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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blo Casals (파블로 카잘스) - Festivald At Prades (카잘스 영혼의 대화) [24CD]

이 한장의 명반 저자 안동림 교수가 추천하는
불멸의 연주자 시리즈 Vol.1
Pablo Casals : Festival at Prades“카잘스 영혼의 대화”

** 2009년 가을을 강타한 핫 이슈
** 최 만년 카잘스 예술의 찬란한 금자탑
** 이제 이보다 놀라운 카잘스 박스는 없다
** 24CDs를 2.5장 가격에 !!!

( 1955년 전후의 히스토리컬 실황녹음이므로 연주외 잡음들과 음원자체의 노이즈가 다소 들릴 수 있습니다.)

** 거장이 피운 최후의 불꽃-프라드 실황
최 만년 은퇴를 결심했지만, 스페인 민족에 대한 사랑과 인류의 평화를 위해 다시 첼로를 들었던 카잘스가 프랑스의 프라드에서 마지막 불꽃을 피우며 연주했던 기록들.

** 이 박스가 없다면 진정한 카잘스 팬이 아니다!
시중에 카잘스 음반들이 많이 있지만, 이 뮤직 앤 아츠 음원만큼 참신한 레퍼토리를 포함하고 있는 전집물은 없다.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음원들 다수!

** 카잘스 예술의 찬란한 금자탑
신의 경지에 오른 카잘스가 그 어느 때보다도 인류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연주한 것이기 때문에, 모두 연주의 질이 상당히 높다. 명실 공히 카잘스 예술의 찬란한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다.

** 펭귄가이드 등 유명 음반가이드 최고의 평가
영국의 그라모폰 지가 거품을 물고 찬사를 보냈던 음반.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펭귄가이드도 오래전에 특별상 ‘로제트 위너‘를 수여했던 음반이다. "50년대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거장들의 어마어마한 이름값, 이들이 함께 만들어낸 연주들의 진기함, 그리고 이들이 보여주는 감동적인 음악헌신을 담은 소중한 기록."(그라모폰 2007년 7월호)

** 세기의 거장들 총출연
크리스티앙 페라스, 아르튀르 그뤼미오를 위시하여, 메뉴인, 제르킨 등 20세기 중반 엄청난 음악가들이 총출연한다. 카잘스 박스의 후광으로 너무도 화려한 음악가들이다.

PABLO CASALS: FESTIVAL AT PRADES
“카잘스 영혼의 대화”

