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 Jon - Repaint Tomorrow
|
누자베스 (Nujabes)의 소울메이트 이자 전세계 재즈 힙합 붐의 신호탄을 던진 천재 비트 메이커
팻 존 (Fat Jon)이 새롭게 그려낸 가슴 뭉클한 수채화.
앱스트랙적인 요소와 회한이 섞인 비통한 느낌의 비트들로 가득한 본작은 센티멘탈한 느낌의 피아노선율, 호른, 바이올린, 첼로, 드럼을 유기적으로 녹여 재지힙합의 멜로우한 면을 극명하게 보여주고있다.
[Repaint Tomorrow]
통산 여섯번째 솔로작인 [Repaint Tomorrow]는 2008년 8월 2일에 발매가 이뤄졌다. 사실 본 작은 피바인(P-Vine) 레코드에서 기획된 인스트루멘탈 연작인 [Dawn]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데 비슷한 컨셉의 커버 아트웍과 감성을 통해 서정적인 흑백의 이미지를 주조해내고 있다. 참고로 첫번째 작품은 충격의 데뷔 앨범 [Loop Extensions]을 통해 일본을 비롯한 전세계 힙합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디데이 원(Dday One)의 [Heavy Migration]이었다.
팻 존의 솔로 초기작인 [Wave Motion]과 [Lightweight Heavy]의 감성으로 돌아왔다는 언급이 본 작에 있어왔다. 사실 한동안 자신의 이름 뒤에 "앰플 소울 피지션(The Ample Soul Physician)"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가 다시 사용하면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초기의 회화적인 느낌을 새롭게 다시 채색하는(Repaint) 작업을 하고있는 셈인데, 몇몇 사람들은 팻 존 최고의 커리어를 보여주고 있다고까지 단언하기도 했다.
씨네마틱한 스트링을 가진 [Kissed in Shadow]로 앨범이 시작된다. 플룻과 피아노의 선율이 눈물샘을 자극하는 [Innocent at Once]는 확실히 앨범을 대표하는 트랙으로 손색이 없다. 당신은 바로 이 지점에서 무너지면 되는 것이다. 베이스라인과 심플한 드럼 패턴이 긴장감을 더하는 [W.Y.P.A.U.], 센티멘탈한 피아노 프레이즈와 딜레이 걸린 드럼 패턴이 위험한 곡예를 보여주고 있는 [Party Foul]등 지극히 팻존 스러운 곡들이 여유롭게 전개된다.
자신의 메인 악기이기도 한 플룻의 선율이 감동을 배가시키는 [Lighthouse Sleeper]를 지나 바이올린이 피쳐링된 차분한 타이틀 트랙 [Repaint Tomorrow]이 흐른다. [Repaint Tomorrow]의 경우에는 팻 존이 라이브 퍼포먼스를 펼칠 때도 바이올린 주자가 함께 무대 위에 오른다. 궁금한 이들은 유튜브를 검색해보면 되겠다. 무척 아름답다.
서정미와 흥겨움이 공존하는 [Muses], 앨범에서 가장 독특한 비트를 보여주고 있는 트랙으로 경쾌한 4분의 3박자 리듬 패턴이 인상적인 [Leyes], 뮤트된 호른의 깊이와 브러쉬를 이용한 드럼의 조합이 부드러운 [Hero Style], 앨범에서 가장 흡입력 있는 트랙으로 마이너 코드 전개를 통해 90년대 중반의 느낌을 재연하고 있는 [Berlin Grey], 그리고 여성의 백 코러스가 침착하면서도 불안한 느낌을 안겨주는 [Aesthetica]와 쪼개지는 스네어 파트와 꿈꾸는 듯한 이펙팅이 아련한 [Do it Like My Robots]를 끝으로 이 감동의 앨범이 마무리된다.
(I Know) You Got Soul
여름의 황혼과 새벽의 노스탈지아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앨범이 가진 독특한 선율은 샘플이 아닌 이 트랙을 위해 만들어진 소스처럼 들릴 지경이다. 비트는 약간 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에 반해 아름다운 멜로디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애수가 감도는 새로운 인스트루멘탈 힙합 앨범이 비로소 완성됐다. 깊이의 감을 알 수 없는, 전작 이상의 스케일에 접어든 범작이라 하겠다.
일단 비트가 훌륭하다. 리듬은 심플하고 루핑은 완벽하다. [Dawn] 시리즈의 컨셉을 따르려는 듯 보이긴 하지만 다채로운 비트와 서정적으로 그려진 자신의 세계관은 여전하다. 일정한 몇 가지 샘플이 앨범 전체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대기가 앨범 전체에 자리잡고 있다. 따뜻한 킥 샘플-이런 소리는 클럽에서 큰 소리로 들으면 의외로 딱딱하게 들리곤 한다.-, 그리고 아날로그의 노이즈 또한 이 세계관을 완성시키는 데 미미하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멋지고 동시에 금욕적인 재즈 힙합 레코드이다. 약간의 의외성도 가지고 있지만 오히려 후에는 그 '의외성'에 동조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원점으로 회기했고 소리에 대한 탐구는 더 깊어졌다. 단지 멋진 앨범 정도로 단순하게 정의할만한 음반은 아닌 것 같다. 특히 앨범에 흩뿌려진 멜로디를 즐기는 사람이라던가 재즈 힙합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갚진 한 장이 될 것이다. 특히 팻 존의 초기작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결국 그가 구체적으로 구현하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몇몇 팻 존의 앨범들에는 앨범에 수록된 모든 트랙에 대한 자신의 코멘트를 적어놓곤 했다. 본 작 역시 예외는 아닌데, 앨범을 감상하면서 이것들을 꼭 읽어보길 권장하는 바이다. 개인적으로 감동적인 대목은 바로 [Berlin Grey]를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당신의 영혼이 하늘에 머물고 있다면 당신의 심장은 공기 중에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런 감성을 지닌 영혼이 만들어내는 음반을 듣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음악처럼 무언가 명확하지 않고 추상적일 수도 있겠지만 역시나 가슴 한구석을 찌르곤 한다. 정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