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말리가 남긴 음악유산의 상속자, 그룹 '퓨지스' 출신의 와이클래프 장(Wyclef Jean) 6집 정규 앨범
지금은 타계했지만, 흑인음악 아티스트 중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거론되는 밥 말리(Bob Marley). 그에게는 그의 음악성을 이어 받은 여러 아들들이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 그가 남긴 음악적 유산의 상속자로 거론되는 것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와이클레프 장(Wyclef Jean)이다. 밥 말리의 명곡 ‘No Woman, No Cry'를 리메이크해 과거와 현재를 소통시켰던 푸지스(Fugees) 시절부터 그랬지만, 와이클레프 장은 밥 말리의 영적인 젖줄을 타고난 적자였다.
특히 와이클레프 장이 그의 두 번째 음반에서 메리 제이 블라이지(Mary J. Blige)와 함께 부른 ‘911’은 단연 압권이었다. “누군가 나의 마음을 앗아갔어...”라고 울부짖는 와이클레프의 가창은 사랑에 빠져 속이 까맣게 타 들어가는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있어 최고의 목소리였고, 듣는 이의 감정을 쥐고 흔드는 호소력의 밀도만으로 따지면, 푸지스 시절 최고의 히트 곡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을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오죽하면 이 노래에 감동받은 휘성과 거미가 몇 해 전 MKMF 시상식에서 이 노래를 개사해 다시 불렀겠는가. 클럽 튠 힙합과 댄스경향의 리듬앤블루스가 메인스트림 팝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요즘과 같은 때에 와이클레프의 진실성 있고 호소력 짙은 가창은 다른 뮤지션과는 차별화되는 큰 무기임에 틀림없다. 그의 노래에는 분명 관중을 움직이는 설득력이 있다. 포스트 밥 말리로 불리며, 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뮤지션으로 인정받는 것도 바로 거기에 해답이 존재한다.
물론, 와이클레프의 인도주의적 사회 활동도 그의 진정성과 밥 말리의 후계자 증명에 한 몫을 단단히 했다. 그가 직접 음악감독으로 참여하고 ‘제 4회 국제 다큐멘터리(EIDF)’에 출품되어 반향을 일으켰던 아스거 레트(Asger Leth)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시티솔레이의 유령(Ghosts of Cite Soleil)>에서도 사실적으로 다뤄졌지만, 그의 고향 아이티(Haiti)의 슬럼가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펜보다 총을 먼저 잡고 갱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상황이다. 그러한 가운데 아이티 이민자 출신인 그가, 정치적 혼란과 내전 그리고 그로 인한 가난과 질병으로 얼룩진 고향땅의 재건을 위해 엘레 아이티(Yele Haiti)라는 자선 단체를 설립했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브래드 피트, 안젤리나 졸리, 린제이 로한, 메릴 스트립 등의 할리우드 최정상 배우들과 함께 아이티의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리고, 불우한 아이들을 위해 기금을 조성, 전폭적인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단순히 한 명의 음악인을 넘어, 사회 운동가로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퓨지스 시절부터 명증된 프로듀서로서의 능력은 두 말할 나위 없는 세계 최고 수준이 아닌가. 그를 정형성과 규칙성을 탈피한 프로듀서라고 표현한 이적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의 음악은 록과 소울, 힙합과 레게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장르의 전복을 시도하고 있다. 또, 카를로스 산타나(Carlos Santana)와 함께 작업한 앨범 [Super Natural]로는 그 해 그래미가 선정한 ‘올해의 앨범 상’을 수상했고, 남미의 섹시 디바 샤키라(Shakira)와 함께 부른 ‘Hip Don’t Lie’로 무려 20주 동안 방송 차트 1위를 고수하며 MTV 라틴 어워드에서 ‘올해의 곡’을 수상하기도 했으니, 작품성뿐만 아니라 대중성에 대한 담보도 확실하다.
