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도 100% 절대 명연의 향연
알반베르크 현악 사중주단 [Best of Alban Berg Quartett]
[6CD: 찬란한 음악유산의 화려한 부활 - The Teldec Recordings]
세계 최고의 현악 사중주단 '알반베르크 현악 사중주단'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 앨범으로
2008년 공식 해체를 아쉬워하며 워너 클래식에서 특별 제작한 박스세트 !
1970년 결성 당시 오리지널 멤버의 텍델 레이블 녹음 중 모차르트, 하이든, 슈베르트,
드볼작, 베르그 등 새롭고 신선한 영감으로 가득찬 걸작 연주만을 수록!!
무결점 사운드를 구축한 젊은 알반베르크 쿼텟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텔덱 레코딩 중 베스트 음원들만 모았으며, 특히 그간 구하기 힘들었던 미공개 음원들도 다수 포함, 찬란한 음악유산을 화려하게 부활시킨 소장 가치 100%의 박스 세트 !!
세계 최고의 현악 사중주단 '알반베르크 현악 사중주단'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 앨범으로 1970년 결성 당시 오리지널 멤버의 텍델 레이블 녹음 중 모차르트, 하이든, 슈베르트, 드볼작, 베르그 등 걸작 연주만을 수록했습니다.
본작에 수록된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의 젊은 연주는 하나같이 새롭고 신선한 영감으로 가득차 있으며, 풍부한 색채와 깊은 정신성을 반영한 명연들입니다.
2008년 공식 해체를 아쉬워 하며 워너 클래식에서 특별 제작한 본작은 무결점 사운드를 구축한 이들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텔덱 레코딩 중 베스트 음원들만 모았으며, 특히 그간 구하기 힘들었던 미공개 음원들도 다수 포함되어있어 과히 젊은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의 찬란한 음악 유산을 부활시킨 역작이라 단연코 말씀드릴 수 있는 소장 가치 100%의 명반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빈의 자랑이었다. -볼프강 쉬셀 (전 오스트리아 총리)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은 언제나 완벽한 음악의 정의를 내려 주었다. - 알프레드 브렌델 (피아니스트)-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이 들려주는 깊이 있는 표현과 자신감 넘치는 연주에 견줄 만한 앙상블은 없다. -타임지-
두말 할 것 없이 실내악 최고의 앙상블이다. - 프랑스수와르-
놀라울 정도의 완벽함 ! -워싱턴 포스트지-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은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현악사중주단이다. 이들은 지난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콘서트와 레코딩 분야에서 금자탑을 쌓아올렸으며, 완전무결한 음악의 세계를 열어보여준 기적과도 같은 연주 단체다.
본 작은 바로 그런 그들의 베스트 오브 베스트 음반이다.
그것도 대부분 결성 당시의 오리지널 멤버들이 남긴 녹음이어서 특별하다.
[단 1978 -1979년에 행해진 모차르트 현악 사중주 16번과 브람스 현악 사중주 3번 녹음의 경우 제2 바이올린 연주자가 클라우스 메츨에서 게르하르트 슐츠로 바뀐 뒤 녹음된 것.]
국내 미공개 음원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물론 게 중에는 지난 2004년 발매된 텔덱 레이블의 Artist Portrait 시리즈에 담겨졌던 음원도 있지만 그동안 국내에 한번도 소개되지 않은 음원들이 많아 기대와 흥분을 모으는 것.
필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맨처음 담당자로부터 이 음반을 건네 받은 뒤 짜릿한 전율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한편, 이 세트 음반 속의 명연주를 지금까지 많이 들어온 1990년대 EMI시절의 녹음과 비교 감상해보는 것도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감상의 묘미를 안겨줄 듯.
굳이 사족을 달지 않아도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의 연주는 과연 그들이라는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또, 왜 수많은 언론과 비평가들이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을 최고로 치켜세우는 지 알 수 있을 법하다.
과거 유명한 음악 평론가인 네빌 카르두스는 호로비츠에 대해 [이미 죽었거나 살아있는 피아니스트 중에서 아니 앞으로 태어날 피아니스트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연주자다]고 단언했던 적이 있다. 이를 인용해 필자도 감히 단언하고 싶다.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처럼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중주단은 다시 등장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여 말하면 그들은 음악 사상 최고의 현악 사중주단이었으며, 누구도 근접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이러한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분명한 근거는 바로 그들이 남긴 레코딩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증거가 본 작이다.
