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l Mama - VYP : Voice Of The Young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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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래퍼 기근을 날려버릴 강력한 한 방!
탁월한 랩스킬을 지닌 18세 소녀 래퍼 Lil Mama의 화려한 데뷔작! [VYP: Voice of the Young People]
근 몇 년간 힙합 씬은 전 세계적으로 여성 래퍼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한때 남성 래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힙합여왕들의 소식이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법적인 문제를 일으켰거나 앨범 발매 연기 외에는 소식조차 들을 수 없는 지경이다. 퀸 라티파(Queen Latifah), 엠씨라잇(MC Lyte), 솔트앤페파(Salt-N-Pepa) 등과 같이 이미 오랜 활동을 통해 많은 업적을 이룬 1세대들은 논외로 친다 하더라도 90년대 힙합의 황금기를 수놓으며, 2000년대 초반까지 중심을 잡아주던 이들까지 부진한 것은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섹스어필과 독특한 래핑으로 주목 받은 릴 킴(Lil’ Kim)은 점점 민망해지는 외모와는 달리 음악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확실하게 입지를 굳히는가 했더니 여러 법적인 소송에 휘말리며 스튜디오보다는 법정에 드나드는 시간이 더 많았고 90년대 섹스어필 라이벌이었던 팍시 브라운(Foxy Brown) 역시 법적인 소송에 이은 감옥살이와 청력에 이상이 오는 악재까지 겹쳐 최근까지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도 못했다. 또한, 웬만한 남자 래퍼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날카롭고 하드코어한 래핑을 자랑하던 다브랫(Da Brat)은 헐렁한 배기팬츠를 벗어 던지고 진한 화장과 가슴을 부각시키기 시작하면서 인기가 시들해졌고 쭉 뻗은 몸매와 하드코어한 가사를 나긋나긋한 래핑에 담아내며 수많은 청자를 유혹했던 이브(Eve)는 새 싱글이 발표된 후, 해가 바뀌었지만, 앨범에 대한 사항이 감감무소식인 형편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 등장한 래퍼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테러스쿼드의 홍일점으로 데뷔하여 솔로 앨범까지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던 레미 마(Remy Ma)는 살인사건에 휘말려 무려 25년 형을 선고 받았고 그나마 트리나(Trina)가 특유의 퇴폐스러움으로 고군분투하고는 있지만, 아직 혼자만의 힘으로 여성 힙합 씬을 대표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자, 상황이 이쯤 되다 보니 릴 마마(Lil Mama)의 등장에 힙합 팬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이미 세 장의 싱글을 통해 범상치 않은 랩스킬까지 확인되었으니 올해 18살(미국나이)인 이 소녀 래퍼를 ‘여성 힙합 씬의 미래’라며 추켜세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제 막 데뷔앨범 한 장을 발매했을 뿐인데다가 아직 십 대인 그녀를 두고 너무 호들갑 떠는 것은 아니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장담하건대 앨범을 들어본다면 생각은 곧 바뀔 것이다.
릴 마마는 할렘에서 태어나 브루클린을 오가며 자랐다. 부유하지 않은 집안의 여덟 남매 사이에서 자란 그녀는 어릴 때부터 시와 댄스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는 했는데, 10살이 되던 해에 본격적으로 랩을 하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릴 마마가 오늘날 주목받는 래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녀의 아버지는 릴 마마가 랩을 시작했던 무렵부터 녹음실에 데려가 녹음을 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녀가 고등학교에 들어가 처음으로 다른 이의 비트가 아닌 오리지널 비트에 랩을 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제가 아티스트로서 발전할 수 있도록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또 제 자신을 (음악적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조언을 해주셨죠.”
한때 어머니가 대장암에 걸려 힘겨운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던 그녀는 2006년에 직접 애틀랜타로 건너가 서던 랩그룹 내피루츠(Nappy Roots)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제임스 ‘그루브’ 챔버스(James ‘Groove’ Chambers)와 함께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다. 이때 그들은 총 7곡을 녹음했는데, 데뷔앨범의 첫 싱글이었던 “Lip Gloss”가 바로 당시에 녹음한 곡들 중 하나였다. 이 곡은 디제이 이너프(DJ Enuff)가 진행하는 유명 힙합라디오 프로그램인 Hot 97에서 플레이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는데 여기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Hot 97 콘서트가 열리던 날, 전 그곳에서 디제이 이너프를 만날 수 있었어요. 제 음악을 라디오에서 틀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했죠. 그랬더니 그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의 곡을 틀어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더라고요. 그래도 전 한 번만 제 음악을 들어달라고 말했어요. 결국, 우린 그의 차로 가서 음악을 들었죠. 순간 그는 ‘와, 이 곡 정말 죽이는데!’라고 말했고 다음날 그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제 노래가 흘러나왔어요.”
