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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Won) - 3집 / Majesty

트윈 기타와 트윈 베이스로 표현되는 정통 메틀 사운드의 홍수

1990년대 이후 새로운 사조의 락 음악들이 대두되며 탄탄한 기본기보다는 정신과 의욕을 앞세운 많은 뮤지션이 등장했다. 그들은 자신의 위치를 땅속 깊숙이 이동시키며 그 위상을 축소시키고, 클럽문화라는 틀 속으로 스스로를 한정시켰다. 우연의 일치였는지 그렇지 않으면 필연적인 결과였는지, 198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소위 트로이카 시나위, 백두산, 부활에서 파생된 여러 밴드들, 그리고 블랙 신드롬과 블랙홀 등에 의해 짧지만 나약하기 이를 데 없던 대중음악계에 확실한 화인(火印)을 남긴 국내 헤비메틀의 공유 대상이 일반인에서 특정 매니아층으로 축소 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그리고 살아남은 뮤지션들은 가죽 옷과 쇠사슬, 통굽 부츠를 벗어 던지고 앞서 이야기했던 한정된 틀 속에서의 어색하고 불편한 동거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는 이제 막 태어난 미숙아들이 수용된 인큐베이터에, 건강한 육신을 가진 활발한 영혼들의 입에 인공호흡기를 씌워 함께 입원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1990년대 중반 이후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생력을 뺏겨버린 헤비메틀은 수많은 대중을 호령하던 예전의 모습을 좀처럼 찾지 못하고, 그 출발점이나 음악적 특성과는 무관하게 협소한 공간과 한정된 수용층 안에서 안주하며 자신들의 입에 채워진 인공호흡기를 이제는 정말 생명 유지 장치로 사용해야할 처지를 맞은 듯 보였다. 꾸준하게 활동하던 밴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튜닝 음이 일반인들의 귀에 들리기에는 그 소리가 너무도 작았다. 1990년대 후반 등장한 밴드들은 이렇듯 스스로를 구속한 원죄 속에서 그 출발을 맞이했고, 1998년 8월에 결성된 밴드 원(WON) 역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원은 주어진 현실의 벽을 탓하고 주저앉기 보다는 지하의 클럽으로 옮겨진 무대를 오히려 자신의 확실한 활동 거점으로 삼고, 한 주에 3회 이상의 공연을 소화해 내는 왕성한 스테미너를 보여주며 순식간에 국내 메틀씬의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예전과 달리 일반인들에게 노출되기 어려운 환경에서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당시 PC 통신 동호회 회원수 15,000명이라는 숫자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 공연을 통해 흩어져 버렸던 팬들을 직접 찾아갔는지를 알려주는 좋은 지표라고 하겠다. 하지만, 결성 이듬해인 1999년, ‘무지개’가 수록된 첫 번째 앨범 [Rock Complex] 발표와 함께 쉼 없는 공연을 펼치던 이들은 2003년 이후 뚜렷한 활동을 벌이지 못했고, 2008년 두 번째 음반 [모래시계]를 발표할 때 까지 2006년 컴필레이션 [Another World]에 참여한 이력을 제외한다면 그 시작에 비해서 너무나 축소된 활동을 보여줬던 것 역시 사실이다. 원 역시도 트렌드의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고질적인 멤버의 문제 역시 활동에 발목을 잡은 이유였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정규 두 번째 음반인 [모래시계]는 여러모로 밴드에게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음반이었다. 9년 만에 발표되는 정규음반이라는 점 이외에도, 유동적이던 멤버의 라인업을 트윈 기타와 트윈 베이스라는 독특한 편성으로 확정시키며 자신들의 새로운 시도를 시험대에 올려놓는 음반이었기 때문이다.

출발선에 함께 서 있었지만, 지금은 각자의 길로 뿔뿔이 흩어진 예전의 동료들에게 다시금 손을 내미는 ‘모든 철새는 죽어서 페루로’를 비롯해 오래도록 준비했던 양질의 음원들이, 이번에는 발매 초반 앨범 자켓의 문제에 후반에는 다시금 찾아온 멤버간의 갈등으로 그 빛을 발하지 못했다. 하지만 원은 이에 굴하지 않고, 현 시대에 다소 사라져 가는듯한 정통 헤비메탈을 사랑하는 음악적 선택의 의지를 표현한 밴드명(Win Of New)의 의미와도 같이 2년이 지난 지금 또 한 장의 음반을 선보인다. 새로운 음반에서는 사혼과 이프리트에서 활동했던 기타리스트 이교형을 정식 멤버로 참여했고, 또 한명의 기타리스트 변세민과 드러머 이진호가 공석인 자리들을 메웠다. 특히 두 명의 기타리스트인 이교형과 변세민은 그동안 보컬리스트였던 손창현이 도맡았던 작곡에도 참여하며 보다 넓은 사운드의 스펙트럼을 펼쳐 보인다.