이 세트 음반은 1970년 결성된 최초의 오리지널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녹음한 초기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의 음악 유산이다.
2008년 사중주단의 공식해체 선언을 아쉬워하며 워너 클래식에서 특별 제작한 박스 세트로 여기 수록된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의 젊은 연주는 하나같이 새롭고 신선한 영감으로 가득차 있으며, 풍부한 색채와 깊은 정신성을 반영한 명연들이다.
고로 이 전집 음반은 무결점 사운드를 구축한 이들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젊은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의 찬란한 문화 유산이라 하겠다.
젊은 알반베르크 사중주
단의 진수
1970년의 어느 날. 빈 음악/공연 예술 대학(University of Music and Performing Arts in Vienna)에 교수로 함께 재직하면서 평소 교분을 나누었던 퀸터 피흘러 (Gunter Pichler바이올린), 클라우스 메츨(Klaus Maetzl, 제2 바이올린), 하토 바이에를레(Hatto Beyerle, 비올라) 발렌틴 에르벤(Valentin Erben, 첼로) 등 네 사람은 현악사중주 연주를 전문으로 하는 연주단체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했다. 시작은 그다지 화려하지도 거창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소박한 계기로 시작되었다고 하는 편이 옳다. 그러니까 1969년 우연히 빈 뮤직 페스티벌에서 라샬 사중주단의 쇤베르크 연주를 본 네 사람은 감명을 받았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우리도 저런 사중주단을 결성해보자고 한 것이 현실로 이루어졌던 것.
팀의 리더격인 퀸터 피흘러의 회상에 따르면 그것은 특별한 계시와도 같았다. 사실 각자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활동했던 네 사람은 쉽게 뭉치기 힘든 현실적인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네 사람은 이전과는 다른 음악적 열망을 가지고 있었고, 나름대로 돌파구를 필요로 했다. 그런 그들에게 현악사중주단의 결성은 명분과 열망을 동시에 충족시켜준다.
여기서 놀라운 점 하나. 당시까지 빈에는 전문 현악사중주단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
그래서 이들은 더욱 명분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고, 큰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었다.
알반베르크 현악 사중주단은 1971년 비엔나 콘서트홀에서 공식적인 첫 데뷔 공연을 가졌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들이 알반 베르크 사중주단으로 불리워진 것은 아니었다. 팀이 결성되고 2년 후인 1972년, 알반 베르크의 미망인인 헬레네의 양해를 얻음으로써 팀명을 알반 베르크 사중주단으로 할 수 있었다. 이들은 팀명이 말해주듯 알반 베르크 등 현대 음악가들의 음악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항상 공연 프로그램에는 알반 베르크의 작품 혹은 현대 음악이 들어갔다. 그렇다고해서 이들이 현대 음악 전문 앙상블을 고집했던 것은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오늘날과 같은 전방위적 명성을 얻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들은 균형잡힌 음악관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실로 방대한 레퍼토리에 도전했다. 고전과 현대를 가리지 않고 거칠것 없이 연주해나가면서 점차 전세계 음악 애호가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또 한가지 놀라운 것은 (이미 많은 평론가들도 지적했지만) 대개의 연주단체가 자신들만의 사운드를 완성하고, 최고의 명연을 들려주기까지 적어도 수년 이상이 소요되는 것과는 달리 이들은 거의 데뷔와 동시에 완벽한 앙상블을 들려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입증해주는 것이 이 모음집이기도 하다.
다음은 레너드 번스타인의 회상.
[빈에 있는 친구가 그러더군요. 이제 막 떠오르는 젊은 사중주단의 공연이 있으니 빈에 왔을 때 같이 보면 어떻겠냐고. 그리고, 덧붙이기를 (마에스트로, 실은 이들이 빈에 있는 유일의 전문 현악 사중주단입니다)고 했어요. 호기심에 공연을 보았지요. 그 날 전 완전히 그들 음악에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공연 내내 속으로 이렇게 외치기도 했어요. 맞아 저거야 바로 저거야.]
이들에게 매료된 마에스트로는 번스타인 뿐만이 아니었다. 이들의 공연은 수많은 동료, 선후배 음악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고, 이들의 완벽한 앙상블은 음악계의 화두가 되기도 했다. 그 때 그 시절의 중요한 녹음들이 이 모음집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기에는 하이든부터 모차르트, 슈베르트, 드보르작, 베르크, 베베른, 우르바너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현악사중주 명곡이 망라되어 있다.
