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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진 - 흩날리던 너 (Scattering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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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를 통한 소통’
탁월한 연주, 작곡 능력을 겸비한 모던 피아니스트 효진
Hyojin EP(미니앨범) [Scattering You]
모던 피아니스트 효진이 2007년 정규앨범 [영혼은 바람이 되어] 이후 짧지 않은 공백을 깨고 미니 앨범을 발표했다. 첫 앨범을 통해 자신만의 이미지를 피아노 선율에 담아내는 능력으로 잃어버린 인간의 감성을 불러일으켜 따뜻한 감동을 만들었던 그녀는 이제 음악을 들으면 이미지가 눈에 그려지는 전혀 색다른 건반의 언어를 만들어 세상에 문을 두드린다.
클래식 피아니스트 모던 피아니스트로 다시 태어나다
호주 멜버른 대학에서 피아노 연주과를 다니며 클래식 음악을 공부했던 그녀는 보다 대중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서 크로스오버 뮤직을 시작했다. 이유는 자신의 음악에 대한 재능을 대중과 함께 공유하며 삶을 살아가는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이후 효진은 방황의 나날을 멈추고 마음을 다잡아 그녀 스스로 음악적 아이덴티티를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녀에게 음악은 이제는 거의 숙명에 가깝다. 전도 유망한 클래식 피아니스트 보다 그녀는 대중과 소통하길 원했던 것이다.
시와 그림을 담아 낸 음악 Scattering You
6곡의 수록곡이 담긴 이번 앨범을 그녀 자신은 Poem Music이라 정의했다. 서정문학을 통해 시인으로도 등단했던 시인의 감수성으로 상상력과 일상의 사건들을 피아노에 그대로 담아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음악을 듣는 동안 머리 속에 어떤 그림이 그려진다면 좋겠어요. 때론 시와 같고, 때론 그림 같고 그런 것들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두 번째 미니 앨범이지만 본 앨범에는 그녀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담겨 있다. 그녀에게 작곡자와 연주자로 영감을 주었던 ‘꿈꾸는 나비’, 지금 이 계절에 딱 들어맞는 ‘흩날리던 너’, 처음으로 만들어 본 소품 ‘옐로우 래그’ 그녀의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들어 있는 것이다.
순수함은 그녀가 가진 최고의 무기
많은 피아니스트가 있다. 재즈, 뉴에이지 등의 각자 모두 자신의 장점을 알리는데 온통 혈안이 되어 있다. 하지만 효진은 정반대를 향해 달려간다. 자신의 장점을 알리기 보다는 정직하고 꾸밈이 없는 음악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그녀의 앨범을 듣고 난 첫 느낌은 그래서 담백하다.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타래처럼 얽힌 마음을 이완시켜준다. 마음을 열고 있노라면 음악치료를 받은 느낌이 든다. 어느 한 부분도 지나친 힘을 들이지 않고 연주한 탓이다. 하지만 효진의 음악의 첫 느낌이 그대로 지속 되는 것은 아니다. 몇 차례 더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 속에 미묘한 변화를 찾을 수 있다. 그 미묘한 변화의 갈피를 비집고 들어가면 자잘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참을 효진의 음악을 들으면 그래서 미세한 감동들이 일어난다. 음표와 음표들이 세밀하게 떨림을 준다. 그렇게 음악을 알아가는 즐거움을 알려주는 음악은 바로 정직한 표현에서 시작한다. 참으로 효진 음악의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음악은 인생의 긴 여정과 같다
효진은 피아노라는 악기와 자신의 음악에 대해 매우 엄격하며 또한 조심스럽다. 그 것들은 언제나 많은 고민들을 안겨준다. 더 좋은 음악을 하고 싶고, 더 멋진 사운드를 만들고 싶다. 너무도 소중한 상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벼락처럼 음악을 다루지 않는다. 긴 호흡으로 미래를 보고 달려가길 원한다. 그녀에게 음악은 긴 여정인 것이다. 하지만 일에 대해서만은 적어도 효진은 적극적이다. 그녀는 자신이 필요한 어떤 곳 어떤 장소이든 달려간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은 음악에 가장 큰 미덕이기 때문에 어떤 구애도 받지 않는다. 그간에 그녀는 그런 소통과 교감이 이루어지는 수많은 장소를 뛰어 다녔다. 그리고 앞으로 더 열심히 뛰어 다닐 것이다. 이번 앨범은 그녀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서곡에 불과하다. 보다 다양한 시도를 담은 정규음반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녀에게 음악은 굶주림의 대상이다. 음악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통해 대중과 더욱 소통 할 것이다.