초심으로 돌아간 와이클레프, 최정상급 아티스트를 대거 소환하다
여섯 번째 정규 음반 [Carnival II: Memoirs Of An Immigrant]는 타이틀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97년 발표된 그의 첫 번째 솔로 앨범의 연작 형식을 띠고 있다. ‘이민자의 회고록’이라는 부제에서처럼 초심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운드 스케이프까지 과거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운드는 전작에 비해 다양해졌고 보다 짙은 실험성을 띄고 있다. 게다가 파괴력도 더욱 강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오랜 프로듀싱 파트너이자 본 앨범의 공동 프로듀서인 제리 듀플리시스(Jerry Duplessis)는 물론이고 최근 빌보드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최정상급 아티스트까지 대동하고서 돌아왔기 때문이다.
앨범은 첫 머리부터 심상치 않다. 의미심장한 스포큰 워드(Spoken Word)로 이루어진 인트로, 그리고 인트로를 지나자마자 파워풀한 전자 기타가 청자의 집중을 강제 집행하는 곡 ‘Riot'까지. 그는 호소력 넘치는 목소리와 함께 청자의 각성을 촉구하며, 전작에 비해 강력해진 파괴력을 입증한다.
그리고 우탱 클랜(Wu-Tang Clan)의 히트곡 'C.R.E.A.M.'의 유명한 후렴구를 인용하고 있는 첫 싱글 트랙 ‘Sweetest Girl’에서는 앞선 곡에서 치솟았던 분노의 감정을 흥겨운 리듬에 승화시키고 있다. 게다가 이 곡에는 최근 빌보드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에이콘(Akon)과 릴 웨인(Lil’ Wayne)을 참여시켜 순도 100%의 중독성을 이끌어냈다.
빌보드 최정상급 아티스트들과의 조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Slow Down'는 더티 사우스 최고 멋쟁이 티 아이(T.I.)와, ‘King and Queen’은 찰떡궁합 샤키라와 함께 하고 있으며, 인도 특유의 리듬이 가미된 'Hollywood Meets Bollywood (Immigration)'는 2006 MTV VMA 최우수 랩 뮤직비디오 상을 수상한 차밀리어네어(Chamillionaire)를 대동하여 만들어냈다. 빌보드의 젊은 피를 수혈하여 대중성과의 균형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와이클레프의 숨은 뜻이 엿보이는 순간이다.
물론 와이클레프 특유의 감성적인 트랙들도 빼 놓아서는 안 된다.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곡 ‘What About the Baby’에서는 오랜 동료 메리 제이 블라이지와 다시 한 번 입을 맞추고 있으며, 포크록의 감성을 현대적으로 구현해낸 ‘Fast Car’에서는 전설적인 뮤지션 폴 사이먼(Paul Simon)을 초빙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폴 사이먼과의 작업은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라 더욱 반갑다. 그 외에도 그래미의 여왕 노라존스에게 방향키를 내주고 오히려 더욱 애수 어린 감성을 자아내는 ‘Any Other Day’가 특별히 눈에 띄며, 블랙 아이드 피스(BEP)의 윌 아이 엠(Will.I.Am)과의 즉흥적인 작업으로 완성되었다고 알려진 ‘Touch Your Button Carnival Jam’은 무려 13분간 세 곡이 릴레이 잼을 이루는 트랙으로 앨범의 후반부를 책임지는 곡이다.
궤도에 오른 초절정 고수의 선택
와이클레프 장은 이번 앨범을 통해 밥 말리의 후계자로서의 정당성 증명과 아이티의 정신적 지주 역할 수행, 그리고 다양한 참여진들과의 음악적 실험과 대중성의 구현까지, 여러 목적을 한꺼번에 겨냥하고 있다. 이것은 음악적으로 확실한 궤도에 오른 절정의 고수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다. 장르의 전복자로서, 사회 운동가으로서, 또 팝 스타로서, 다양한 역할 기대를 모두 충족시키는 인물, 와이클레프. 얼마 전 와이클레프 장이 한국의 레게 아티스트 스컬을 향해 격려의 보이스 메시지를 보내면서 “안녕하십니까!”라는 한국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국내에 있는 그의 팬들이 그의 목소리에 격렬히 반응한다면, 머지않아 한국의 아티스트와 함께 공동 작업을 하고, 한국의 무대에서 공연하는 그의 모습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의 이번 신작이 2007년 겨울, 전 세계 팬들, 아니 국내의 팬들에게서 뜨거운 지지를 얻기를 바란다.
[글: 정환석 (
rhymast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