따라서, 이 모음집은 젊은 열정과 에너지로 의욕적인 활동을 해나가던 초기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의 예술 세계 전반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음반이며, 나아가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의 전설의 비밀을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가 되어줄 것이다.
필자는 이 전집을 모니터하면서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대로 음악의 신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아무래도 내가 그토록 듣고 싶었고, 또 가지고 싶었던 음반을 손에 쥔 기쁨 때문이다.
나의 이런 설레임은 옳았다. 여기에 수록된 연주들을 그런 나의 설레임을 흥분으로, 감동으로 바꾸어놓았으니까. 나는 오랜만에 음악을 들으면서 천국에 와있는 듯한 호사를 누렸다.
그건 아마도 음악의 신이 내린 축복과도 같은 것이었으리라. 정말이다.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의 연주는 그러고도 남았다!
순도 100% 절대 명연의 향연
CD1
하이든 Haydn /
현악 사중주 G 단조 op.74 No.3 String Quartet in G minor, Op.74 no3 [Rider]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은 현악사중주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그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우수한 작품들을 양산해냄으로써 현악사중주 분야에 큰 획을 그었으며, 이를 자신의 제자인 모차르트, 베토벤에게 전수시킴으로써 현악 사중주가 실내악의 가장 중요한 장르로 뿌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하이든은 모두 83곡의 현악 사중주곡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건 사실과 다르다. 하이든의 사중주곡 중 6곡은 다른 작곡가[로만 호프슈테터(1742-1815)]의 곡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초기작 9곡의 경우 그의 관현악 작품의 편곡이라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그의 사중주 작품은 68곡으로 정리된 것. 그러다 여기에 1970년대 새로이 한 곡이 추가되어 총 69곡이 된 것. 한편, 아포니 백작에게 헌정된 여섯 곡에 포함되어 이른바 [아포니 사중주곡]의 하나로 꼽히는 이 곡은 음악적인 완성도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곡. 다분히 주관적이고 개성적인 면모를 보이는 가하면 이전의 다른 작곡가들 작품에 비해 기술적으로도 난이도가 높아져 주목을 끈다.
또한 이 작품은 하이든의 작품 76에 포함된 여섯 곡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1797년 에르되디 공작의 의뢰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에르되디 사중주'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이 작품 76에서 하이든은 현악 4중주 기법을 한층 발전시킨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데 즉, 네 개의 악기에 균형을 주어 현악 4중주의 원형을 제시하고 있으며, 한 곡 내에서도 조성의 변화가 아주 계획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하이든 최고의 사중주곡이라고 찬사를 보내기도. 한편, 이 곡의 2악장에는 [신이여 프란츠 황제를 보호하소서]라는 오스트리아 국가가 변주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그런 이유로 [황제]라는 별칭을 얻고 있다.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은 이 곡을 능수능란하게 요리한다. 마치 하이든이 의도했던 것을 다 간파한 듯 자신감에 차 있다. 사실 이 곡의 경우 알반 베르크 사중주단이 지난 1993년 데뷔 25주년 기념으로 녹음한 EMI반이 절대 명연으로 꼽혀왔다. 하지만 데뷔 4년차에 녹음한 본 녹음 또한 그에 못지 않은 명연이다. 군더더기없는 정밀함과 막힘이 없는 상쾌한 울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명연.
모차르트 Mozart /
현악 사중주 14번 G장조 String Quartet No.14 in G major K387 [spring]
현악사중주 분야에서 하이든에 이어 현악사중주의 규모를 가일층 확대시키고 비약적으로 성장시킨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제자 모차르트와 베토벤이었다. 이렇듯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 이른바 빈 고전파 시대를 대표하는 세 음악가가 개척하고 진화시킨 현악사중주는 향후 그들과 같은 빈 작곡가 혹은 독일어권 작곡가들의 전유물처럼 받아들여지게 된다.
하이든을 계승한 모차르트는 1782년 스승의 현악사중주곡 작품33[러시아 사중주곡]을 듣고는 깊은 감명을 받아 즉각 새로운 현악사중주 작곡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그는 스승의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한층 규모가 크고 대담한 양식을 선보였다. 그렇게 탄생한 현악사중주곡이 14번부터 19번까지인데, 하이든에게 헌정되었다하여 흔히 하이든 사중주곡 혹은 하이든 세트라 불리는 작품들이다.
이 하이든 사중주는 알반 베르크 사중주단의 장기이기도 했다.