파블로 카잘스는 ‘첼로의 역사를 다시 쓰게 한 위대한 음악가’였다는 것이 그에 대한 정당한 평가일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만큼 첼로라는 악기를 높은 수준으로 연주하지 못했고, 그 어떤 사람도 음악과 삶을 훌륭하게 조화시키지 못했다. 카잘스는 그가 속한 세대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였고 자신의 악기인 첼로를 뛰어넘어 위대한 음악가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예술이 삶과 분리되지 않으면서도 진정한 의미에서 수준 높은 음악이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카잘스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우리 시대의 첼로 연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카잘스는 첼로 연주의 새로운 단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했다. 활을 쥔 오른 손의 자유로운 활용은 분명 카잘스의 독자적인 테크닉이었다. 그 시대의 많은 연주자들은 옆구리에 팔을 거의 붙인 자세로 연주했다. 그로인해 현에 가하는 압력의 강도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카잘스의 새로운 연주 테크닉이 있었기에 20세기 첼로 연주사는 좀 더 풍요로워질 수 있었다.
1876년 스페인의 카탈루냐 지방 벤드렐에서 태어난 카잘스는 지중해의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성장했다. 카잘스의 이름을 파블로(Pablo)가 아니라 파우(Pau)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스페인의 공식 언어인 카스티야어가 아닌 카탈루냐어로 그의 이름을 쓴 것이다. 카잘스는 평생 자신의 몸속에 흐르고 있는 피가 카탈루냐인의 것이라는 것을 잊은 적이 없었다(사실 조르디 사발을 비롯해서 많은 스페인 연주자들이 카탈루냐 출신이다).
그가 태어난 집안은 음악가의 피가 흐르고 있었고, 카잘스는 그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했다. 바르셀로나는 카잘스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곳의 음악원에서 가르시아에게 첼로를 배웠기 때문이다. 카잘스 또한 동시대의 많은 음악가들이 그러했듯이 카페에서 연주했었고 그때의 경험은 평생 동안 카잘스의 인생에서 밑거름이 되었다. 1898년 프랑스의 라므뢰 오케스트라와 랄로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며 파리에 첼로 독주자로 데뷔했던 카잘스는 알프레드 코르토(피아니스트)와 자크 티보와 함께 20세기 초반에 황금의 트리오로 활동했다.
일반적으로 그의 이름에 따라다니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발견자라는 문구는 부분적으로만 사실이다. 카잘스가 바르셀로나의 헌책방에서 이 작품의 악보를 처음으로 발견했다는 것은 신화처럼 굳어졌지만, 이 레퍼토리는 카잘스가 처음 발견한 것이 아니다. 물론 카잘스로 인해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콘서트 레퍼토리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확산의 의미지, 발견의 의미는 아닌 것이다.
카잘스는 한 사람의 음악가가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몸소 실천한 사람이다. 그는 파시즘에 맞서 싸우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돈보다는 사람과의 우정을 중시했다. 예술이 오로지 예술 그 자체의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는 예술지상주의자들을 경멸했던 카잘스는 그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 그의 음악은 우리가 속한 인류에게 전하는 메시지이고, 그것은 언제나 따뜻한 체온이 흐르는 사람을 향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연주하는 음악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한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더 높은 가치를 추구했다. 한마디로 카잘스는 클래식 음악이 소수의 귀족이나 부자들의 취미 생활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자신의 철학을 실천했다. 그리고 용서와 화해야말로 우리들 모두를 위한 것이라 믿었다. 나치에 협력했던 코르토가 눈물을 흘리며 카잘스에게 사죄했을 때 그는 떨리는 가슴으로 코르토를 용서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용서함으로써 우리들 자신이 지은 죄를 조금씩 덜게되는 셈이라는 것을 카잘스는 증명했다. 1973년에 카잘스가 사망했지만, 여전히 우리들은 음반을 통해 그를 추억하고 그가 추구했던 가치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카잘스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신화로 남아있고 지금도 그 영향력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카잘스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희망이라는 호수에 떠있는 작은 배가 출발한 항구는 피리네 산맥의 프라드였다.
1950년, 프라드에서 시작된 음악 페스티벌은 프랑코의 독재에서 신음하는 동포들을 위해 시작된 것이다. 왜냐하면 파시즘을 피해서 스페인의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프랑스로 도피했고, 그 수는 50만 명이 넘을 정도였다. 표면적으로는 바흐 사후 200주기 기념 음악제였지만 말이다. 1950년 6월에 그 역사적인 첫발을 내디딘 페스티벌은 샤샤 슈나이더(전설적인 부다페스트 현악사중주단의 제2바이올린주자)의 제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페스티벌의 첫 번째 제안은 1947년에 있었고 장소도 원래는 미국이었다. 그러나 카잘스는 자신이 살고 있는 프라드가 아니면 은퇴를 번복하면서까지 페스티벌을 열고 싶지 않았고, 또 프라드가 스페인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접경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카탈루냐 동포들이 음악제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이유도 한 몫 했다. 뿐만 아니라 페스티벌의 수익금을 페르피냥(스페인 난민들을 보호하고 있던) 병원에 기부함으로써 동포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제1회 페스티벌에는 요제프 시게티, 아이작 스턴, 미에치슬라프 호르조프스키, 루돌프 제르킨, 유진 이스토민(카잘스가 사망한 후, 젊은 미망인이었던 마르티타와 결혼해서 이 페스티벌을 주관하고 있다)이 참여했고, 3일 동안 생 피에르 성당에서 펼쳐진 페스티벌 기간 동안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전곡, 무반주 첼로 모음곡,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등이 연주되었다.

이번 박스세트에 포함된 음원들은 주로 1953년부터 1962년 사이의 프라드 페스티벌 실황 중에서 선택한 것들이다. 호르조프스키와 메뉴인, 월피시 그리고 카잘스가 함께 연주하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사중주 2번과 베그, 제르킨, 카잘스의 슈만 피아노 트리오 3번, 메뉴인 남매와 함께한 베토벤의 피아노 트리오 3번 그리고 제르킨 등과 함께한 베토벤의 피아노 트리오 4번도 수록되어 있다. 이 밖에 호르조프스키, 코르토, 이스토민 등 서로 다른 피아니스트들과 듀오로 연주한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들, 메뉴인이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연주한 음원도 매우 소중하다. 무엇보다 카잘스 자신이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3번과 5번의 기록은 이 박스물에 주목해야할 가장 큰 이유이다. 더구나 루돌프 제르킨이 연주한 슈만의 교향적 연습곡, 베토벤의 소나타 30번과 등은 마니아들을 매혹시킬 음원들이다. 여기에 더해 크리스티앙 페라스가 빌헬름 켐프와 연주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크로이처와 아르튀르 그뤼미오와 윌리엄 카펠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베그 사중주단의 브람스와 슈만의 현악사중주, 미에치슬라프 호로조프스키가 연주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 릴리안 푹스와 요제프 푹스가 연주한 모차르트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디베르티멘토, 시몬 골드베르그와 루돌프 제르킨 그리고 카잘스가 함께 연주한 베토벤의 피아노 트리오 ‘카카두’ 등 그야말로 전설적인 연주자들의 종합선물세트처럼 보인다. 카잘스가 지휘한 바흐의 칸타타와 브란덴부르크 협주곡들은 프라드 페스티벌의 시작을 알리는 레퍼토리로서 이 히스토리컬 세트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카잘스가 마지막으로 참여한 것은 1966년의 페스티벌이었고, 우리는 이 음반들을 통해서 인류에게 음악이 주는 메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글 : 월간 라 무지카 편집장 / 김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