새로운 음반의 타이틀은 ‘Majesty’다. 두 번째 음반에 수록되었던 ‘음악의 신’과 그 맥락을 같이하는 타이틀로, 자신들이 음악을 시작한 동기와 이후 그들의 모습이 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음반 내에서는 어쿠스틱한 연주로 점진적인 몰입을 이끌어내는 ‘Majesty 1막 1장’과 호방한 스타일의 코러스라인과 거침없이 진군하는 삼연음의 진행이 돋보이는 메틀 넘버 ‘Majesty 1막 2장’으로 나뉘어 구체화되고 있다. ‘패배자의 조언’이라는 부제를 가진 오프닝 트랙 ‘마왕’은 포기할 수밖에 없는 꿈속에서 허우적대더라도 가진 꿈을 향해 전진하라는 내용을 꿈을 포기한 자가 포기하기 전과 포기한 후의 두 시점으로 나누어 표현한 가사가 이색적인 곡. 2집에서는 그 독특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던 트윈 베이스기타의 매력은 때로는 육중하게 또 때로는 유영하듯 청자의 감성을 쥐락펴락하며, 총 4대의 현악파트 군이 쏟아내는 사운드의 홍수는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리프를 연주하는 대신 오히려 멜로디 라인을 같은 위치에서 표현하며 현 위의 손가락들이 상호간에 추격전을 벌이는 듯 색다른 긴장감을 유도한다. 또 이는 음반 전체 사운드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장쾌한 기타 리프로 시작되는 ‘Why are You Sorry’는 전 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추모곡으로, 부엉이 바위에 찾아가 당시에 마음이 어땠을 지를 생각하는 내용을 담았다. ‘Time is the Won'과 함께 도입부의 도발적인 피킹 하모닉스로 원초적인 남성의 꿈틀거리는 힘을 표현하는  ‘악몽’은 악몽 같은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규를 표현한 곡으로, 중반부 템포와 조의 변화가 긴장된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든다. 가사의 내용과 같이 절규로 표현되는 손창현의 자신감 넘치는 보컬도 체크 포인트. 끊임없는 자신의 욕심만을 추구하는 가진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라인의 삽입으로 공연 시 무대 위와 무대 아래가 하나 되는 열띤 모습이 연상된다. 첫 번째 앨범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던 ‘무지개’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무지개 2’는 평범한 듯 하지만 청자의 심금을 울리는 소위 1980년대식 정서와 그 감성을 공유하는 곡으로, 일반인들에게도 어렵지 않게 다가가 원이라는 밴드의 이름을 각인시킬 수 있을법한 수작 발라드넘버다. 마치 조 새트리아니의 ‘Satch Boogie’를 떠오르게 만드는 ‘Let's Ruin’과 ‘이방인’은 새롭게 가입한 변세민이 작곡을 담당한 다소 퓨전 성향의 펑키 넘버들.

새로운 앨범 [Majesty] 역시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그 가사의 내용은 물론 사운드에 있어서도 원은 자신이 가는 길이 그르지 않았고, 계속해서 한 길을 가겠다고 외치고 있다. 그리고 그 외침은 이번 앨범을 통해 이들만이 구사할 수 있는 독창적인 사운드로 확실하게 완성되었다. 물론 원이 데뷔하고 10년 이상 고집해온 장르는 정통 헤비메틀이다. 우린 언제부턴가 ‘정통’이라는 단어를 ‘진부한 것’ 혹은 ‘고리타분한 것’으로 치부하며, 최신 트렌드에 민감하지 못하면 혹시 쿨하지 못하다는 비아냥을 듣지 않을까하고 애써 외면하곤 했다. 하지만 최근 해외에서는 뉴웨이브 오브 트래디셔널 헤비메틀(New Wave Of Traditional Heavy Metal; NWOTHM)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온 몸을 강철과 가죽으로 무장시킨 새롭고 젊은 헤비메틀 세력들이 자신의 세를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음악들을 새로운 트랜드라고 찾아 듣는 것도 좋겠지만, 옆길을 바라보지 않고 우리 곁에서 꾸준하게 음악을 들려준 원과 같은 그룹을 재평가 하는 것도 바로 우리의 몫이다. “파도치듯 몰아치는 음악소리 영원히 함께 하겠어”라는 타이틀 트랙의 가사처럼 언제나, 아니 계속해서 더욱 강력한 사운드로 1990년대 중반 이후 한정된 틀 가운데 갇혀버린 우리 헤비메틀의 새로운 미래를 견인하는 이들과 같은 존재가 있으니 말이다.

글 송명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