그 중 하이든 사중주의 포문을 여는 이 곡에서 보여주는 이들의 연주도 시종일관 찬탄을 자아낸다. 모차르트가 보여 주려했던 선율의 우아함과 샘솟는 생명력이 전편에 흐르는 명연.
CD2
모차르트 Mozart / 현악 사중주 15번 D단조 String Quartet No.15 in D minor, K421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의 리더 귄터 피흘러는 말한다.
[당신이 들을 수 있는 음악 가운데 최고 중의 최고가 모차르트다. 편안하고 쉽게 들리지만 들여다보면 복잡한 층위를 갖고 있는 음악, 갖가지 아이디어와 정신으로 가득 차 있는 음악. 그것이 모차르트다.] 이처럼 모차르트를 최고 중의 최고로 평가한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이었기 때문에 모차르트를 대하는 그들의 자세도 남달랐다. 한 곡 한 곡을 연주할 때마다 치밀하게 분석하고 세심하게 준비하여 완벽하게 연주하고자 노력을 기울였던 것.
한편, 여기 담겨진 하이든 사중주 녹음은 1977년과 1978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10년 후인 1987년부터 EMI에서 디지털로 녹음한 레코딩과 비교해볼때 호각지세를 이루는 명연. 그 중에서도 14번과 15번은 오히려 후자의 녹음을 앞선다는 것이 중평. 하이든 사중주곡 중 가장 음영이 잘 드러나는 이 곡은 1783년 작곡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모차르트의 아내인 콘스탄체에 따르면 장남 라이문트 레오폴드가 출생할 무렵에 이 곡이 쓰여졌으며 3악장 미뉴에트는 출산 중에 작곡된 것이라고 한다.
모차르트 Mozart / 현악 사중주 16번 E Flat 장조
String Quartet No.16 in E flat major, K428
하이든 사중주 6곡을 완성한 모차르트는 하이든을 집으로 초대해 전곡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하이든에게 헌정사를 썼다. 아르타리아 출판사에 악보와 함께 동봉한 그 헌정사에는 스승 하이든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잘 표현되어 있고, 더불어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부심도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 헌정사에 의하면 모차르트는 이 6곡을 자식처럼 여기고 있으며, 자신의 아들이나 진배없는 이 곡들이 하이든의 총애를 받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했다.
그의 의도는 적중했던 것 같다. 실제로 이 곡을 접한 하이든은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드에게 [하늘에 맹세코 말하기를 당신의 아들을 내가 아는 한 가장 위대한 작곡가]라고 극찬했다. 여기 수록된 16번은 17번과 함께 1979년 레코딩된 것이다.
모차르트 Mozart / 현악 사중주 17번 B flat 장조 [사냥]
String Quartet No.17 in B flat major, K458 [Hunt]
발견된 작품만 27곡의 현악 사중주곡을 남긴 모차르트의 전곡 중 19번[불협화음]과 더불어 가장 완성도가 높은 걸작. 1784년 11월에 완성했다. 이는 16번을 완성하고 난 후 14개월이 지나서인데, 그동안 모차르트의 일신상에는 변화가 있었다. 즉,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을 털어내고 1784년 초부터 빈을 근거지로 하여 다망한 활동을 하게 된 것. 피아니스트로, 작곡가로 열의를 보인 그는 전에 없이 밝고 사교적인 성향을 보인 바 작품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또한, 스케일이 보다 웅장해진 가운데 완벽한 균형미를 이루고 있는 특징이 있다.
한편, 이 곡의 부제인 [사냥]은 1악장의 서두가 마치 사냥할 때의 호른 소리와 매우 유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것.
CD3
모차르트 Mozart / 현악 사중주 18번 A장조
String Quartet No.18 in A major, K464
음악 저널리스트 줄리안 러쉬톤에 따르면 1782년부터 1785년 사이에 완성된 하이든 세트는 모차르트가 전에 없는 열정과 집중력으로 완성한 작품들이라고 한다.
이 말이 사실임은 그의 자필 원고의 모습을 보면 잘 알 수 있다고. 그에 따르면 [모차르트가 겨우 6곡을 완성하는데 이토록 긴 세월을 소요했던 예는 없었다. 자필 원고에 이만큼 많은 문제의 흔적을 남긴 예 또한 드물다. 그 중 K464는 밝은 햇빛과도 같은 음악이다.]
