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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0년대 초반 일본 NHK TV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실크 로드(Silk Road)>가 국내에서 인기를 얻은 적이 있다. 동・서양의 교역로였던 ‘비단길’을 누비던 대상(隊商)들의 발자취를 다라갔던 이 프로그램은 뛰어난 영상미와 짜임새있는 연출력 덕분에 연속극과 오락 프로, 그리고 뉴스가 강세인 우리 실정에서 ‘이례적으로’ 관심을 끌었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당시 이 프로그램의 배경 음악 역시 커다란 반향을 얻었다. 아니, TV는 못 봤더라도 음악만큼은 여기 저기서 한 번쯤은 들어보았다 할 정도로 사운드트랙은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이 음악을 만들어낸 인물이 바로 일본이 배출해낸 세계적인 뉴에이지 뮤지션 기타로였다. 그는 비슷한 시기에 AUTUMN, WINTER INTO SPRING, DECEMBER 등의 히트 앨범으로 대단한 반응을 얻었던 조지 윈스턴과 함께 뉴 에이지의 쌍두마차라 불릴 만 했다.
기타로는 신서사이저로 동양적 신비주의가 깃든 스케일 큰 음악을 빚어내어 세계적 뮤지션으로 성공한 경우다. 1953년 일본의 토요하시에서 타카하시 마사노리란 이름으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친구들이 붙여준 ‘기타로(喜多郞)’ 즉, ‘기쁨이 넘치는 남자’란 뜻의 별명을 그대로 예명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름처럼 따스하고 낙관적인 시작으로 음악을 빚어내왔다.
고교 시절 R&B에 빠져 독학으로 기타를 공부했고 건반 역시 독학으로 마스터하는데 1970년대 초반에 파 이스트 패밀리 밴드(The Far East Family Band)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를 결성해 두 장의 앨범을 내기도 한 경력이 있다. 그는 1972년, 유럽 여행중 전자 음악의 시조격으로 추앙받는 독일 록 그룹 탠저린 드림(Tangerine Dream)의 멤버 클라우스 슐츠(Klaus Schulze)와 조우를 하게 되는데 그에게 매료된 기타로는 신서사이저 연주에 빠져들게 되고 그룹을 해체한 뒤 1978년 신서사이저와 오케스트라의 협연을 담은 첫 솔로 앨범을 발매한다.
DAICHI OASIS, SILK ROAD 사운드트랙 등 일련의 앨범으로 인기를 얻은 그는 SILK ROAD 2, TUN HUANG, NHK의 특집 프로 사운드트랙 KI(氣), 우리나라에서도 알려진 만화영화 <천년여왕(1000 Years Queen)> 사운드트랙 등을 발표하며 1986년엔 <Geffen> 레이블과 계약 후 세계 시장 데뷔 앨범 TENKU(天空)를 발표한다.
이후 1987년엔 그레이트풀 데드(The Gratetful Dead) 드러머 미키 하트가 참여한 THE LIGHT OF SPIRIT으로 미국 시장에서 플래티넘을 기록하며 그래미상에서 ‘Best New Age Album’ 등 2개 부문 후보로 오르는 인기를 얻었으며 그 후 미국 순회 공연을 갖기도 한다.
이후 1990년에 낸 KOJIKI(古事記)는 빌보드 뉴 에이지 앨범 차트 8주 연속 1위의 대단한 반응을 얻었고 그룹 예스의 보컬리스트였던 존 앤더슨(Jon Anderson)을 참여시킨 1992년 앨범 DREAM으로 또 다시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다.
올리버 스톤이 감독한 HEAVEN AND EARTH의 사운드트랙으로 골든 글로브를 수상했고 조지 윈스턴이 기타 연주 앨범을 발표했듯이 직접 연주한 기타 연주를 담은 MANDALA를 냈는가 하면 ENCHANTED EVENING, 크리스마스 앨범 PEACE ON EARTH 등을 발표했고 1998년엔 GAIA로 그는 또 다시 그래미상 ‘Best New Age Performance’ 부문 후보로 올라 건재를 과시했다.
새 앨범 THINKING OF YOU는 앨범 제목이나 재킷부터가 과거 작품들과는 달리 로맨틱한 느낌을 주고 있는데 그가 추구해온 동양적 신비주의가 녹아있고 자연을 소재로 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그의 주된 관심이 인간에게로 향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사운드 면에서 볼 때 악기 편성은 물론 편곡 역시 최대한 단순화를 추구한 이번 앨범은 그의 초기 사운드로 돌아간 느낌을 주고 있다. 물론 이번 앨범이 최근 붐을 이루는 연주 음악들처럼 편안한 사운드로만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건 대중적으로도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들을 발견할 수 있다.
참고로 앨범 재킷에 담긴 피아노는 그가 오랫동안 자신의 분신처럼 아끼던 것인데 집의 수도관이 터져 못쓰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이 일로 자신에게 가깝고 소중했던 것들, 그러나 그 가치를 잊고 지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으며 그 결과 자신의 곁에서 떠나간 가까웠던 사람들에 대해 이 앨범을 통해 감정을 표현해 보고자 했다고 밝히고 있다.
첫 트랙 Estreela는 물 소리 천둥과 바람 소리 등 자연 현상을 상징하는 사운드로 시작되는 곡으로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는 작품이다. 전통 피리 연주가 담긴 Mercury,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Cosmic wave, 새소리와 미풍이 어우러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Harmony of the forest, 월드 뮤직의 요소를 담고 있는 Fiesta 등의 수록곡들이 있다. 앨범에서는 타이틀 트랙 Thinking of you가 가장 부드럽고 로맨틱한 느낌으로 친숙하게 다가오고 있다.
여러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멀티 인스트루멘털리스트로, 작곡가 겸 프로듀서인 그의 음악에는 과거 심취했던 불교의 ‘선(禪)’이나 인도 사상 등 동양적 신비주의와 자연, 낭만성의 요소를 녹여내고 있는데 초기 사운드로의 회귀를 보여준 이번 앨범 역시 좋은 반응을 기대할 수 있는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