이러한 그녀의 당돌함 덕에 작은 소녀 래퍼의 랩은 공식적으로 전파를 탈 수 있었고 마침내 2007년, 릴 마마의 실력과 성장 가능성을 알아본 자이브(Jive) 레코드의 대표 배리 웨이스(Barry Weiss)는 그녀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메이저 레이블에 입성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캇 스토치(Scott Storch), 스위즈 비츠(Swizz Beatz), 쿨 앤 드레(Cool & Dre), 티페인(T-Pain), 제임스 그루브 등 호화 프로듀서진이 대동한 데뷔앨범 [VYP: Voice of the Young People]이 발표되었다.
앨범에는 여느 메인스트림 힙합음악과 마찬가지로 자극적인 전자음이 넘실대지만, 실제로 곡을 지배하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릴 마마의 옹골찬 래핑과 다양한 질감의 드럼킷이 만들어내는 리듬감이다. 훅(Hook) 부분을 제외한 각각의 벌스(Verse)에서는 신시사이저가 극도로 배제되고 드럼 사운드와 릴 마마의 래핑이 부각되는데 특히, 전반부에 수록된 곡들에서 이러한 점이 두드러진다. 오늘날 흑인음악 씬 10대 열풍의 중심에 서있는 크리스 브라운(Chris Brown)과 참여하는 곡마다 대박을 터트리고 있는 ‘오토튠(Auto-Tune)의 마술사’ 티페인(T-Pain)이 함께하여 빌보드 차트를 강타한 최고의 히트싱글 “Shawty Get Loose”를 비롯한 테러스쿼드(Terror Squad) 진영의 디제이 칼리드(DJ Khaled)의 추임새로 흥겨움이 배가된 클럽힙합 넘버 “One Hit Wonder”와 808드럼의 전형적인 빈티지함이 드러난 두 번째 싱글 “G-Slide(Tour Bus)”, 그리고 아예 클랩과 킥만으로 극한의 리듬감을 선사하는 “Lip Gloss”는 그 대표적인 곡들이다. 티페인이 특유의 오토튠 효과를 배제한 보컬을 선보이는 “What It Takes (To Strike A Pose)”의 묵직한 드러밍도 빼놓을 수 없다. 더욱이 이곡은 중독적인 사운드 소스와 신시사이저까지 완벽하게 어우러지며 본 작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무엇보다 전반부 트랙들이 리듬의 열기를 내뿜는 가운데 다른 수록곡들이 다양한 스타일로 앨범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은 본 작의 또 다른 미덕이다. 그 선봉에 서있는 곡이 바로 “L.I.F.E”와 “Swim”이다. 자신의 불우했던 성장기에 대한 회상과 또래 소녀들이 겪는 여러 사건, 고민 등을 진지한 가사에 담은 “L.I.F.E”는 귀를 자극하는 보컬샘플의 운용과 랩뿐만 아니라 보컬에도 일가견이 있는 릴 마마의 실력을 엿볼 수 있는 아주 멋진 곡이며, 트립합(Trip-Hop)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몽환적이고 감각적인 멜로디와 분위기를 가진 “Swim” 또한, 매력이 넘치는 트랙이다. 한편,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두 곡 “Make It Hot(Put It Down)”과 “Pick It Up”은 전반부에 수록된 곡들처럼 리듬과 신시사이저의 터치가 주가 되는 요즘의 힙합사운드를 들려주는데 이로써 본 작은 –의도했건 안 했건 간에- 수미상관이라는 안정된 구성마저 갖추게 되었다.
전문에서도 언급했듯이 현 상황에서 릴 마마의 등장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십 대라는 나이 때문에 간혹 아이돌 스타로서 부각되는 어쩔 수 없는 굴레(?)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 이와는 상관없이 듣는 이를 꽉 조이는 그녀의 래핑과 앨범 [VYP: Voice of the Young People]은 작금의 여성 래퍼 기근을 날려버릴 강력한 한 방임이 틀림없다. 저 옛날 가슴 속 깊숙이 파고드는 여성 힙합퍼들의 래핑이 그리웠던 이들과 다채로운 스네어가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리듬을 원했던 이들, 그리고 단순히 십 대 소녀의 감수성을 담아 예쁘게 포장된 앨범이겠거니 하고 지레짐작했던 이들에게까지도 본 작은 대단한 만족감을 안겨 줄 것이다. 릴 마마의 앨범이 플레이를 멈추는 순간, 여성 힙합 씬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펼쳐진다!
글: 강일권(No.1 흑인음악미디어 리드머/www.rhythm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