1785년 1월 10일 완성된 이 곡은 또한 베토벤이 가장 좋아했던 모차르트 현악사중주곡으로도 유명하다.
음악학자들의 추측에 따르면 이 곡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완벽성과 자유롭고 몽상적인 분위기, 섬세한 뉘앙스가 베토벤을 매료시켰을 것이라고.
모차르트 Mozart / 현악 사중주 19번 C장조 [불협화음]
String Quartet No.19 in C major, K465 [Dissonance]
1785년 1월 14일 그러니까 13번을 완성한 지 나흘 뒤 완성한 곡으로 다소 논란이 되었던 작품. 즉, 1악장부터 불협화음으로 진행되는 대담한 시도가 당시에는 이론적으로 모순된 것으로 평가되었다는 것. 그러나, 이 작품은 하이든을 감동시켰으며, 하이든이 레오폴드에게 모차르트를 극찬하게 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주었다. 또, 하이든은 비공개 연주회에서 레오폴드와 함께 이 곡을 직접 연주하기도 했었다. [이 연주회에서 바이올린은 하이든과 디터스도르프, 첼로는 반할, 비올라는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가 맡았다.]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은 빈풍으로 이 곡을 연주한다. 여기서 빈풍이란? 향기롭고 고풍스러우며, 지성적이며 생기발랄하다는 것. 그래서일까? 들을수록 향기롭고 들을수록 신선한 연주다.
CD4
모차르트 Mozart /현악 사중주 23번 F 장조 String Quartet No.23 in F major, K590
프러시아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를 위해 쓴 전3곡으로 구성된 프러시아 왕 사중주곡의 하나이며, 모차르트가 인류에게 남긴 마지막 현악 사중주곡. 따라서, 이 곡은 모차르트 현악사중주의 [백조의 노래]인 셈. 1790년 6월, 그가 죽기 1년 전에 완성했다.
모차르트는 이 곡을 자신이 마지막으로 작곡할 현악사중주곡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빌헬름 2세를 위해 3곡의 현악사중주곡을 더 쓰기로 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당시 빈에서 모차르트는 상당히 궁핍한 상태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 곡들을 프러시아 왕에게 헌정한 뒤 그의 부름을 받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또한 그의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비록 모차르트가 순수한 의도가 아닌 다분히 기회적인 의도로 이 곡들을 썼다고 할 지언 정 그 예술성마저 함량 미달이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음악적 천재를 온전히 펼쳐보일 수 없었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나 상황이 안타깝게 여겨질 따름이다.
슈베르트 Schubert / 현악 사중주 13번 A 단조
String Quartet No.13 In A minor, D804 [Rosamunde]
베토벤의 열렬한 숭배자였던 슈베르트는 어려서부터 가족과 함께 현악사중주를 연주하면서 이 분야에 살가운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 10대 초반부터 현악사중주곡을 쓰기 시작했으며, 20세가 되기 전 이미 11곡의 현악사중주곡을 써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가 전 생애에 걸쳐 쓴 현악 사중주 작품은 대략 20개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러 작품의 악보가 분실되거나 소실되어 전집판에는 15곡의 작품만이 올라있다. 그 중 13번은 1824년 완성되어 그 해 3월 14일 빈에서 초연된 작품.
유명한 2악장은 [로자문데]의 부수 음악에서 가져온 주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흔히 [로자문데 사중주곡]으로 불린다.
슈베르트의 현악 사중주곡 중에서는 14번[죽음과 소녀]와 더불어 가장 대중적.
초연 당시 슈베르트의 친구 슈빈트는 또 한 명의 절친한 슈베르트의 친구 프란츠 폰 쇼버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작곡가의 뜻에 따라 상당히 느리게 연주되었지만 정말 순결하고도 부드럽게 연주되었다네. 이 음악은 많은 갈채를 받았는데 특별히 미뉴에트가 많은 박수를 받았네. 그 곡은 참으로 온화하고 자연스러웠네.] 이 곡의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슬픔이다. 그렇기 때문에 슬픔과 회한이 가득한 선율을 재현하는데 음악성과 연주력이 요구된다. 고로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에게는 최적의 레퍼토리다. 그들은 선율의 비극적인 우아함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온화하고 자연스럽게 이 곡을 연주해주고 있다. 듣는 이의 감성을 풍부하게 해주는 아름다운 슬픔의 명연.
슈베르트 Schubert / 현악 사중주 9번 G 단조 String Quartet No.9 in G minor, D173
모차르트와 베토벤에 대한 존경을 읽을 수 있는 슈베르트의 현악사중주곡.
