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 Jon - Wave Mo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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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힙합 및 앱스트랙의 최전선에서 맹렬히 활동하고 있는 슈퍼 프로듀서이자 혁신적 공로자로 추앙받고 있는 fat jon의 2002년 솔로앨범.
추상적이고 차가운 비트와 부드럽고 Jazzy한 그루브의 조합으로 일렉트로닉과 힙합 팬들 모두에게 만족을 선사하고있는 fat jon의 2002년 초기걸작 전격한국발매
창조적으로 진화하는 팻존의 비톨로지(Beatology)...
그가 열어젖힌 새로운 차원으로의 여행…
팻존 (Fat Jon)에게는 항상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그를 대표/재현하는(Representation) 단어로 ‘앱스트랙트’(Abstract), ‘재즈’(Jazz), ‘소울’(Soul), ‘힙합’(Hiphop), ‘전자음악’(Electronica Music)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단어들의 의미를 엄밀히 곱씹어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전자음악’의 조건은 도대체 무엇인가? 전자악기(Electronic Instrument)를 사용하면 ‘전자음악’이 되는 것인가?
음악은 그 자체로 추상적(Abstract)이지 않은가? 팻 존의 음악은 단순히 독특한 스타일의 힙합일까? 아니면 힙합을 넘어선 무엇일까? 이런 식의 한참 철지나 보이는 질문이 그래도 해볼 만한 이유는 앞서 나열된 단어들이 팻 존이라는 뮤지션의 음악을 반대로 혹은 조금밖에 설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좌우간 팻 존을 소개하는데 한두 가지 용어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 같다. 근 10년을 활동해 오면서 줄곧 위와 같은 용어들로 다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사실, 비교적 다양한 어휘들이 그를 감싸고 있었지만 의미는 대동소이하다는 사실, 혹은 오랜 기간 동안 새로운 표현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야말로 팻 존에게 음악적 일관성을 부여하는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Humanoid Erotica]에서 최근의 [Repaint Tomorrow]까지. 그리고 다수의 프로젝트 앨범을 포함하면 다작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음악적 행보에서 눈에 띌만한 변별점이 있다면 얘기가 다르지만 말이다.
2001년 발매된 파이브 디즈(Five Deez)의 데뷔앨범 [Koolmotor]를 듣고 팻 존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때의 신선한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재즈 힙합(Jazz Hiphop)이라고 한다면 보통은 1950~60년대 재즈 앨범에서 추출한 음원을 기본으로 힙합 비트를 만드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팻 존의 비트는 그 누구와도 달랐다. 브레이크 비트(Break Beat)의 리듬 구조는 하우스(House)나 드럼 앤 베이스(Drum&Bass)에서 많이 들어볼 수 있는 유형에 가까웠고 음악적 질감이나 정서는 차분하면서도 '기묘한 우울'이 공존했다. 재즈 코드가 샘플링 되었지만 주변적인 요소였을 뿐 전형적인 의미에서의 재즈 느낌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팻 존이 재즈를 원료(Source)로 사용하는 것은 분명하나 그는 그것으로 전혀 다른 맛을 내는 요리를 한다. 이런 특징은 이후 팻 존이 작업한 다수의 음반에서 다시 확인 할 수 있다.
팻 존에게 관심을 갖게 된 이후 그의 솔로앨범 [Humanoid Erotica]를 듣고 나서 놀라움은 배가되었다. 도저히 양립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 요소 즉 훵키한 비트의 그루브(Groove)와 패배주의적인(Depressed) 정서가 놀라운 조화를 이루어 문자 그대로 ‘새로운 세계’를 그려냈기 때문이다.
특히 수시로 작동하는 코드변환, 과연 하나의 곡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다양하게 변주되는 비트의 향연은 듣는 이의 신체와 정신을 매혹시키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게다가 그가 데뷔한 후 몇 년 동안 작업한 음악은 동시대 언더그라운드 힙합과 소통할 수 있는 미덕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이런 점 때문에 팻 존이 창조하는 음악적 풍경이 아무리 독특하다고 해도 그를 힙합 뮤지션으로 규정하는데 일말의 주저함도 없는 것이다.
누구든지 한번 듣게 되면 거부할 수 없는 감성. 매력을 넘어 마력(魔力)적이라고까지 말하고 싶은 특유의 서정미. 만약 힙합에 멜로드라마가 있다면 최고의 연출가로 팻 존을 대신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존재하지만 타인과 나누길 꺼려하는 감정. 언어로 쉽사리 재단할 수 없는 정서의 특정 부위를 확대해서 그린다는 점에서 그는 처음부터 뚜렷한 음악적 입장을 가졌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가 외길을 고수해온 장인(Artisan)이라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팻 존과 비교할 만한 뮤지션은 존재하지 않았다.