1. 블루밍 데이
3박자의 마이너 음계의 멜로디는 4박자와는 다른 아찔함을 준다. 3박자의 멜로디는 어디가 시작인지 끝인지 모르게 안정감 대신 긴장감 속의 프레이즈를 허락한다. 꽃 피는 날, 사람들을 그 꽃 속에 맴돌게 하기 위해 나는 12개의 음 중 가장 귀에 맴도는 '라' 음은 선택했다.
단순한 진행으로 이 곡을 만들었지만 한 소절의 시작과 끝의 여운, 클라이맥스 부분의 반복되는 힘 있는 '라'음을 통해 내일이 아니라 오늘도 여전히 꽃이 피는 날임을 인식할 수 있는 담대함 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 흩날리던 너
이 곡은 5월과 참 잘 어울린다. 벚꽃을 좋아하는 나는 오래도록 기다려 핀 벚꽃 때문에 이유 없이 행복했지만 얄미운 봄비가 내려 바닥에 떨어진 꽃잎들을 보며 “내 젊음도, 사랑도, 모든 아름다움도 사라지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봄비가 사라진 뒤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연녹색 잎사귀가 자라는 것을 보며 다시 경험과 연륜과 내공을 향해 갈 수 있구나 란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가장 많이 공연한 곡으로 흔들리는 수동적인 삶이 아니라 흩날리는 주체적인 삶을 살라고 많이 얘기하며 나 또한 그런 삶을 살 길 바란다. 음악적으로도 MIDI를 통해 내 음악의 또 다른 가능성을 맛보게 해준 곡이다. 이 음악으로 모두 함께 비 속에서 흩날리고 싶다.
3. 봄 눈
내 고향 ‘제주’, 그리고 유학 길을 떠났던 ‘호주’라는 자연 속에서 살아온 나는 서울의 단칸방의 창문 넘어 봤던 바깥세상의 답답함으로 힘들었다. 보이지 않는 음악의 길, 아티스트로써의 삶과 현실의 괴리감, 타협하고 싶지 않은 이상과 지혜롭게 살아야 할 나이의 책임감 속에서 내 음악은 마이너로 시작해 희망을 마침표로 찍는, 쌉싸름하고도 다크 초콜릿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음악이 계속되었다.
건들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던 3월의 늦은 겨울, 함박눈이 그 방범창 사이로 내려왔다. 마치 선물처럼 겨울풍경이 눈 앞에 그려졌다.
4. 머무르다
열려있는 귀와 눈은 언제나 진리를 향해있다. 그처럼 내 음악도 그런 진리의 색을 닮길 원한다. 소유하고 싶고 소유하지 않은 것에 대해 언제나 목말라 하는 나는 어느 날 머무르는 것이 소유하는 것이란 얘기를 들었다. 어찌나 모순되고 양면적인 멋진 합리화가 아닐까?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감성으로 시작한다. 세상의 진리란 그렇게 단순하다. 그런 것들을 알려주고 공부하게 해주는 세상에 대한 감사를 담은 곡이 바로 ‘머무르다’이다.
5. 엘로우 래그
F major, 바장조는 많은 음계 중 가장 발랄하고 평화롭다. 앨범을 준비하면서 가장 마지막에 작곡한 곡으로 선이 길고 파스텔 내지 흑백의 농도의 진행과정을 많이 표현하게 되는 나로서는 이처럼 발랄하고 원색처럼 날아다니는 음악이 어색하기만 하다. 무채색이나 좋아하는 보라색만을 입는 내게 이 음악은 가끔 노란색을 입고 싶은 그런 소풍 같은 날이다.
6. 꿈꾸는 나비
아주 즉흥적이고 순간적으로 만든 이 곡은 피아니스트였던 내게 가장 처음으로 작곡이란 세계를 열어주었다. 8년의 길었던 유학생활을 마친 후 한국 클래식 음악세계의 딜레마에 빠져 음악이 아닌 다른 길을 가볼까 고민하던 중, 나비만을 그리는 이희정작가 작가를 만났다. (그녀는 '우리 결혼했어요' 중 마르코가 손담비에게 선물한 '너를 사랑하게 되다' 시집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녀의 살아있는 듯 한 수천 가지의 나비의 형상과 빛깔을 보면서 나도 나만의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의지와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수백 년, 수십 년 전 나와 관련이 없는 제 삼자의 음악을 재현해내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게 넘치는 이야기,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내 것으로 창조해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싶었다.
나는 오늘도 꿈꾸는 나비처럼 그 황홀한 영원을 꿈꾼다. 첫 마음처럼 마지막 작품까지 이 색을 닮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