슈베르트가 [아 여기서는 천사의 음성이 들린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모차르트 교향곡40번 4악장 알레그로 아사이와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2번 4악장 알레그로 몰토 쿠아지 프레스토가 1악장에 절묘하게 변형되어 등장하고 있다.
1815년 3월 25일 작곡을 시작해 일주일만에 완성했으며, 초연은 슈베르트 사후 35년이 되던 1863년 11월 29일 빈에서 헬름스베르거 사중주단에 의해 이루어졌다.
형식적으로 고전주의의 엄격함을 유지하면서도 낭만주의적인 성향을 농후하게 보여준 작품.
LP 시대인 1975년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은 9번과 13번을 커플링으로 한 장에 담아 출시했었다. 본 녹음은 바로 그 녹음이다. 발표 당시에도 호평을 받았지만 지금 들어도 손색이 없다. 대다수 평론가들도 EMI 녹음 때보다도 더 통일감을 이루면서 정교한 앙상블을 들려주고 있다고 이 음반의 손을 들어주었다.
CD5
브람스 Brahms / 현악 사중주 3번 B flat 장조
String Quartet No.3 in B flat major, op.67
브람스가 43세가 되기 전까지 교향곡을 작곡하지 않았던 이유는 자신이 그토록 존경하던 베토벤을 의식해서였다. 그래서 그는 왜 아직까지 교향곡을 쓰지 않느냐?는 질문에 [베토벤이 등뒤에 서서 지켜보는 것만 같아서입니다.]라는 유명한 말도 남겼다. 그런 맥락으로 이해되는 작품이 현악 사중주. 이 역시 베토벤이 남긴 현악사중주곡에 외경심을 가지고 있던 슈베르트가 자칫 선배에게 누가 되지 않을 까라고 하는 부담감과 작품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작곡이 늦어진 케이스. 결국 그는 40세가 되어서야 현악 사중주곡을 발표했고, 이후 3년 간 세 작품을 완성했다. 그리고는 더 이상 현악 사중주곡을 작곡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미 10대 후반기부터 약 20개의 현악 사중주곡을 써놓았다고 한다. 단지 그것들이 그 자신의 엄격한 기준에 미달인 상태였기 때문에 아예 발표도 하지 않은 채 없애버린 듯 하다.
브람스가 완성한 세 곡의 현악 사중주곡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세 곡 모두 휴가를 즐기던 피서지에서 완성했다는 것. 그런 만큼 작품 전체에는 한가롭고 전원적이며 목가적인 정서가 감돈다.
3번의 경우 1875년 여름 하이델베르크 근처의 찌겔하우젠에서 피서를 보내면서 기분좋게 완성한 것. 이 곡을 작곡하면서 브람스는 수시로 클라라 슈만에게 연락을 취했고,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이런 클라라와의 교감은 브람스에게 창작의 즐거움을 제공했다.
따라서, 전편에 브람스 특유의 유머와 여유가 흐르는 것은 당연한 결과.
비공개 초연은 클라라 슈만의 집에서 요아킴 사중주단의 연주로 이루어졌다. 그 자리에는 브람스와 클라라가 함께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곡을 가리켜 브람스가 가슴 속 깊이 연모했던 브람스의 사랑의 고백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드보르작 Dvorak / 현악 사중주 13번 G 장조 String Quartet No.13 in G major, op106
19세기 낭만파 시대 중반까지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쥐어왔던 클래식의 헤게모니는 19세기 후반으로 가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시의 정치,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대두된 민족주의의 발흥 이후 클래식의 주도권은 분할되었다. 민족주의 음악은 자국의 언어와 자연을 기반으로 자국의 신화, 전설, 민요 따위를 소재로 한 명작들을 쏟아냈다.
변화의 바람은 현악사중주 분야에도 불어닥쳤다. 비독일어권 작곡가들의 작품이 나오면서 현악사중주 음악의 폭이 확대되고, 음악적 내용이 풍성해졌던 것.