굳이 꼽자면 디제이 크러쉬(DJ Krush)나 디제이 쉐도우(DJ Shadow), 알제이디투(RJD2) 정도를 들 수 있겠는데 팻 존은 이들에게 없는 훵키한 리듬감과 섬세한 감수성으로 인해 그들의 아류가 아니라 그들과 비교될 수 있는 개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팻 존의 등장은 비록 작을지언정 음악계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에 대한 증거로 팻 존의 인기는 최근에 이르러 힙합 팬들 뿐만 아니라 전자음악이나 이지 팝/라운지 팬들에게까지 폭넓게 걸쳐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래서인지 조심스럽지만 감추고 싶지 않은 점도 있는데 팻 존의 음악이 최근에 이르러 점점 근간을 상실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너무 정서적 측면에 치중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드는데 최근의 음악은 거의 2마디로 반복된 비트 일색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불만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팻 존의 음악이 미국이나 유럽보다 일본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되다보니 일본 시장을 중요하게 고려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인 뮤지션 누자베스(Nujabes)와의 합작도 우연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이런저런 사소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팻 존이 가장 개성 있는 비트 메이커라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10년이라는 기간에 비해 다소 많은 양의 작업을 했다는 점 그리고 일본에서의 작업이 미국과 유럽에서의 작업과 미묘한 지점에서 구분된다는 점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토로한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과정의 일부로 여겨지기에 그가 만드는 음악에 대한 기대는 수그러들지 않는다.
[Wave Motion]의 첫 인상은 앨범의 재킷처럼 무중력 공간의 혹성에서 위치와 목표를 잃고 표류하는 생명체의 이미지였다.
포문을 여는 첫 번째 트랙의 제목이 "Where?"인 것을 보면 이런 느낌이 단순히 주관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첫 곡 “where?” 은 섹서폰 과 펜더로즈의 아련한 반복위에 여성싱어의 나른한 보이스가 샘플링 되어 둔탁한 드럼비트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팻존 의 장점 중에 하나인 음악특유의 공간감이 빛을 발하는 “feel the void”는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착각이 들 정도의 몽환적인 사운드 스케잎 을 선사하고 있으며, 부드럽고 스무드한 터치가 인상적인 “visual music”에서는 반복적인 드럼비트가 사운드와 어우러져 음산한 애처로움을 표현하고있다.
명쾌하게 출렁거리는 비트에 산뜻한 그루브 가 일품인 “watch out”과 몽환적이며 혼돈스럽지만 스산한 기운이 감지되는 “for stress”, 비교적 짧은 skit 형식의 흐름을 잃지 않는 트랙 “1975”가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거친듯하면서도 묵직한 비트운용에 가벼운 느낌의 샘플이 스크레치 와 절묘하게 잘 어우러지는 “eyes”는 묘한 여운을 선사한다. 이어지는 트랙 “Wet Secrets”에서는 선명하게 인식되는 아름다운 건반선율, 거기에 장난끼 넘치는 보이스샘플과 서글픈 섹서폰 멜로디가 오버랩 되면서 이국적이면서 희망적인 빛줄기를 연출해낸다. 특유의 부드러운 애절함이 배가 되는 트랙 “depths”는 우아한 듯 하지만 어딘가 모르는 스산함이 공존하는데 심지어 신비스러운 분위기마저 느끼게 되는 트랙이다.
SF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웅장한 스코어를 시작으로 전개되는 “automated life machines” 는 오래된 느낌의 기타스트링과 섹서폰 샘플, 탁월한 리듬전개로 다양하게 변주되는 트랙이다. 반복적으로 내려치는 비트와 스트링혼 이 엠비언트 적인 분위기를 이끄는 “surrection”을 지나고 어지러운 노이즈와 함께 규칙적으로 떨리는 비트가 맞물린 “disgust”가 흐르고 나면 음반은 마무리된다
[Wave Motion]은 팻 존의 솔로 앨범 중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중 하나이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볼 때 힙합만을 좋아하는 사람이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팻존의 비트는 일렉트로니카의 색깔로 덧입혀진 힙합비트이다. 따라서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즐기는 사람에게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몸을 들썩이게 하는 베이스 라인과 드럼 파트, 가슴을 저미는 피아노 선율. 실제로 그 자신이 연주하는 플루트(flute), 스트링, 그리고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는 팻 존의 음악을 특징짓는 형식적 요소들이다. 반복하지만 이것이 힙합과 전자음악 팬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주요 무기다.
팻 존이 창조하는 음악이 아무리 이질적이고 이교적이라 한들 어디까지나 비트에 담긴 샘플링된 소스들은 따뜻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풍요로운 감성들을 제공하고있다. [Wave Motion]은 음악적 상상력과 표현 기법이 잘 어우러진 수작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그가 열어젖힌 새로운 차원에 몸을 맡기고 음악과 함께 흐르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