 앞서 열거했던 곡들을 제외하고 이 사운드트랙에 참여한 뮤지션들의 이름은 퍽 낯설다. 가장 대중적인 감각으로 음악을 선곡했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이력 중에서 단연 예외인 사운드트랙이라 하겠다. 무엇보다 영화의 주요 공간이 되는 파이브 포인츠는 중국, 아일랜드, 프랑스, 독일 등에서 온 이민자들과 그들을 경멸하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한데 뒤섞인 인종의 전시장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다인종으로 구성된 19세기 뉴욕의 풍경을 읊듯 월드 뮤직에 대한 감각이 사운드트랙 곳곳에 살아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할애한 음악장르는 주인공 암스테르담의 고향인 아일랜드의 포크송들. 특히 핀바 퓨리(Finbar Furey)의 흥겨운 아일리쉬 포크곡 New York Girls를 비롯해, 마리아노 드 시몬(Mariano De Simone)의 선율 Morrisons Jig/Liberty, 중앙 아시아 출신의 포크 그룹으로 탁월한 보컬 테크닉을 선보이는 쉬 드(Shu-De)의 데뷔앨범 ‘Voices from the Distant Steppe’의 삽입곡인 Durgen Chugaa, 아일랜드 출신의 포크 여가수 모라 오코넬(Maura OConnell)의 Unconstant Lover, 빅토리오 쉬보니(Vittorio Schiboni)를 위시로 네 뮤지션들의 합주가 돋보이는 흥겨운 연주곡 Devils Tapdance 등은 모두 예전 민요를 편곡한 곡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그 뿐인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에 몽환적인 음률로 우리를 유혹했던 뮤지션 조슬린 푸크(Jocelyn Pook)는 Dionysus를 통해 애도를 표하듯 비통함을 읊고 있으며, 최근 앨범 ‘Fashionably Late’를 발표한 포크 뮤지션 린다 톰슨(Linda Thompson)은 Paddys Lamentation라는 곡을 통해 총성과 혈흔으로 얼룩진 참혹의 현장에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있다. 또한 서아프리카와 아일랜드 음악의 결합, 즉 켈틱 사운드와 아프리칸 리듬의 퓨젼을 선사하는 월드 그룹 아프로 켈트 사운드 시스템(Afro Celt Sound System)은 1996년에 발표했던 그들의 데뷔앨범 ‘Sound Magic, Vol. 1’의 수록곡인 Dark Moon, High Tide를, 2,30년대 주로 활동했던 가스펠 그룹인 실버 리프 쿼텟(Silver Leaf Quartet)은 Gospel Train을, 그리고 파이프와 드럼의 매혹적인 결합을 들려주는 아더 터너와 라이징 스타 파이프와 드럼 밴드(Othar Turner and the Rising Star Fife and Drum Band)의 Shimmy She Wobble에 이르기까지, 정말이지 낯선 음악의 황홀경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례적인, 하지만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기에 충분히 조율이 가능했을 다채로운 음의 성찬. 그 풍요롭지만 생경한 쾌감이 우리를 유혹한다.
(자료제공: 유니버설 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