차이코프스키, 보로딘, 드보르작, 프랑크, 드뷔시 등이 현악사중주의 신세계를 열어보인 장본인들. 이 중 드보르작은 대략 15곡의 현악사중주곡을 썼는데, 그 중 8곡이 자주 연주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현악 사중주 12번 [아메리카]와 13번 등 몇 몇 작품은 고전 중의 고전이 되어있다. 13번은 미국을 떠나 고국인 체코 프라하로 돌아와 교편을 잡은 드보르작이 고향에 돌아온 기쁨과 행복을 작품에 반영한 작품. 2악장 아다지오 마 논 트로포가 높이 평가받는데, 쇼케크는 [이 작품의 정점을 이루는 부분을 보라. 드로브작이 쓴 곡 가운데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깊이 있는 악장이다]고 극찬을 하기도.
깊이있는 지성과 완벽한 기교를 갖춘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의 연주는 듣는 이의 기분을 개운하게 한다. 또한, 가장 중요한 2악장에서 이들의 진면목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처럼 멋진 울림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다시 한번 역시 알반베르크구나! 라는 탄성을 내뱉게 된다.
CD6
베르크 Berg / 현악 사중주 op.3 String Quartet, Op.3
아놀드 쇤베르크와 알반 베르크, 안톤 베베른은 스승과 제자로 만났지만 이후 빈3인조가 되어 음악사적 가치가 높은 작품들을 써내려갔다. 세 사람은 여러 분야의 음악을 썼지만 현악사중주에도 의미있는 작품들을 남긴다. 이 중 베르크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어법으로 현악사중주곡을 작곡했는데,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이 작품과 일련의 [서정 모음곡].
이 곡은 1910년 봄에 완성했으며, 이듬해 4월 24일 빈에서 초연되었다.
2악장에 [대단히 격하게]라는 주제를 둔 것은 당시 그의 심리를 반영한 것이다.
즉 연인이었던 헬레네 나호브스키와 결혼을 준비하던 베르크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멸시를 당하는 수모를 겪은 것이 반항적으로 작품에 투영된 것. 다행히 두 사람은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11년 5월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곡이 악보로 출판될 때 베르크는 [나의 아내에게]라는 헌사를 악보에 실었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 베르크를 격려하고 지도했던 쇤베르크는 이 곡을 [음악적 사고의 풍성함이나 창의적인 면에서 실로 뛰어난 작품]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알반 베르크의 음악은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이 사명감을 갖고 대했던 레퍼토리이며, 늘 단골로 연주하던 숙명의 레퍼토리였다. 따라서, 이들의 연주는 권위를 가진다. 알반 베르크의 작품을 이렇듯 자연스럽게 시원하게 연주하면서 세부까지 치밀하게 정교하게 그려내기란 쉽지 않다. 과연 최고의 명연이다.
베르크 Berg / 현악 사중주를 위한 서정 모음곡 Lyric Suite
1926년 6악장으로 완성된 이 작품은 베르크에게 획기적인 작품이여, 현악 사중주사에도 아로새겨질 걸작. 12음 기법으로 씌어진 모순되고도 복잡하고 선명한 주제의 작품이다.
작곡의 직접적인 동기는 한나 푹스 로베틴이라는 여성이다. 그녀는 남편과 두 아이가 있는 유부녀였다. 베르크 역시 결혼한 유부남이었지만 두 사람은 우연히 프라하에서 말러의 미망인 알마의 소개로 만나 뜨겁게 사랑을 하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베르크도 그녀도 가정을 깨지 않았다. 대신 베르크는 그녀를 위해 이 작품을 썼고, 사랑의 증표로 이 곡의 초고보와 초판보를 선물했다. 초연은 1927년 1월 8일 콜리쉬 사중주단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더 이상 이 작품은 연주되지 않았고, 베르크 사후에는 존재 여부조차 불투명한 채 수십 년이 흘렀던 것이다. 이윽고 1976년 베르크의 부인 헬레네가 세상을 떠난 후 영원히 사장될 뻔한 이 곡의 스코어가 공개되었다. 그리고 이 스코어에는 베르크가 직접 쓴 곡에 얽힌 사연까지 상세히 메모되어있는 것이 발견되어 베르크와 한나의 관계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베베른 Webern / 현악 사중주를 위한 5악장 Five Movements, Op.5
쇤베르크 문하에서 6년을 수업했던 베르크와 베베른은 뿌리는 같지만 서로 다른 개성으로 자신만의 음악성을 키워갔다. 베베른의 경우 집약적이면서도 밀도높은 음악 스타일을 견지했다. 그는 다작을 하지 않았고, 작품의 내용도 지극히 압축적이었다. 단순히 곡 길이로만 따져보아도 그의 곡은 통상 10분 내외의 곡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혹자는 그의 곡들은 시디4장이면 충분히 담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편, 이 작품은 무조적인 기법으로 완성된 1909년 작이며, 1910년 2월 8일 빈에서 초연되었다. 그의 여느 작품과 마찬가지로 10분 내외로 연주되는 집중력을 요하는 밀도높은 작품이다.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의 연주는 섬뜩할 정도로 디테일하다. 진지함과 강력함을 갖춘 명연.
베베른 Webern / 현악 사중주를 위한 6개의 바가텔 Six Bagatelles, Op.9
피아노를 위한 두도막 ?세도막형식의 소품에 붙이는 명칭인 바가텔은 흔히 간단한 양식의 기악 소품을 뜻하는 음악용어. 악성 베토벤이 [3개의 바가텔]을 남긴 이래 음악양식의 하나로 부각된 바가텔은 20세기 전반기 바르토크와 베베른에 의해 다시금 주목을 받게 되었다.
베베른이 왜 자신의 걸작에 속하는 현악 사중주 작품에 바가텔이라는 제목을 붙였는지는 추측이 가능하지만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악보 머리말에 작곡자는 이런 의견을 밝혀두었다.
[한 편의 장편 소설을 단 하나의 몸짓으로, 하나의 행복을 단 한번의 호흡으로 표현할 것. 이 정도의 집중력은 한마디의 불평조차 내지 않는 정신으로써만 가능하다. 이 소곡들은 음이란 오로지 음을 통해서만 나타낼 수밖에 달리 표현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을 믿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가 있다.] 베베른의 주장 그대로다. 그리고, 전곡 6곡을 다 합쳐도 3분 50초 내외이므로 각 악장의 의미도 무의미할 정도. 20세기 현악사중주의 정수라는 평을 받는다. 이 음반에서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은 3분 57초에 연주했다. 베베른의 의도를 간파한 명연이다. 마치 베베른과 함께 호흡을 맞춘 것같이 느껴진다. 이렇듯 핵심을 찌르는 해석은 흔치 않다. 또한 현의 울림도 정밀하기 그지없다.
베베른 Webern / 현악 사중주 Op.28 String Quartet, Op.28
베베른은 습작과 미완성 작품을 포함해 모두 24곡 정도의 현악사중주곡을 썼다.
어떻게보면 제2빈 악파 중에서 좋은 현악사중주 작품을 쓰기 위해 가장 고민을 많이 한 작곡가가 베베른이 아니었나 싶다. 24곡 중 출판된 곡은 작품 번호가 붙은 세 작품[Op5,9, 28]과 1905년에 쓴 작품 번호가 없는 [느린 악장]과 [현악 사중주곡] 뿐이다.
이 중 현악 사중주 op28은 그의 생애 마지막에 출판된 현악 사중주 작품이다. 그 자신 작품에 애정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자신과 같은 쇤베르크의 제자이자 콜리쉬 사중주단의 리더인 루돌프 콜리쉬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나는 두 개의 표현 방법, 수평적인 것과 수직적인 것을 잇는 데 있어서 성공한 듯 싶습니다. 나는 일찍이 내가 만든 작품에 이런 충족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에게는 이것이 첫 작품인 양 느껴집니다.] 1938년 3월 완성하여 그 해 9월 22일 콜리쉬 현악사중주단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우르바너 Urbanner / 현악 사중주 3번 String Quartet No.3
20세기의 작곡가 슈니트케는 말한다. [알반베르크 사중단을 보면 창작열이 불타오른다. 누구라도 작곡가라면 한번쯤 내가 만든 곡을 그들로 하여금 연주하게끔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길 것이다.] 그런 슈티트케를 비롯해 볼프깅 림, 에리히 우르바너 등 현대 음악 작곡가들은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에게 작품을 헌정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은 20세기 후반 현악사중주가 화석이 되지 않고 진화하는 데도 일정 부분 기여하였던 팀이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작곡가 우르바너는 1950년대 말부터 작곡가로 활동 중인 중견 작곡가이자 현대 음악 전문 지휘자로도 활약중인 음악가.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알반 베르크 사중단의 팬인 그는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의 출현을 빈의 자랑이라고 여겼다고. 그런 그가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에게 작품을 헌정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한편, 8분 내외의 한 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을 알반베르크 사중주단은 고도의 집중력과 완벽한 테크닉으로 연주하고 있다.
이헌석 [음악평론가. 열려라 클래식, 이럴 땐 이런 음악의 저자, TBS FM음악작가.]